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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08
추천사 11 프롤로그 16 제1부 한 소년의 눈 23 제2부 바르샤바, 한 예술가의 형성 33 제3부 함창연의 대표작 83 제4부 프라하, 폐허 위에서 찾은 문명의 가능성 107 제5부 귀국, 그 후 135 제6부 자화상 연대기 146 부록 평론 모음-함창연 예술에 대한 비평적 시선 188 에필로그 219 함창연 연보 232 도판 목록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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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젊은 미술 전공 유학생 함창연을 국가대표로 내세웠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심사위원 전원 일치라는 이례적인 평가를 받으며 당당히 입상한 것이다. 3년간의 혹독한 전쟁 직후라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게릴라전의 총성이 멎은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 황폐한 상황에서 젊은 화가가 세계 무대에 나가 거둔 성과는 북한 주민들에게 단순한 승리를 넘어선 최고의 위로이자 감동이었다. 그리하여 북한 사람들이 미술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오랫동안 ‘피카소, 그리고 함창연’이었다.
--- p.22, 본문「프롤로그」 중에서 창연은 막대기로 땅바닥에 그 모습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소의 둥근 몸통과 쟁기의 날을 그리고, 이어 인물의 형상을 더했다. 소와 사람의 움직임은 한 덩어리처럼 묶여 있었고, 화면에는 노동의 긴장과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일하는 인간’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이 담겨 있었다. --- p.26, 본문「제1부」 중에서 복학 이후 그는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청년은 이제 다시 연필과 판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전쟁 이전의 학생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인간의 한계와 존엄, 그리고 역사의 무게를 통과한 뒤였다. --- p.31, 본문「제1부」 중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언어 문제와 문화 차이, 귀국 후의 역할까지 함께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함창연의 최우등 졸업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동유럽 최고 수준의 미술 교육 체계 안에서 실력과 태도를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단순히 북한에서 온 학생이 아니라, 바르샤바 미술 아카데미라는 국제적 교육 환경 안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예술가였다. --- p.46, 본문「제2부, 함창연의 작업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타고난 재능만이 아니라 모든 기법을 몸에 익히고 끝까지 밀어붙인 꾸준한 연마 과정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탄탄한 기반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은 양적인 풍부함을 넘어 질적인 완성도까지 함께 갖출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높은 밀도로 축적된 작품들은 더 이상 개인의 작업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외부로 나아갈 조건을 갖추었다. 이십 대 중반에 불과한 청년이자 학생이 국제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 p.59, 본문「제2부」 중에서 학생 신분의 함창연이 심사 대상에 올랐고, 최종적으로 당대의 저명한 예술가들과 각국에서 부상하던 젊은 작가들과 함께 금메달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는 서로 다른 세대와 경력을 지닌 작가들이 참가한 국제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이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 p.72-73, 본문「제2부」 중에서 피카소가 현실을 고발하고 콜비츠가 고통을 위로했다면, 함창연은 그 모든 시간을 조용히 기록하고 증언했다. 그의 예술에는 특정 주장이 앞서지 않지만, 절제된 표현 속에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예술가는 스스로를 응시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음을, 그는 평생에 걸친 ‘견딤의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 p.76-77, 본문「제2부」 중에서 그의 예술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판화 기법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지만, 기술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기법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경험을 얼마나 깊이 담아낼 수 있는가였다. 그의 판화는 겉으로는 절제되어 있지만, 안으로는 오랜 시간과 생각이 쌓여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함창연의 작업은 단순한 판화가의 작품을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기록한 예술로 남는다. --- p.80-81, 본문「제2부」 중에서 〈거제도〉는 1957년이라는 냉전기 정치 환경 속에서 잉태되어 제작되고 출품된 작품이다. 그러나 함창연은 잔혹함을 과장하거나 죽은 이를 영웅으로 숭고화하는 도식적 재현을 거부했다. 대신 그가 화면에 남긴 것은 인간이 소멸한 장소와 생명이 빠져나간 육체뿐이다. 그 황량한 화면에는 오직 죽음 뒤에 남겨진 몸의 정직한 무게와 공간을 엄습하는 적막만이 실존한다. 바로 이 철저히 절제된 시선으로 인해, 작품은 당초 부여되었던 체제 선전의 목적에 머물지 않는다. 〈거제도〉가 특정 진영의 정치적 기획에서 출발한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에 새겨진 죽음은 결코 이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죽음’으로 엄연히 남기 때문이다. --- p.105-106, 본문「제3부」 중에서 이처럼 함창연은 기운생동의 생명력, 심상의 표현, 그리고 족자 형식의 공간 구성, 낙관의 사용을 서양 판화의 뛰어난 조형 능력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하였다. 이렇듯 동서양의 미학을 완벽하게 융합해 낸 그의 작품 세계는, 앞으로 미술사적으로 더욱 깊은 연구와 새로운 재조명이 이루어질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p.132, 본문「제4부」 중에서 함창연은 본래 교육자의 기질을 타고난 이였다. 복잡한 이론이나 예술적 원리도 명쾌하게 풀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으며, 성품 또한 온화하여 감정을 겉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면모는 교단에 선 첫날부터 빛을 발했다. 학생들에게 그는 언제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스승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깊은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젊고 단정한 자태와 인자하면서도 순박한 인상, 여기에 여러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적인 면모까지 더해지며 사람들은 그를 ‘멋쟁이 선생’이라 불렀다. 단순히 외양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깊이와 기품 있는 태도가 자연스레 밖으로 배어 나온 결과였다. --- p.140, 본문「제5부」 중에서 그의 자화상들은 북한 미술의 일반적인 규칙과 미묘하게 어긋난다. 그 얼굴들은 밝거나 활기차지 않으며, 미래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침묵 속에서 관람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체제는 이념의 승리를 상징하는 ‘확신의 얼굴’을 원했지만, 함창연은 고뇌와 고독을 묵묵히 ‘견디는 얼굴’을 남겼다. 이러한 태도는 명시적인 저항은 아니었을지라도, 체제가 요구하는 감정의 방향과는 분명히 다른 결이었다. --- p.186, 본문「제6부」 중에서 함창연이라는 한 예술가의 삶은 단지 화가 개인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시대의 흐름을 보여 주고,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고뇌하며 성장하고 살아갔는지를 증언하는 기록이다. --- p.230, 본문「에필로그」 중에서 남북나눔운동을 통해 여러 차례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미술 관계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함창연이라는 이름을 꺼내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화에 피카소가 있다면, 판화에는 함창연이 있습니다.” --- p.227, 본문「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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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고증과 예술적 구도로 되살린 ‘침묵과 견딤의 미학’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구전이나 선전물에 의존하던 기존 한계를 넘어선 ‘철저한 사료 중심의 접근’에 있다. 저자는 바르샤바 미술아카데미에 보관된 학생증, 학업 성적표, 졸업 증서를 제시하여 함창연의 천재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냈다. 또한 유학 시절 어머니에게 보낸 애틋한 편지들과, 최고 지도자 중심의 사회에서 끝내 체제에 내어주지 않은 마지막 보루였던 ‘자화상 연대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율에 가까운 서사적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다양한 판화의 형식과 기법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온 함창연의 작품과, 한반도 현대 판화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선구적 위치를 미술평론가들의 날카로운 비평과 함께 담았다. 이 책은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진 남과 북의 정서를 문화적 언어로 어루만지는 따뜻한 평화의 초청장이자,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은 인간 존엄성을 목격하게 하는 엄숙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