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
목차 본문 시리즈 및 저자 소개 copyrights (참고) 분량: 약 2.2만자 (종이책 추정 분량: 약 35쪽) |
|
<미리 보기>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개경을 등진 산골짜기, 문이란 문이 모두 안으로 잠긴 마을 위로 소리 없이 쌓여 가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 한 사내가 오래된 나무처럼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릎에 놓인 두 손은 이미 제 것이기를 그친 듯 굳어 갔으나, 그 굳은 손아귀 안에 든 흰 비단 한 자락만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었다. 평생을 목 안에 걸어 두고 한 번도 소리 내어, 놓아 주지 못한 이름이었다. 이제라도 부르려고 마른 입술을 벌렸는데 숨이 먼저 얇아져, 이름은 이번에도 목울대를 넘지 못한 채 가슴께로 도로 가라앉고는 했다. 지키지 못한 나라가 등 뒤에 있었고, 지키느라 놓친 하늘이 머리 위에 있었다. 사내는 그 둘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마지막 숨을 고르며, 오래전 연못가에서 처음 보았던 흰 옷자락과, 그 옷을 감추던 제 손과, 그런 손을 끝내 잡아 주었던 가느다란 손을 차례로 떠올렸다. 떠오르는 것마다 그리운 것들이어서, 사내는 제 몸이 식어 가는 줄도 모르고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남자는 웃었지만, 굳어버린 근육들이 미소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인 장면이었다. "꼬. 끼오!" 먼 마을에서 첫닭이 울었다. 하늘 끝까지 목을 뽑아 길게 우는 소리에 사내의 고개가 조금 더 젖혀졌고, 그대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그 위로도 공평하게 쌓였다. 봄이 되어서야 한 여인이 그 산을 올라왔다. 머리가 반은 세었으나 걸음만은 흐트러지지 않는 여인은, 나무들 사이에 나무가 된 채 굳어 있는 사내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굳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 보았다. 손안에서 흰 비단 한 자락이 눈 녹은 물기를 머금은 채 드러났다. 제 날개옷에서 찢겨 나간 나머지 반쪽을,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쥐고 있었다. "..." 여인은 울음 대신 제 품에서 같은 결의 천 한 자락을 꺼내어 사내의 것과 나란히 놓아 보고는, 두 자락을 도로 하나씩 나누어 하나는 사내의 손에 되돌려 쥐여 주고 하나는 제 품에 넣었다. 하늘과 땅이 각자 반쪽을 지니는 것으로,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약조가 되었다. 후회는 오래 묵을수록 단단해져 마침내 뿌리가 되었다. 사내가 지키지 못한 오백 년 사직이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 위에 새로 선 왕조가 또 오백 년을 채우고 무너지는 동안에도, 뿌리는 잠들 줄을 몰랐다.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경성 북촌의 끝자락이었다. 만세 소리가 종로를 넘어 골목이란 골목마다 번져 가던 봄에도 굳게 잠긴 대문이 하나 있었다. 세도가 높던 시절의 위세는 진작 스러졌어도 담만은 여전히 높은 그 집은, 나라가 국권을 내어놓던 해부터 문을 걸어 잠갔다. 총독부에서 내려온 은사공채를 사랑 마당 한복판에서 불사르며 망한 나라의 녹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던 노인이 제 손으로 빗장을 지른 뒤로, 집은 열 해 가까이 담 밖 세상과 절연한 채였다. 이한운은 그 담장 안에서 나고 자란 종손이었다. 걸음을 떼기도 전에 사당에 절하는 법을 배웠고, 천자문보다 앞서 족보 읽는 법을 익혔다. 조부는 어린 그를 무릎에 앉히고 가승의 갈피를 넘기며 말하고는 했다. "나라는 망해도 집은 망하지 않는 법이다. 사당이 서 있고 제사가 이어지고 땅문서가 궤 안에 있는 한, 이 집이 곧 나라다. 종손은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다." <한뼘 로맨스 컬렉션 소개> 시간과 비용 부담을 확 줄여서, 로맨스 초심자도 가볍게 읽는 컬렉션입니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어떤 주인공에게 끌리는지, 다른 사람들은 뭘 읽고 좋아하는지 궁금하셨지만, 몇십만 자가 넘는 장편을 다 떼야 알 수 있다는 생각.....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가볍게 읽으면서 스낵처럼 즐기는 새로운 스타일의 로맨스들이 찾아 옵니다. 앞으로 나올 한뼘 로맨스 시리즈를 기대해 주세요. (참고) 한뼘 로맨스 컬렉션 내 번호는, 편의상의 부여된 것으로, 읽는 순서와 관련이 없습니다. 컬렉션 내 모든 작품이 그 자체로 완결됩니다. 출간 (예정) 목록 다시 본, 해_라한(羅瀚) 분명 또 그럴 거야_한달식비 새벽 꽃시장에는 가지 마세요_쇠파리 캠핑장에서 위험한 대형견을 주웠다_희랑 대물 복권 아저씨_과줄 위의 도서 외 매달 10여종 이상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