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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내전으로서의 미중 관계: 미중 갈등은 어떻게 소비되는가?
I. 관점에 저항하기 미중 관계의 이상한 장면들|국가 중심성이라는 신화|유용한 외적|국제 정치는 무정부 상태?|통치 권력이 생존하는 법|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택한 이유|미국,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나라|마오쩌둥은 왜 미국 독립 기념일을 찬양했을까|관점들 정리하기 II. 분쟁과 응집 미국과 중국은 ‘자살 국가’가 아니다|세계는 이미 3차 대전 중?|어떤 전쟁인가라는 문제|매카시즘 광풍이 띄운 미 7함대|항미원조의 정치학|포탄이 진먼섬으로 날아간 이유|클린턴과 장쩌민의 위기 탈출구, 타이완 해협|대사관 폭격보다 파룬궁이 두려웠던 장쩌민|양날의 검, 민족주의|바이든은 왜 펠로시를 막지 않았을까? III. 분쟁과 빵 달러 패권의 호위 무사들|‘국방’이라는 경제|결국, 군사 케인스주의|〈NSC 68〉의 진짜 목적|‘투자’라는 이름의 국방 예산|‘표심’으로 가동되는 무기 공장|부시가 포트워스로 간 이유|안보 포퓰리즘은 무엇을 은폐하는가|신자유주의와 군사 케인스주의가 만났을 때|일대일로, 중국판 마셜 플랜?|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IV. 디커플링의 정치학 디커플링을 외치는 쪽은 누구인가|자본의 ‘탈주 본능’과 우회로|첨단 기술을 독점할 수 있다는 착각|애덤 스미스라면 반도체 수출 통제에 찬성했을까|‘진짜 디커플링’은 미국 안에서?|반도체법, 바이든의 실패한 선거 전략|중국 기업 퇴출, 월가가 먼저 반대했다|홍콩이라는 완충 지대|트럼프는 왜 최신 AI 칩 수출을 허가했을까|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은 합리적일까 V. 트럼프라는 변수 공포를 파는 정치|권위주의적 포퓰리즘|트럼프의 이중 기만|‘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업|후원이라는 투자, 정책이라는 보상|누구를 위한 감세인가|삼중 딜레마|‘애국적 자본주의’가 내민 청구서|‘TACO’의 정치학|이란 전쟁, 누가 이득을 보았나|중국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훗날 ‘중국판 트럼프’가 출현한다면 에필로그 | 악마는 디테일이 아니라 방향성에 있다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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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위챗을 금지하면 중국은 아이폰과 애플의 생산품을 금지할 수도 있다.” 2020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트위터(현 X)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트럼프 정권이 위챗과 틱톡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내리자 이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인 것이다. 자오가 이런 글을 미국 플랫폼인 트위터에 올렸다는 사실도 모순적이지만, 더욱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은 그 주장을 아이폰을 사용해 올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은 중국 플랫폼 틱톡이 국가 안보에 위협적이라며 강제 매각을 명령하는 법안에 서명했지만, 그의 선거 캠프는 여전히 틱톡을 사용해 선거 운동을 했다.
--- pp.15-16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미중 관계는 양국이 ‘두 개의 내전’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상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나가 자본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 논제로섬 성격의 내전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각국의 통치 권력이 대내 대항 세력에 맞서 벌이는 정치적 내전일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국가 중심적 설명은 이러한 내전들을 은폐하는 것은 아닐까? --- p.51 핵전쟁, 미중 전쟁, 타이완 침공, 한반도 전쟁…. 권력이 제기하는 이런 공포들은 실재할까? 사실, 그것이 실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최종 판결은 불가능하다. (…) 문제는 ‘관점의 폭력’이다. 그러한 공포가 실재한다는 지배적 담론은 우리를 일상적으로 길들인다. 어떠한 통치 권력도 대외 분쟁이 대내 권력 강화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로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맞선 수호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절대화하기 위해 담론의 폭력을 휘두른다. 이런 행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과연 불손한 것일까? --- p.63 군사 케인스주의는 무엇인가? 일반적 의미에서 케인스주의는 국가가 적극적인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전략이다. (…) 이와 비교해 군사 케인스주의는 그 예산의 지출 대상이 군수 산업에 국한된다는 차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무기의 성능보다 무기 생산 그 자체가 더 중요해진다. --- pp.128-129 “일대일로에는 그렇게 돈을 쓰면서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왜 재난 지원금을 한 푼도 안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돈을 받아 간 나라들은 다시 중국 관료들에게 막대한 리베이트를 건네는지도 모르죠. 그 많은 돈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 걸까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 중국인 지인은 내게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일대일로 역시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처럼 소수 집단을 위해 다수 대중의 이익을 볼모로 잡고 계급 전쟁을 은폐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177 통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통치 권력이 디커플링을 반대하는 보다 솔직한 이유는 디커플링이 궁극적으로 통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기 중국 경제 발전의 핵심 배경에 달러 패권 체제로의 편승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개방 시기 중국의 폭발적 경제 성장은 결국 ‘달러 패권 체제 내의 지위 변화’에 불과하다는 경제학자 리샤오의 단언은 이를 시사한다. 마오쩌둥 시기 대약진운동과 달리 왜 개혁개방은 성공적이었을까? 중국은 두 시기 모두 풍부한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둘의 성패를 가른 핵심 요인은 결국 미국(해외) 자본의 유무라 할 수 있다. --- p.184 2025년 7월 트럼프 정권은 엔비디아의 AI용 GPU인 H20의 대중국 수출을 허가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바이든 정권의 수출 통제 규정에 맞게 ‘다운그레이드’한 칩이었다. 트럼프 정권은 4월 H20의 대중국 수출을 불허했으나, 결국 입장을 바꾼 것이다. 수출 승인 직후 엔비디아의 주가는 4.5% 폭등했다. (…) 트럼프 정권은 왜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을까? --- pp.217-218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제작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행태가 과연 타당한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실, 타이완과 한국이 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자유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엔비디아나 퀄컴 등 미 반도체 설계 기업의 외주화에 따른 글로벌 분업의 산물이었다. 즉 미국의 반도체 생산 인프라 약화는 기술력 퇴보나 산업 경쟁력 상실 때문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따른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 p.224 트럼프의 거짓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미 대중의 경제적 빈곤이 중국 등 외국과 그에 결탁한 미국 내 세력 때문이라는 게 첫 번째 거짓말이라면, 자신만이 그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두 번째 거짓말이다. 일종의 ‘이중 기만’이다. --- p.244 만약 앞으로 트럼프 정권의 모순적 행태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극대화된다면, 트럼프 정권은 어떠한 대응 전략을 구사할까? 극단적으로는 억압적 통치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 트럼프 정권이 범죄와 불법 이민자를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워싱턴 D.C.에 주방위군을 배치했고, 뉴욕이나 볼티모어 등 민주당 지지가 강한 도시에도 군대를 배치하려 한 것은 그 징후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조치를 미국민의 53%, 공화당 지지층의 80%가 지지한다는 사실은 트럼프 정권이 억압 전략의 유혹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 --- p.284 중국에 대한 한국의 대응 역시 중국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독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기 이후 중국 통치 권력이 통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경제 건설을 최고의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면, 한국은 트럼프 정권에 비해 시진핑 정권과의 접점을 찾기가 그만큼 쉬울 것이다. 시진핑 정권이 자유 무역과 다자주의라는 자본주의 국제 질서의 규범을 강조한다는 사실, 그리고 자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안정을 강력히 희망한다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 pp.314-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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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부터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까지
미중 갈등은 어떻게 양국의 내부 정치에 활용되는가 국가가 외부의 적과 충돌할 때 우리는 대개 그 원인을 국가 안보와 국익에서 찾는다. 그러나 외적은 과연 누구에게 ‘유용’한가? 통치 권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적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협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대중을 결집시키며,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대외 분쟁이 어떻게 국가 내부의 정치적 응집과 통치 정당성 강화에 활용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핀다. 한국전쟁은 이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다. 1950년 초까지만 해도 트루먼 정부는 중국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제7함대를 타이완 해협에 투입했다. 저자는 이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의 배경으로 당시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과 ‘중국 상실(중국의 공산화)’ 논쟁을 짚는다. 중국 공산화를 막지 못했다며 트루먼 정권에 비난을 가했던 공화당과 ‘차이나 로비’ 세력의 공격에 시달리던 트루먼 정부에게, 한국전쟁은 대중 강경책을 보여 줄 정치적 계기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대외 분쟁이 중국 내 정치를 움직였다. 마오쩌둥 정권은 한국전쟁 참전을 ‘항미원조’, 즉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고 가정을 지키며 나라를 수호한다”는 거대한 대중 동원 운동으로 전환했다. 미국이라는 외적의 위협이 중국 인민의 ‘일치단결’의 연료로 타오른 것이다. 1958년 진먼섬 포격 당시에도, 마오쩌둥은 “대외 긴장이 대약진운동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81쪽) 실제로 중국군은 수십만 발의 포탄을 퍼부으면서도 섬 자체를 점령하려 하지 않았으며 뒤로는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했다. 저자는 이런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국외 분쟁을 내부의 생산과 동원에 활용하려 하는 통치 권력의 속성을 포착한다. 이러한 속성은 지금의 미중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2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타이완 방문을 강행하자 중국은 대규모 군사 훈련으로 대응했다. 바이든 정부와 미 군·정보기관은 애초부터 펠로시의 타이완행에 부정적이었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러 밀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펠로시는 왜 타이완으로 향했을까? 저자는 펠로시 개인의 정치적 상황과 그해 중간선거, 미국 사회의 반중 정서라는 국내 정치적 변수를 복합적으로 들여다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지 전쟁이 아니다”라는 바이든 정부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의 말처럼(67쪽), 저자는 양국 통치 권력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필요로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통찰한다. ‘국가 안보’라는 말 뒤에 숨은 경제적 이해관계 추적하기 현재 미국이 지출하고 있는 막대한 국방비는 단순히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한 비용만이 아니다. 군수 공장을 가동시키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지역과 기업, 노동자와 정치인을 하나의 이해관계망으로 묶는 거대한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 3장과 4장에서는 ‘군사 케인스주의’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대외 분쟁, 특히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국내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추적한다. 케인스주의가 적극적인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이라면, 군사 케인스주의는 그 막대한 재정을 군수 산업에 투입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전략이다. 2차 대전기 루스벨트 정권은 1940년 6월 이후 1년 만에 국방 지출을 무려 600%나 증가시켰는데, 이로 인해 1940년 14.6%였던 실업률이 1944년 1.2%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군사 케인스주의 정책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129쪽) 그런데 저자는 지금의 군사 케인스주의가 뉴딜 시기와 결정적 차이를 보인다고 분석한다. “루스벨트식 군사 케인스주의가 고소득층에 대한 공격적 세금 인상과 더불어 일자리 창출을 통해 다수 대중의 이익을 보장하려 한다면, 신자유주의적 군사 케인스주의는 대규모 국방 지출을 수행하면서도 세금 인하와 노동 유연성 강화를 통해 사회적 부를 대중에게서 군수 자본으로 이전한다”(163쪽)는 것이다. 즉 지금의 군사 케인스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군사 케인스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중국 위협론’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는 미국의 군비 확대와 산업 정책을 정당화하는 좋은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둘러싼 수출 통제 역시 마찬가지다. 2022년 바이든 정부는 고성능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반도체법을 통해 미국 내 생산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저지하기 위한 국가 안보 정책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국가 안보를 위해 수출을 통제하는 것”과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가 안보를 파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99쪽) 미중 갈등과 국가 안보의 논리가 양국 내부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면, 미국과 중국의 완전한 디커플링은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 앞에서, 저자는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속성과 특정 국가 안에 갇혀 있지 않으려 하는 자본의 ‘탈주 본능’을 짚는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력한 관세 정책 및 수출 통제 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첨단 기술은 그 정책을 비웃듯 페이퍼 컴퍼니나 제3국, 밀수 시장이라는 우회로를 찾아 흘러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미국 기업들 역시 미국과 중국의 완전한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2025년 트럼프 정부가 한때 금지했던 엔비디아 H20의 중국 수출을 다시 허용하고, 2026년에는 H200 수출까지 승인한 것은 자본의 속성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자본의 속성이 탄생시키는 이러한 모순적 장면들을 통해, 저자는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반도체 생산 자본과 미 정부 사이에서 현실화할지도 모를 일”(204쪽)이라고 지적하며 미중 갈등을 추동하는 또 하나의 힘인 양국 내 경제적 이해관계를 해부한다. 때리고, 위협하고, 다시 거래하는 트럼프식 정치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 너머를 들여다보고 한국 외교의 방향을 다시 묻기 마지막 5장에서는 ‘트럼프라는 변수’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트럼프는 중국, 이민자, 진보 세력, 언론 등을 끊임없이 새로운 ‘적’으로 돌리며 자신이 그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구할 유일한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본다. 특히, 트럼프 정치의 핵심을 ‘이중 기만’이라고 규정하는 대목은 통렬하다. 그 이중 기만의 첫째는 “미 대중의 경제적 빈곤이 중국 등 외국과 그에 결탁한 미국 내 세력 때문이라는 것”, 둘째는 “자신만이 그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244쪽)는 것이다. 그런데 막무가내인 트럼프에게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대중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지지하거나 자신과 결착한 자본의 이익도 충족시켜야 하고,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외국과 안정적인 관계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삼중 딜레마’다. 삼중 딜레마의 세 축은 수시로 충돌하는데,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해법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다름 아닌 ‘그때그때 말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미국 정치 및 미국 주식 시장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특히 잘 알려진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늘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다)’라는 별명이 이를 상징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유럽 50% 관세, 대중국 145% 관세 정책으로 그들 국가를 위협했다가 잇따라 시행을 유예한 바 있다. 직설적이고 강경한 그의 언사는 정치적 힘이 될 때가 있지만, 그것이 자본과 시장에 실제 손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다시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언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2026년 2월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이란 전쟁은 이러한 트럼프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저자는 이 전쟁을 트럼프 정부가 직면한 국내 정치 위기와 대외 정책, 특정 세력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사례라고 해석한다. 또한 역설적으로, 미국이 중동이라는 수렁에 깊이 빨려들수록 중국에는 새로운 협상 공간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2026년 5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협조를 기대했고, 이후 미국의 대이란 세컨더리 보이콧에서도 중국 주요 은행들은 대상에서 빠졌다.(293쪽) 트럼프가 스스로 미국이 그동안 쌓아 온 동맹 관계와 자유주의 질서, 소프트 파워를 흔들수록 중국으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면 미중 관계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한국 외교의 여러 역사적 사례를 짚으며 앞으로의 외교가 나아갈 방향을 짚는다. 그중에서도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Rhizome)’ 개념을 빌려 저자가 제안하는, ‘리좀 외교’라는 새로운 외교 전략은 흥미롭다.(311쪽) 리좀이란 중심이나 위계 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연결되는 관계망을 뜻한다. 국가가 하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단일체가 아니라면, 한국 역시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만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양국의 통치 권력과 자본, 단체, 개인 등 다양한 행위자들과 전방위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는 국가라는 단일체 사이의 관계일 뿐일까? 누가 ‘국익’을 말하고 있으며, 그 국익은 과연 누구의 이익인가? ‘중국 위협론’이든 ‘디커플링’이든, 정작 그 언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그동안 당연시해 온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구도 뒤에 숨겨진 미중 관계의 복합적 실체를 드러내는 실마리다. 나날이 혼란스러워지는 미중 관계와 국제 질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 혼란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한국의 진정한 방향성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은폐된 전쟁》은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유용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