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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아무것도 몰랐던 시간들 - 서울 토박이, 해군에 지원하다 - 진해의 자부심, 그리고 철없는 젊은이 - 숙취와 삭발, 그리고 장복터널의 끝 - 렌즈를 낀 훈련병, 맨손의 화타가 되다 - 곁눈질로 배운 사회, 달콤한 외박 - 집밥의 온기, 그리고 서평택의 칼바람 - 2함대 수송대, 암기왕과 해군가 2부. 그날, 서해는 멈췄다 - 검은 세단, 그리고 선택받은 핸들 - 조기경보의 심장부, 폭풍 전야의 3월 - 2010.03.26, 평화가 비명이 된 봄밤 - 깨어진 평온, 잿빛이 된 2함대의 아침 - 깨져 버린 유리창, 살아남은 자들의 침묵 - 그날 이후, 우리가 했던 생각들 - 하늘도 울었다, 영원한 항해를 떠나며 - 행정이라는 이름, 남겨진 사람들 3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 - 10분의 간극, 생과 사의 경계에서 - 바람 잘 날 없는 208전대, 섬의 그림자 - 상병의 무게, 전과 달라진 시선 - 2010.11.23, 다시 타오른 서해 - 탄흔이 새겨진 섬, 그곳의 눈빛들 - 호텔 캘리포니아, 그리고 강철의 의지 4부. 남겨진 사람들, 이어지는 시간 - 운전대를 잡은 지휘관, 그리고 이별 - 서해의 윤슬, 마음의 문을 연 사람들 - 메멘토 모리, 그들의 준엄한 메시지 - 핸들을 넘기고, 2함대를 나서다 에필로그 마지막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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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르고 위병소를 나서는 순간, 차갑고 맑은 바람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낯익은 편의점 간판, 거리의 자잘한 소음, 지나가는 사람들. 분명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데, 밝기와 채도가 보정된 화면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구속하지 않는 시간. 우리 여섯 명은 그 달콤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는 사람들처럼 멈춰 섰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_40
안개 사이로 반쯤 모습을 감춘 대형 스피커에서 ‘해군가’가 흘러나올 때면, 수송대 선후임들은 추위를 이기려는 듯 목청껏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하나같이 입에서는 입김이 새어 나왔다. 진해의 훈련소에서도 매일같이 불렀던 노래였다. 하지만 군함이 정박한 부두와 차가운 서해를 곁에 둔 자대에서 부르자, 같은 가사도 다르게 들렸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노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아무 말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철없던 청년들이 조금씩 군인이 되어가던 수송대의 아침이었다._55 아까 생활관 점호할 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음악방송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침몰한 함정의 이름을 붙잡고 서 있었다. 사령부 본청 앞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란 달이 떠 있었고, 그 곁으로 작은 별들이 드문드문 반짝였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 밤하늘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문득 백령도 앞바다에서도 같은 하늘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바다 위를 항해하던 전우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_77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격언은 냉정하게도 사실이었다. 생활관에 걸려 있던 벽시계의 초침은 누구도 자신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비웃는 듯, 무심하고 조용하게 돌아갔다. 골든타임 72시간. 그 잔혹한 기점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채널… 두 채널…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_83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대들과 함께 끝까지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천안함 생존 전우들의 눈물 어린 메시지가 46명의 동료에게 닿았을까. 우리는 정해진 위치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영정이 하나씩 지나갔다. 걸음은 일정했고, 속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름이 불렸다. 한 명씩, 천천히. 불린 이름들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듯했다._101 ‘삶과 죽음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일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오래된 격언의 의미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소천은 평온한 휴식처럼 느껴졌지만,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속에서 스러져간 전우들의 희생은 조금 달랐다. 그 희생은 남겨진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준엄한 메시지처럼 느껴졌다._ 231 시간이라는 파도는 많은 것을 집어삼킨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마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존재’들까지도. 내 청춘의 2년을 녹여낸 군 생활. 그 기간 동안 겪은 국가적 사건들. 잊히기엔 너무 마음 아픈 그때의 사람들. 하지만 세월 앞에서 그 기억들마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잊힌 것인가 싶었다. 그들이 잊혔기에 조용한 것인가 싶었다._2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