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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자 서문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소개 작품 해설 등장인물 지도 용어 해설 제1장. 바다로 제2장. 야만의 집 제3장. 삶과 죽음 제4장. 유인원들 제5장. 흰 유인원 제6장. 정글의 싸움 제7장. 앎의 빛 제8장. 나무 위의 사냥꾼 제9장. 인간과 인간 제10장. 두려움의 유령 제11장. 유인원의 왕 제12장. 인간의 이성 제13장. 제 동족 제14장. 정글의 처분에 맡겨져 제15장. 숲의 신 제16장. 참으로 놀랍군 제17장. 매장 제18장. 정글의 대가 제19장. 원시의 부름 제20장. 유전 제21장. 고문의 마을 제22장. 수색대 제23장. 형제들 제24장. 잃어버린 보물 제25장. 세상의 변경 제26장. 문명의 정점 제27장. 다시 나타난 거인 제28장. 맺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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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인원 타잔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 100년 만에 다시 읽는 원전 1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야기를 원형 그대로 읽는 일에는 묘한 배신감이 따른다. 기억 속의 타잔은 덩굴을 잡고 고함지르는 근육의 이미지였는데, 1912년의 타잔은 오두막 탁자에 쪼그려 앉아 글자를 벌레라고 생각하며 알파벳 그림책을 뜯어보는 열 살 아이다. 이 어긋남이 첫 번째 재미다. 버로스는 좋은 문장가가 아니다. 부사가 넘치고 우연이 서사를 떠받친다. 그런데 이야기를 굴리는 재주만은 확실하다. 장은 짧고 대개 위기의 정점에서 끊긴다. 잡지 연재를 염두에 둔 설계이고, 그 설계가 여전히 작동한다. 문제는 엔진이 무엇으로 도는가에 있다. 타잔이 뛰어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설명된다. 그가 영국 귀족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우생학이 대중소설의 문법으로 번역된 사례이고, 걷어내면 이야기의 뼈대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흠집이 아니라 구조다. 아프리카인 재현은 더 불편하다. 흥미로운 것은 버로스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부분적으로 알았다는 점이다. 소설은 부족이 벨기에 식민 지배를 피해 온 난민임을 명시하고 레오폴드 2세를 실명으로 지목한다. 그러고는 몇 장 뒤 그 부족의 몰살을 아무 도덕적 무게 없이 통과시킨다. 원인을 아는 채로 결과만 처벌하는 이 분열이야말로 작품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판본의 판단이 중요해진다. 문제적 대목을 지우는 대신 87개의 주석으로 맥락을 대는 방식이다. 다만 비용도 있다. 주석이 촘촘한 구간에서 서사의 속도가 떨어지고, 더러 해설이 작품보다 앞서 말해 버린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주인공은 자기 정체를 증명하는 전보를 쥐고 있고, 한마디만 하면 작위와 재산과 사랑하는 여인을 얻는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참인 문장들로 거짓 인상을 만들어 침묵한다.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해 온 소설이, 주인공이 유전이 준 모든 것을 제 의지로 버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작가가 쓰려 한 것과 실제로 쓴 것 사이의 이 간격이 이 책을 아직 읽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우생학의 우화를 쓰려 했으나, 그가 만든 인물은 책을 읽고 스스로 판단하며 자기를 만들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