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입니다. 툴라 남쪽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두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대학은 중도에 그만두었습니다. 군에 들어가 크림 전쟁의 세바스토폴 포위전을 겪었고, 그 경험을 쓴 글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로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쉰 살 무렵, 가진 것을 모두 갖춘 자리에서 그는 삶의 뜻을 찾지 못해 무너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두려워 밧줄을 숨기고 사냥총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고 그는 《참회록》에 적었습니다.
그 위기를 지나며 톨스토이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자기 손으로 다시 읽고, 교회의 가르침과 국가의 권위를 함께 물리쳤으며, 사유 재산과 저작권을 부정했습니다. 농민의 옷을 입고 밭을 갈았습니다. 그보다 앞선 1859년에는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세웠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의 후기 사상이 무르익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더 이상 귀족의 응접실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 글을 갓 배운 사람이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값을 치렀습니다. 1901년 러시아 정교회의 신성종무원은 그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선언했고, 재산과 저작권을 놓는 문제로 집안은 오래 다투었습니다. 여든두 살이 되던 해 늦가을, 그는 밤중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스타포보역의 역장 관사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이 짧은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나라 말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이끌던 변호사도 톨스토이의 글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1909년부터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변호사의 이름은 모한다스 간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