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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역자 서문 시대적 배경 해설 등장인물 작품 해설 용어 해설 제1장. 판사와 주디 제2장. 앤, 읍내에 가다 제3장. 판사님의 정원에서 제4장. “네 할머니 말이다, 얘야” 제5장.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제6장. 비, 그리고 달아난 아이 제7장. 뱃사람 토미 톨리버 제8장. 하얀 일요일 제9장. 우울한 월요일 제10장. 심술쟁이 메리 아가씨 제11장. 공주와 백합 아가씨 제12장. 대장 노릇 하는 런슬럿 제13장. 점괘와 공포 제14장. 소중한 야옹이 제15장. 스페인 은화 제16장. 바람과 파도 제17장. 변덕과 모델 제18장. 주디, 약속을 지키다 제19장. 퍼킨스, 은그릇을 닦다 제20장. 앤, 도둑 소리를 듣다 제21장. 주디 선장 제22장. 표류자들 제23장. 은빛 배를 타고 제24장. 「뱃사람은 바다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제25장. 런슬럿, 젖소를 사다 제26장. 주디, 자선 부인 노릇을 하다 제27장. 여름이 저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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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처음 입을 여는 순간부터 이 소설은 독자를 시험한다. 주디 제임슨은 만나는 사람마다 무언가를 싫다고 말한다. 고양이가 싫고, 우유가 싫고, 소풍이 싫고, 시골이 싫고, 남자애들이 싫다. 첫 장을 읽는 동안 독자는 이 아이를 좋아하기 어렵다.
작가는 그 불편함을 서두르지 않고 견딘다. 그리고 첫 장의 마지막에서야 이유를 흘린다. 주디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앓는 동안 곁을 지켰고, 아버지는 사 년 전 바다에서 소식이 끊겼다. 이토록 부지런히 미워하는 아이는 실은 미워할 힘이 남아 있을 만큼 절실하게 무언가를 잃은 아이다. 주디의 "싫어"는 취향이 아니라 방어의 자세였다. 1907년의 소녀소설에는 정해진 문법이 있었다. 결함 있는 소녀가 착한 친구와 자애로운 어른의 감화를 받아 마지막에는 온순한 숙녀가 된다. 베일리는 그 문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따르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도 주디는 화가가 되겠다고 우기고,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유를 묻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이 결말의 단단함이 백 년 뒤에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 제18장, 벽난로 앞에서 주디는 자기가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배도 몰지만 정작 아무도 도운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재주가 많다고 사랑해 주는 건 아니야."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인물의 입으로 나오는 유일한 대목이다. 그리고 세 장 뒤, 주디는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겁먹은 친구에게 구명대를 넘긴다. 고백이 행동으로 증명되는 방식이 조금도 요란하지 않다. 읽는 재미는 오히려 곁가지에 있다. 자기 집 집사를 은근히 무서워하는 판사, "저는 먹지 않습니다"라고 태연히 거짓말하는 집사 퍼킨스, 아이스크림이 나오자 생선 태운 것쯤은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말하는 어밀리아. 백 년 전 시골 마을의 웃음이 번역을 통과해도 살아남는다는 것이 놀랍다. 물론 시대의 한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유랑민을 다루는 시선, 하인 계층의 말투를 희화화하는 방식, 여자아이의 장래를 논하는 틀에는 1907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번 한국어판은 그것을 매끄럽게 손질해 지우는 대신 원문대로 옮기고 각주로 오늘의 관점을 덧붙였다. 오래된 책을 읽는 즐거움의 절반은 그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거리를 실감하는 데 있다는 역자의 판단이다. 실종된 아버지가 돌아오는 결말을 두고 우연이 지나치다고 여길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말의 무게는 생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자리에 있다. 주디가 사 년을 기다렸는데도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그 애가 기다림을 잠시 내려놓고 남을 구하려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다. 기적은 기다림의 보상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벗어난 자리에 찾아온다. 그리고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뒤로 세 장이 더 이어지며 소년은 젖소를 사고, 아이들은 가난한 노부인을 몰래 돕고, 두 소녀는 학교로 떠날 채비를 한다. 큰 기적 뒤에도 삶은 사소하고 구체적인 일들로 계속된다는 것. 이 마무리가 『주디』를 감상적인 옛이야기 이상으로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