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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품 소개 입센과 작품의 시대 등장인물 본문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작품 해설 오늘날의 《헤다 가블러》 생각해 볼 질문 10가지 헨리크 입센 연보 번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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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묻지 않았다
《헤다 가블러》를 읽고 나면 이상한 자책이 남는다. 이 여자가 서른여섯 시간 만에 무너지는 동안, 극 중 누구도 그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묻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여행하며 살이 올랐다고 기뻐하고, 고모는 축복을 빌고, 판사는 계산을 하고, 옛 친구는 그저 무서워한다. 헤다는 매일 그들과 같은 방에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 입센의 다른 작품들이 사회 제도를 향해 칼을 겨눴다면, 이 작품은 그 칼끝을 사람 안쪽으로 돌린다. 그래서 읽기가 더 불편하다. 헤다를 억압의 희생자로만 읽으면 그녀가 노부인의 모자를 두고 벌이는 모욕이 설명되지 않고, 잔인한 인간으로만 읽으면 스물아홉 살 여자에게 세상이 내어 준 자리가 응접실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이 지워진다. 입센은 이 둘을 끝까지 한 사람 안에 붙들어 둔다. 판단을 내려 주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자, 130년이 지나도록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다. 가장 서늘한 것은 헤다가 한 번도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2년간 술을 끊은 남자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겁이 나서 못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뿐이다. 죽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하라"고만 한다. 살인에 가장 가까운 행위를 하면서 끝까지 예법을 지키는 것?이것이 그녀가 배운 유일한 언어이고, 동시에 그녀를 가둔 감옥이다. 이 작품에 불만이 없지는 않다. 후반부의 우연은 다소 편의적이다. 하필 테스만이 길에서 원고를 줍고, 하필 뢰브보르그가 그것을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입센 스스로도 원고가 계속 손을 옮겨 다니는 설정에 무리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헐거움은 곧 잊힌다. 원고가 어떻게 헤다의 손에 들어갔는지보다, 그것을 불에 넣으며 그녀가 "네 아이를 태운다"고 속삭인다는 사실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한국 독자에게 특히 권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작품의 핵심 갈등이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헤다가 고모에게 말 놓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집안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고, 옛 동창에게 말을 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친밀함을 가장한 조작이다. 영어권 번역자들이 각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 층위를, 우리말은 본문 안에서 그대로 받아 낸다. 이 작품에 관한 한 한국어는 영어보다 유리한 번역어다. 읽고 나서 오래 남는 것은 마지막 총성이 아니라, 그 직전 장면이다. 헤다가 피아노로 춤곡을 치고, 남편이 오늘 밤에는 그러지 말라고 나무라고, 그녀가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이제 조용히 할게요"라고 답한다. 그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