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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시작하며 05
제1장 아름다운 의미 11 제2장 저주받은 운명 41 제3장 아버지의 여자 68 제4장 아비를 문 꽃뱀 88 제5장 천년굴의 추억 115 제6장 틈뚜럭의 첫사랑 137 제7장 전쟁과 천년굴 171 제8장 붉은 완장의 습격 199 제9장 쌍궁리 나루 214 제10장 슬픈 꽃가마 240 제11장 또 다른 전쟁 273 제12장 복수라는 이름의 황홀한 꽃 294 제13장 운명적인 만남 322 제14장 황금을 일구는 생명수 351 제15장 슬픈 사랑의 기억 382 제16장 가슴에 묻은 사랑 400 제17장 뜻밖의 비밀 431 제18장 화룡점정 455 소설을 마치며-어머니, 순애 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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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꽃가마 편
순애는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소금냄새를 느끼며 물기가 가득 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미줄이 얼기설기 들어붙은 시커먼 서까래 사이에 천섭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돋았다. 순애는 의아해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 시 붉은 완장 김동태의 얼굴이 빛 바랜 사진처럼 희미하게 다가섰다. 얼굴이 분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어느 사이 먼 옛날의 얼굴처 럼 잊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명자가 순애의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아주었다. 시원하였다. 금방이라도 기운을 차릴 것만 같았다. “쪼메 자그라. 인자는 다 끝난겨.” 고마우신 어머니……. 순애는 속으로 생각하며 수건을 쥔 명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엄니! 쪼메 웃지 그려?” 순애의 손등으로 명자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려, 웃어야지. 니 새끼가 나왔는디 내가 안 웃어서야 되겄 냐?” “장서방이…… 아들이먼, 이름을 성옥이라고 짓는다고 혔는디…….” “그려…….” “엄니……, 딴 디 가지 말고…… 여그 기양 있어…….” 명자의 손을 꼭 쥔 채로 순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결 속 에서 순애는 마당에서 들려오는 명숙의 소리를 들었다. “그여 가셨구만. 쯧쯧…….” 그리고는 뒤이어 생각난 듯 삼용을 불렀다. “대문을 잠거야 혀. 자네도 이 집으서 움직이믄 안 되야. 성태는 오늘은 집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혀. 대문에도 금줄을 하나 더 치게 나.” 삼용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예, 알았구만이라오.” 순애는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붉은 완장 편 “오빠, 엄니는 시방 산 것만 혀도 다행여……. 그 사람들이 몰려와 갖고…… 몇 번이나 혼절혔는지 몰라…….” “그 사람들이라니?” “창만이라는 사람허고……. 완장 차고 죽창 든 사람들 말여……. 그 사람들이 엄니 머리채를 수도 없이 잡어챘단 말여……. 아브지허고 오빠를 잡는 날까지만 살려주겄다고 혔어. 다 죽인다고 난리를 쳤단 말여…….” 천영은 흐느끼며 무릎 사이로 고개를 쳐박았다. 아직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천섭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불끈 쥔 주먹을 어찌할 줄을 몰라 하다가 바람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의 아버지는 말릴 기운도 없는지 그저 아내의 손만 쥐고 있다. 천섭이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의 등 뒤로 아버지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벌씨 도망갔다. 내가 내촌에 댕겨왔어.” 천섭이 마루에 그대로 주저앉아 다시 마룻바닥을 몇 번 내리쳤다. 창만의 얼굴이 오락가락하다가 사라졌다. 천섭은 고개를 수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헐레벌떡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어지러운 마당을 상상하지 못하고 들어섰던지 어둠 속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천섭이 그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금방 헤어졌던 성태였다. 성태는 정신없이 일어서더니 천섭에게 달려들어 그의 손을 붙들고 냅다 대문 쪽으로 달려 나갈 기세였다. “얼른 피혀야 혀! 저놈들이 미쳐갖고 몰려온당게!” 천섭이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브지! 얼른 일어나셔요. 가들이 아적 다 안 갔나벼요. 시방 새까맣게 몰려온대요.”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묵묵히 앉아 있다. 그러더니 조옹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자 나는 느이 엄니를 못 떠난다. 그 놈들 다시 오믄 느이 엄니는 죽어. 얼른 너나 피허그라.” 따라 들어온 성태가 그를 달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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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젊은 여성 장세희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신문기사에서 시작된 탐색은 할머니 순애의 파란만장한 삶과 한 가족의 오랜 비밀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통과하며 사랑과 이별, 배신과 상실을 겪어야 했던 순애. 시대는 그의 삶을 끊임없이 뒤흔들었지만, 그는 끝내 자식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 세희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 다가갈수록 과거와 현재는 하나로 이어지고, 묻혀 있던 사랑과 상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순애』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을 복원하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묻는 장편소설이다. * 주요인물 소개 오순애 -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 낸 어머니 소설의 중심인물.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통과하며 사랑과 상실, 희생을 겪는다.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식을 지켜 낸다. 한 여인의 개인사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어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윤천섭 - 순애의 사랑이자 비극적인 운명의 중심인물 순애의 연인. 전쟁과 시대적 혼란 속에서 순애와 깊은 인연을 맺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복잡한 현실과 운명의 굴곡에 휘말린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풀리지 않은 과거의 비밀과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다. 장삼용 - 순애의 남편 순애와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지만, 그의 삶과 행동은 순애에게 또 다른 고통과 시련을 안겨 준다. 순애가 감당해야 했던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고단한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장성옥 - 순애의 아들 어머니의 고통과 가족의 비극을 자신의 삶 속에 짊어진 인물.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며, 그의 삶과 죽음은 다음 세대가 과거의 진실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장세희 -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젊은 여성 장성옥의 딸이자 순애의 손녀. 1990년대 말,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기 위해 과거를 추적한다. 그의 탐색을 통해 한 가족의 비밀과 순애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서서히 드러난다. 김미선 - 과거의 비밀을 추적하는 출판인 잡지사 기자를 거쳐 출판사를 운영하는 여성. 장성옥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가족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장세희와 함께 움직인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성준 - 가족의 비극을 기억하는 동생 장성옥의 동생이자 장세희의 숙부. 형의 삶과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으며, 세희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을 이어 주는 인물이다. 강명자 - 순애의 어머니 순애를 낳고 기른 어머니. 시대의 혼란과 가난 속에서 가족의 삶을 지탱하며, 순애가 겪는 고난의 출발점이자 모녀의 삶을 통해 이어지는 여성 수난사의 한 축을 이룬다. 오덕호 - 순애의 아버지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격변을 겪는 가장. 그의 삶은 순애의 어린 시절과 가족의 운명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식민지 시대 평범한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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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을 완성하는 데 28년이 걸렸다
- 한 여인의 삶으로 되살려 낸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름은 순애였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 백탄 장종권의 첫 장편소설 『순애』가 1998년 초판 출간 이후 28년 만에 작가결정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오랜 세월 원고를 거듭 읽고 고쳐 쓰며 문장과 구성, 인물과 사건을 다듬어 완성한 작품이다. 단순한 복간이 아니라 작가가 처음 의도했던 소설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다시 쓴 결과물이다. 『순애』는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장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가난, 산업화의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 낸 사람들.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지 못했지만,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삶의 토대였다. 소설은 1990년대 말, 젊은 여성 장세희가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다.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신문기사는 세희를 가족의 과거로 이끌고, 그곳에서 할머니 순애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구조 속에서 한 가족의 비밀과 시대의 상처가 서서히 밝혀진다. 사랑은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일생을 고통 속에 가두기도 한다. 순애의 삶은 사랑과 상실, 희생과 인내의 연속이다. 시대의 폭력은 개인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가난과 전쟁은 평범한 행복마저 빼앗아 갔다. 그러나 순애는 무너지는 삶의 한복판에서도 자식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는다. 이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특별한 영웅의 위대한 업적이 아니다. 이름 없이 살아간 한 여인의 일상과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다. 역사는 전쟁의 승패와 시대의 변화를 기록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한 어머니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지켜 냈는지는 좀처럼 기록하지 않는다. 『순애』는 바로 그 기록되지 않은 삶을 문학의 자리로 불러낸다. 또한 이 작품은 단순히 어머니의 희생을 찬양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상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갈등,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비극을 함께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는 손녀 세희의 시선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 곧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28년의 퇴고 끝에 작가가 도달한 곳은 결국 어머니였다. 백탄 장종권은 자신의 어머니를 소설로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다. 특별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 희생과 인내가 담겨 있었다. 『순애』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가족사이고, 한 여인의 생애이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생활사다. 이 작품은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오늘의 삶을 가능하게 한 부모 세대의 시간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이 끝내 지켜 내고자 했던 사랑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28년 만에 완성된 『순애』는 잊힌 시대를 견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신의 뿌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어머니는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