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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부유해지는 사냥 이야기 9
브램벨 리셉터 21 보이 스카우트 29 첫 번째 사냥 41 FcRn 57 두 번째 사냥 71 난투 그리고 함정 95 세 번째 사냥 127 당신의 마지막 사냥은 언제입니까 143 부록 FcRn 타깃 신약개발과 관련해서 남아 있는 몇 가지 이야기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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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약개발 바이오텍과 제약기업, 투자자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를 전제로 하는 사냥’에 다시 나서는 ‘전략적인 사냥꾼’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어딘가 좋은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좋다. 상식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는 도전을 누군가는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주로 로이반트(ROIVANT)와 이뮤노반트(IMMUNOVANT)라는, 미국 신약개발 업계에서도 많이 튀는 바이오텍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 p.17 투자회사의 입장에서 바이오텍에 투자하던 비벡 라마스와미는 투자 업무 과정에서 바이오텍의 경영자와 연구자를 대상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바이오텍의 경영자와 연구자가 ‘신약개발이라는 바이오텍의 수익률’이 아니라 ‘기대 수익을 실현하고 탈출하려는 투자자의 수익률’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 p.34 한올바이오파마는 독자적으로 FcRn 타깃 신약개발에 들어가기로 한다. 문제는 한올바이오파마에 아직 신약으로 개발하는 데 필요한, 인간 항체를 찾아내는 시스템도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항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인터페론 단백질 엔지니어링을 시작할 때도 경험이 있고 뭔가를 알아서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냥에 실패하면 새로운 사냥터를 찾는 것이고, 새로운 사냥터에서 새로운 사냥감을 찾았으면 그 사냥감에 맞게 새롭게 사냥에 나서면 되는 일이다. --- p.55 단 운이 완전히 나쁘지는 않았다. ‘말이 되는 프로젝트에만 지원하면 혁신적이어야 하는 R&D 정책의 취지에 어긋날 수 있으니, 말이 좀 안 되더라도 실험성이 큰 프로젝트에도 지원하자’는 의견이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나온 것이다. 말이 좀 안 될 것 같아 보였던 한올바이오파마의 FcRn 프로젝트는 1차로 8억 원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고, OMT에 7만 달러를 주고 40여 개의 항체를 받아올 수 있었다. --- p.77 바이오텍이나 제약기업은 외부 발표를 할 때 흔히 ‘양호한 내약성’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내약성 문제를 지적당하면 ‘양호’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임상개발 단계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결은 쉽지 않다. 따라서 웬만큼 좋은 약물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혹 모르고 선택했다면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 --- p.119 비벡 라마스와미가 ‘신약개발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상식을 깨기 시작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트렌드와 소문에 휩쓸리지 않고, 후보물질과 플랫폼이 지닌 과학의 가치를 정확하게 매기려 노력하면 그리고 빠른 실패로 성공 가능성을 올려가면, 신약개발이라는 일의 투자 대비 수익률(ROI)은 지금보다 크게 올라갈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입증해왔다. --- pp.140~141 유망한 신약개발 분야, 물질, 기업에 대한 업계와 학계의 권위 있는 예측은 그럴듯하게 맞아들어간 경우가 많지 않다. 오히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접 확인하려고 했던 이들이 제대로 된 신약개발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보이, 옵디보, 키트루다도 모두 처음에는 무시받던 물질들이었다. 과학이라는 트렌드에 예민해지는 것과, 소문으로 이루어진 트렌드에 휘둘리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 p.153 신약개발 경험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스스로 눈을 가리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이디어와 개념은 과학에서 찾으면 되는 것이고, 경험과 기술이 없으면 적당한 값에 구해오면 되는 것이다. 빠르게 시도하고, 죽여야 할 것을 빠르게 죽인 다음, 새로운 타깃과 질환으로 이동하면 된다는 원칙을 정확하게 지켰다. 덕분에 아주 빠르게, 저렴한 비용으로 FcRn을 타깃하는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수 있었다. --- p.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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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적인 산업에서
제대로 모험하면 생기는 일 2014년 미국, 한 20대 청년이 신약개발 바이오텍을 창업한다.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곧바로 투자 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일을 경험했다. 신약을 개발하는 현장, 신약개발에 투자하는 현장을 직접 본 이 청년은 ‘신약개발 업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신약개발을 주도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트렌드를 스스로 쫓아다니고, 모험적인 장기 투자 대신 안정적인 단기 수익이 설계되기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신약개발 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신약개발이 성공할 확률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이었다.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해 바이오텍의 투자 대비 수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을 가장 앞에 두는(VANT) 바이오텍을 경영하면서 좋은 모험을 해보고 싶었던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는 로이반트(Roivant)를 창업했다. 그리고 설립되고 10년이 조금 더 지난 2026년 현재 기준 로이반트의 시가총액은 30조 원을 넘어섰다. 1년에 수십억 달러어치씩 처방되는 신약을 아직 개발한 것도 아닌데 로이반트의 가치는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커질 수 있었을까? 2017년 로이반트는 한국의 어떤 바이오텍이 발굴한 물질을 사들였다. 한국의 이 바이오텍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항체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도 항체를 다루는 일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로이반트는 약 5억 달러를 주기로 하고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계약금만 3,000만 달러였다.) 한국 바이오텍이 개발하고 있던 물질을 사갔다. 그리고 2018년 이뮤노반트(Immunovant)라는 자회사를 세워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맹렬하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 바이오텍, 한올바이오파마는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도대체 한올바이오파마는 어떻게 경험해보지 않았던 영역에서 이런 신약개발을 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신약개발 과정에서 실패는 공기처럼 흔하다. 로이반트와 이뮤노반트, 한올바이오파마와 한올바이오파마가 발굴한 물질들을 가지고 하는 자가면역질환 신약개발이 모두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험들이 성공한다면,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제대로 된 모험에 나선 이들의 성공한 사냥 이야기로 말이다. 이 책 『헌트-FcRn과 이뮤노반트』는 신약개발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사냥꾼의 영리한 모험’이라는 미덕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FcRn과 이뮤노반트 면역 시스템의 한 구성원인 면역글로불린 G(immunoglobulin G, IgG)는 몸에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암세포처럼 나쁜 녀석들(?)을 없애는 일에 참여한다. 이렇게 IgG가 쓸모 있는 물질이므로 우리 몸은 IgG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 그리고 세포에 있는 ‘신생아 Fc 수용체(Neonatal Fc Receptor, FcRn)’가 IgG가 우리 몸속에서 금방 사라지지 않도록 돕는다. 그런데 IgG가 늘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IgG가 멀쩡한 조직을 잘못 공격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FcRn과 더 강하게 반응하는 물질을 환자에게 넣어주면, 자가면역질환과 관계가 있는 IgG를 빠르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되면 나쁜(?) IgG가 줄어들 것이고, 자가면역질환 환자의 증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바탕으로 2010년대부터 FcRn 자가면역질환 신약개발에 나서는 이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제약기업들과 바이오텍들은 FcRn 프로젝트에 뛰어들지 않았다. 주류의 대부분은 당시 트렌드였던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의 항암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비벡 라미스와미의 로이반트는 이런 식으로 주류 트렌드에 휩쓸리는 것이 신약개발을 방해하는 진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로이반트는 유행에서 벗어나 있지만 R&D가 많이 되어 있는 물질을 찾았다. 싸게 사서 빠르게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냥감을 찾아내는 사냥꾼처럼 한올바이오파마를 찾아낸 것이다. 한올바이오파마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아직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을 2~3년 먼저 시작해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로이반트와 한올바이오파마에게 중요한 것은 ‘트렌드인지 아닌지’ 또는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빨리 시도해보고 결과가 나쁘면 빨리 접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전략적 행동이었다. 로이반트는 한올바이오파마가 개발하고 있던 FcRn 타깃 항체를 사들였고, 이뮤노반트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인 임상개발에 들어갔다. 과연 이들의 사냥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들처럼 사냥하듯 신약을 개발하지 않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모든 사냥이 성공하진 않기에 다시 나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어떤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명과학과 의학이 발전하고 있고, 뛰어난 연구자들과 의료진이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며, 천문학적인 규모의 개발비를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첨단 과학이 바탕이 되는 다른 산업들과 비교해 신약개발의 미스테리 박스는 유독 심한 편이다. 『헌트-FcRn과 이뮤노반트』에 나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나간다. 신약개발을 둘러싼 업계와 학계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며 다른 길을 찾는 비벡 라마스와미, 신약을 개발하기에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려고 한 한올바이오파마,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경쟁자들은 사냥감을 찾고, 좇고, 사로잡고 마침내 자신만의 사냥터를 만들어가는 사냥꾼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는 신약개발이 ‘예측할 수 있는 작은 성과를 목표로 하는 농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빠르게 움직여 정확하게 위치를 선정하고, 집중력을 보이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전략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면서 실패와 친해질 수 있어야, 커다란 한 번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사냥에 가까운 일로서의 신약개발’이다. 결국 어떤 신약개발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좋은 사냥감인지 그리고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좋은 사냥꾼인지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 『헌트-FcRn과 이뮤노반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