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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사적 배경 16세기의 대서양 항해록 copyrights (참고) 분량: 약 3.8 만자 (종이책 기준 약 60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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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기>
오늘날 우리는 세계를 거의 완성된 지도 위에서 바라본다. 대서양을 건너면 어느 대륙에 도착하는지 알고 있으며, 뉴펀들랜드가 어디에 있는지, 그곳의 해안선이 어떤 모양인지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성사진을 확대하면 수백 년 전 항해자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갔던 바다와 섬을 몇 초 만에 내려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 기록된 1583년의 사람들에게 세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도에는 여전히 불확실한 공간이 있었고, 바다 너머의 땅에 관한 지식은 직접 경험과 소문, 오래된 기록과 추측이 뒤섞여 있었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본격적으로 대서양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인도양으로 진출했고,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했다. 그에 비하면 잉글랜드의 해외 진출은 상대적으로 늦었다. 존 캐벗이 1497년 북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해안에 도착했지만, 그 발견이 곧바로 안정적인 정착이나 영토 지배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후반이 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잉글랜드에서는 새로운 무역로와 어장, 자원과 정착지를 찾아 대서양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먼저 차지한 세계질서 속에서 잉글랜드 역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 했다. 항해와 탐험은 개인적인 모험이면서 동시에 상업과 국가 경쟁, 종교와 정치가 얽힌 사업이었다. 험프리 길버트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북아메리카에 잉글랜드의 정착지를 건설하려 했으며, 왕실로부터 해외 영토를 탐사하고 점유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1583년 길버트가 이끄는 선단이 대서양을 건넌 것도 단순히 새로운 해안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항해에는 땅을 확보하고, 경제적 가능성을 탐색하며, 장차 정착지를 건설하려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뉴펀들랜드였다. 오늘날 캐나다 동쪽 끝에 자리한 이 섬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이미 완전히 낯선 곳은 아니었다. 풍부한 대구 어장 때문에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잉글랜드의 어선들이 오래전부터 북대서양을 오갔다. 그러나 바다를 이용하는 것과 그 땅을 정치적으로 점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길버트는 세인트존스에 도착한 뒤 잉글랜드 왕실의 이름으로 그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도 여기에 있다. 당시 기록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발견', '소유', '정착'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다. 유럽인들이 ‘발견했다’고 표현한 지역에는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사회와 문화가 존재했다. 유럽인의 지도에서 낯선 장소였다고 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16세기의 항해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했다. 그들에게 새로운 땅은 탐사할 장소인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공간이었고, 왕의 영토가 될 수 있는 장소였으며, 기독교를 전파해야 할 지역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헤이스의 글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거의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독자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도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흥미로운 역사 자료가 된다. <추천평> "발견'이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이 있다 우리는 세계지도를 너무나 쉽게 펼쳐 본다. 대서양의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으며, 뉴펀들랜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몇 초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가 완성되기 전의 사람들에게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다'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거리다. 오늘의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바다 너머의 땅은 지도 위에 확정된 공간이 아니라 소문과 기대, 두려움과 욕망이 뒤섞인 장소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오래된 항해의 경로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직 정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읽는 것에 있다. 그 문장들을 읽다 보면 '발견'이라는 익숙한 단어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의 항해자가 도착하기 전에도 그곳에는 이미 땅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처음 마주한 장소를 '발견'했다고 표현하고, 그 땅을 소유하고 정착하며 자신들의 종교와 질서를 확장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가치관으로 과거의 문장을 간단히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당화했는지를 그들의 언어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경제적 가능성에 대한 기대, 국가 간 경쟁, 종교적 확신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었는지가 이 짧은 기록 속에 압축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1583년 대서양을 건너며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았던 항해자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400여 년이 흐른 뒤 그 항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두 시선 사이의 거리가 바로 이 고전 기록을 오늘 읽는 이유가 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당시 항해가 얼마나 불확실한 일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여행에서 출발과 도착은 당연한 한 쌍처럼 여겨지지만, 16세기의 대양 항해에서 출항은 귀환을 보장하지 않았다. 날씨와 해류, 선박의 상태와 식량, 질병과 사고 가운데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계획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실제 항해 기록이 주는 긴장감은 결과를 위해 만들어진 모험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에 기록은 중요해진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적어두지 않았다면 수많은 항해는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항해록은 이동의 기록인 동시에 한 시대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 아이보리잉크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