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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탄생의 역사와 시대적 요구 제2장: 혁신의 집약: B-29의 기술적 특징 제3장: 세부 제원 및 주요 파생형 제4장: 불의 폭풍 속으로: 실전 운영과 전투의 역사 제5장: 역사적 영향과 평가 제6장: 도면으로 읽는 B-29 제7장: 반사실적 가정 & 신화와 진실 제8장: 한 장으로 읽는 B-29: 요약과 타임라인 copyrights (참고) 분량: 약 6.9 만자 (종이책 기준 약 103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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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2월 5일 월요일 아침 8시 반, 워싱턴주 시애틀의 보잉사 본사는 여느 때처럼 축축한 겨울비와 안개에 젖어 있었다. 보잉의 사장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쥐고 책상 앞에 앉아 아침 우편물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챈 것은 오하이오주 라이트 비행장(Wright Field)의 미 육군 항공대 군수사령부에서 날아온 두툼한 서류 봉투였다. 겉봉을 뜯자 나타난 첫 페이지 상단에는 "미 육군, 비행기, 폭격, 규격서"라는 건조한 행정 문서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날짜는 1940년 1월 29일. 훗날 항공 역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될 '슈퍼보머(Superbomber)' 개발 요구서였다. 서류에 적힌 요구 조건은 당시 항공 공학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수준이었다. 군은 최고 속도 시속 400마일(약 640킬로미터), 폭탄 2,000파운드를 싣고 왕복 5,333마일(약 8,580킬로미터)을 비행할 수 있으며, 최대 2만 파운드(약 9톤)의 폭탄을 싣고 고고도를 날아가는 거대한 4발 폭격기를 요구했다. 당시 미 육군 항공대의 주력 폭격기였던 B-17 플라잉 포트리스(Flying Fortress)만 해도 하늘을 나는 거대한 성채로 불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최신예기였다. 하지만 군이 새로 내건 조건은 B-17보다 두 배나 무겁고, 훨씬 빠르며, 두 배 이상 먼 거리를 날아가야 하는 전대미문의 괴물이었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그런 거대한 기체를 띄울 강력한 엔진도, 그 무게를 버텨낼 날개 구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항공 업계의 많은 엔지니어들이 이 요구서를 받아보고 군이 공상과학 소설을 쓰고 있다며 혀를 찼던 이유다. 미 육군 항공대가 이처럼 무리해 보이는 요구를 던진 배경에는 깊은 전략적 위기감이 깔려 있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은 이미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무너질 경우 미국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고립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약 유럽 대륙 전체가 적대 세력의 손에 넘어가 전진 기지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면, 미국은 자국 본토나 하와이, 알래스카 같은 거점 기지에서 발진해 대양을 건너 적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초장거리 폭격기를 가져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미군 수뇌부가 구상한 '서반구 방위(Hemisphere Defense)' 개념이었다. 여기에 태평양 너머 일본 제국의 팽창 야욕도 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태평양은 대서양보다 훨씬 광활했다. 하와이에서 도쿄까지는 직선거리로만 6,000킬로미터가 넘었고, 알류샨 열도의 험난한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도 거리는 아득하기만 했다. 해군의 항공모함 부대만으로는 광활한 해양 전역을 통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육군 항공대 내부에서 힘을 얻었다. 1920년대부터 전략폭격의 독자적인 가치를 역설했던 윌리엄 '빌리' 미첼(William Mitchell) 장군의 후예들은, 적의 지상군이나 함대와 직접 맞닥뜨리기 전에 적국의 공장과 항만, 정유 시설을 초토화하여 전쟁 수행 능력 자체를 거세해야 한다는 교리를 신봉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슈퍼보머는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라 전쟁의 승패를 단숨에 가를 궁극의 무기였다. 미 육군 항공대는 이 가혹한 도전에 미국 내 굴지의 항공기 제작사 다섯 곳을 불러 모았다. 보잉(Boeing), 콘솔리데이티드(Consolidated), 록히드(Lockheed), 더글러스(Douglas)가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대 최고의 여객기 DC-3를 만들며 항공 산업의 선두를 달리던 더글러스는 요구 조건을 검토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설계를 백지화하고 손을 털었다. XB-31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나, 요구된 항속거리와 탑재량을 만족하려면 기체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당시 기술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속 전투기 개발에 강점을 보이던 록히드 역시 대형 장거리 폭격기의 설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일찌감치 XB-30 설계를 포기했다. 결국 링 위에는 보잉과 콘솔리데이티드 두 회사만이 남았다. 경쟁사들이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설 때, 보잉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비결은 미리 준비해 둔 비밀 카드 덕분이었다. 보잉은 이미 1938년부터 군의 정식 발주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 자체 자금을 투입해 장거리 대형 폭격기 기초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모델 334라 불린 이 연구 프로젝트는 B-17의 설계를 확장하고 기내 여압 시스템과 전륜식 착륙장치를 도입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당시 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보잉의 경영진과 기술진은 언젠가 대륙간 폭격기가 필요한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설계를 갈고닦았다. <추천평> "B-29 슈퍼포트리스를 설명할 때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전략폭격기, 당대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 그리고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다. 어느 하나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 B-29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B-29의 역사는 한 대의 유명한 군용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미국이 '대륙과 대양을 넘어 전쟁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40년 미 육군 항공대가 요구한 '슈퍼보머'의 조건은 당시 기준으로 터무니없을 정도로 야심적이었다. 기존 중폭격기보다 훨씬 먼 거리를 비행하면서 더 많은 폭탄을 싣고, 적 전투기의 요격이 어려운 고고도에서 빠른 속도를 유지해야 했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보잉은 당시 이용할 수 있는 첨단 항공 기술을 대거 끌어들였다. 그 결과 B-29에는 대형 폭격기로서는 획기적인 여압 승무원실이 설치되었고, 사수가 기관총 바로 뒤에 앉아 조준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원격 조종 기관총탑과 중앙 사격통제 체계가 도입되었다. 장시간 고고도 비행을 위한 각종 장비와 강력한 엔진, 복잡한 전기·기계 시스템도 결합되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보이는 기술도 당시에는 대담한 도전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기술을 단순한 제원표로 나열하지 않는다. 왜 그런 기술이 필요했는지, 실제 기체에서는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승무원의 임무와 전투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따라간다. 특히 여압 객실과 폭탄창 위를 통과하는 연결 터널, 원격 사격통제 시스템 등 B-29를 상징하는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독자가 거대한 기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듯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위즈덤커넥트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