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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letter from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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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소개
팬톤 체어는 1959년 베르너 팬톤이 처음 구상한 뒤, 비트라와 오랜 개발 과정을 거쳐 1967년 세상에 나온 디자인 아이콘입니다. 등받이와 좌판, 다리, 받침대가 이음매 없이 하나의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당시의 혁신적 디자인과 기술력이 결합해 탄생했습니다.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열어준 조형적 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이 의자는 1960년대의 대담한 실험 정신과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를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20세기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C》 9호에서는 리빙 브랜드 CEO부터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뮤지션, 도예가까지 다양한 인물의 집을 찾아가 저마다의 공간에 자리한 팬톤 체어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또한 팬톤 체어의 성공을 이끈 비트라 명예 회장 롤프 펠바움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하나의 아이콘이 탄생한 과정을 되짚어봅니다. 이 외에도 컬러를 주요한 디자인 언어로 다루는 디자이너 사빈 마르셀리스의 철학과 작업 세계를 살펴보고, 11명의 디자이너에게 컬러가 지닌 의미와 가능성을 묻습니다. 이를 통해 베르너 팬톤이 평생 탐구한 색의 세계부터 오늘날 디자인에서 컬러가 작동하는 다양한 방식까지 폭넓게 조명합니다. - ‘팬톤’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 색상 칩이 펼쳐진 컬러 가이드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죠. 컬러 시스템으로 유명한 회사는 Pantone, 이번 호의 주인공은 Panton이라는 사실을요. 철자부터 다르고,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베르너 팬톤 역시 누구보다 컬러에 진심인 디자이너였습니다. 고백하자면 팬톤 체어는 제가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의자예요. 대학생 때 전시회에서 처음 봤는데, 그런 데서는 못 앉게 하잖아요. 나중에 제 돈으로 의자를 살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쁘기는 한데 너무 강렬해서 다른 가구와 밸런스를 맞추기 어렵겠구나.’ 하지만 이번 호를 준비하며 팬톤 체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 독특한 형태가 사실은 수십 년에 걸친 집요한 도전의 결과물이었던 겁니다. 팬톤은 당시 덴마크 가구의 주류이던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선택했고, 여러 부품을 조립하는 대신 의자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엔 만들 방법조차 마땅치 않아 초기 버전은 쉽게 변색되거나 작은 충격에도 금세 부서지곤 했습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소재와 기술적 한계 속에서 출발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완성도를 높여간 의자였던 거죠. 이 대목에서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떠올랐습니다. 그 또한 오랫동안 ‘페이퍼 아키텍트’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자신의 디자인을 현실로 구현하지 못했잖아요. 자하 하디드 역시 팬톤 체어를 좋아했다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팬톤 체어 이야기에서 특히 제 관심을 끈 건 소재였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플라스틱은 미래를 상징하는 혁신적 재료였지만, 지금은 환경문제와 저가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배달의민족이라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운영했던 저로서는 이 대목이 더욱 남다르게 읽혔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기술로 일상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게 혁신이었습니다. 인류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한층 편리하고 즐거운 일상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죠.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기술공화국 선언]에서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와 니콜라스 자미스카는 실리콘밸리의 뛰어난 인재와 자본이 국가와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보다 온라인 쇼핑이나 음식 배달처럼 비교적 작고 해결하기 쉬운 일상의 문제에 집중되어왔다고 비판합니다. 읽다가 조금 뜨끔했습니다. 음식 배달이라니, 제 얘기잖아요. 결국 혁신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건 아닐까요. 영원히 혁신적인 것은 없고, 그 시대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게 혁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전통을 깨는 사람은 대개 그 전통을 먼저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기본기를 충분히 다진 뒤에야 비로소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질문할 수 있으니까요. 팬톤 역시 덴마크 디자인의 전통을 충분히 익힌 후 거기서 등을 돌렸습니다. 전통 회화 기법을 마스터한 피카소가 누구보다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렸던 것처럼요. 팬톤 체어 또한 헤릿 릿펠트와 마르셀 브로이어 같은 선배들의 과감한 실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도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들이 결국 시대를 조금씩 앞으로 움직입니다. 팬톤은 색을 마지막에 입히는 장식이 아니라 디자인의 본질로 인식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의자에 앉으면 더 편안하게 쉴 수 있다고 믿었을 정도니까요. 제게도 그런 색이 있습니다. 바로 민트색이죠. 자동차도 민트, 새로 시작한 비즈니스의 키 컬러도 민트예요. 저에게는 행운의 색이죠. 배달의민족을 이야기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색이고요. 사실 곰팡이나 상한 음식이 연상되는 민트는 음식 비즈니스에서는 금기시하는 컬러입니다. 오히려 그 점이 좋았어요. 남들이 사용하지 않으니 우리만의 컬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러분에게도 그런 색이나 의자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 [C]의 미덕은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엔 내 취향이 아니었던 의자도 누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기어이 좋아하게 만들죠. 저도 이제 팬톤 체어를 하나 갖고 싶어졌습니다. 팬톤이 가장 좋아했다는 파란색으로요. 김봉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