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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1부 식민지 조선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제1장 친일파는 정말 누구인가 제2장 친일·협력·순응·저항은 어떻게 다른가 제3장 식민지배에 사람들은 왜 협력했는가 제4장 적극적인 친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제2부 해방은 왜 친일을 끝내지 못했는가 제5장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은 왜 시작되었는가 제6장 반민특위는 무엇을 하려 했는가 제7장 친일 청산은 왜 실패했는가 제8장 반공주의는 친일의 과거를 어떻게 덮었는가 제3부 친일의 유산은 어떻게 남았는가 제9장 친일 경력자는 어떻게 다시 권력을 얻었는가 제10장 친일재산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제11장 친일파의 후손은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제12장 친일의 유산은 재산만이 아니었다 제4부 친일과 반일은 어떻게 정치가 되었는가 제13장 친일이라는 말은 언제 정치적 낙인이 되었는가 제14장 일본에 우호적이면 친일파인가 제15장 반일은 어떻게 정치적 정체성이 되었는가 제16장 친일과 반일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쳤는가 제5부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 제17장 과거의 사람을 어디까지 책임지게 할 것인가 제18장 친일재산 환수는 정의인가, 소급입법인가 제19장 독일과 일본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제20장 친일 문제를 끝내는 것이 가능한가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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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80년이 넘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친일’은 여전히 강력한 단어다. 역사책 속의 과거 인물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인의 자격을 판단하고, 외교정책을 평가하며, 때로는 상대방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언어로까지 사용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오래된 단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친일의 역사, 반일의 정치》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친일 문제를 단순한 ‘친일파 찾기’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식민지 시대의 사람들을 친일과 반일이라는 두 집단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 적극적인 협력과 생존을 위한 순응, 강제와 자발적 선택, 저항과 침묵 사이에 존재했던 복잡한 현실을 살펴보면서 ‘친일파’라는 개념을 역사적 행위의 수준에서 다시 정의한다. 이러한 접근은 친일을 가볍게 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모든 사람을 친일파라고 부르면 진짜로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사람들의 책임까지 흐려질 수 있다. 저자는 친일의 기준을 일본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위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중심축은 해방 이후다.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는 친일 청산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고 반민특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친일 청산은 끝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하나의 음모나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새로운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식민지 시대의 인적 자원이 필요했던 현실, 경찰과 행정조직의 연속성, 정부와 반민특위의 충돌, 냉전의 심화와 반공주의의 확대, 그리고 정치권력의 선택을 함께 살펴본다. 친일 청산의 실패는 단순히 ‘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친일의 유산은 재산만이 아니었다. 일부 사람에게는 식민지 시대의 경력이 새로운 국가에서 전문성과 경험으로 재구성되었고, 일부 재산은 상속과 매매를 거치며 다음 세대로 이동했다. 교육과 사회적 관계, 명예와 기억의 방식도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또 하나의 균형을 유지한다. 현재의 부유한 가문이나 사회적 성공을 모두 친일의 결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재산과 권력이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지 판단하려면 구체적인 재산 형성과 경력의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적 주장은 강할수록 더욱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는 원칙이다. 후손의 문제도 같은 기준으로 다룬다. 조상의 죄가 자녀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니다. 친일파의 아들과 손자가 조상의 행위 때문에 현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의 재산과 교육기회, 사회적 네트워크가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혈통에 따른 책임’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역사적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주장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논의는 현재로 넘어온다. 왜 친일이라는 말은 정치적 낙인이 되었는가. 왜 반일은 하나의 정치적 정체성이 되었는가. 그리고 일본에 우호적이면 정말 친일파인가. 저자는 여기서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쉽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왔음을 지적한다. 일제강점기의 친일과 오늘날의 일본 우호적 외교정책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일본과의 협력을 주장하면서도 식민지배를 비판할 수 있고,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면서도 현재의 한일협력을 지지할 수 있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과 현재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은 서로 연결될 수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반일 역시 마찬가지다.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태도와 일본 사회 전체를 적대하는 태도는 구분되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특정 정책에 반대하는 것과 일본인 전체를 적대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결국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친일을 잊자’도 아니고 ‘반일을 멈추자’도 아니다.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자는 것이다. 과거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현재의 행동은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며,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을 구분하고, 조상의 죄와 후손의 삶을 구분하는 것. 친일재산의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증거와 법에 따라 판단하고, 일본과의 관계는 식민지의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국제정세와 국익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적 기억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친일이라는 말을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을 때, 진짜 친일의 역사적 책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반일을 무조건적인 애국심과 동일시하지 않을 때,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 역시 더욱 성숙한 역사적 기억이 될 수 있다. 과거를 정치적 무기로 소비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역사로 기억할 수 있다. 《친일의 역사, 반일의 정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단순하다. 과거를 잊지 말자. 그러나 과거에 갇히지도 말자. 해방 80년이 넘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친일 논쟁이 아니라, 친일 논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이다. 이 책은 그 기준을 역사와 법, 책임과 기억, 정치와 외교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일에서 찾는다. 친일 문제를 끝낸다는 것은 친일의 역사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친일이 더 이상 현재의 모든 사람을 적과 우리 편으로 나누는 정치적 언어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과거를 기억하되 과거에 지배되지 않는 사회. 《친일의 역사, 반일의 정치》는 바로 그 사회를 향한 하나의 제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