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알렉산더 이스트먼(Charles Alexander Eastman, 1858~1939)은 다코타 수족 출신의 의사이자 작가입니다. 다코타 이름은 오히예사(Ohiyesa)로,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1858년 겨울 지금의 미네소타 남부에서 산티 다코타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낳고 곧 세상을 떠났고, 처음 얻은 이름은 ‘가엾은 막내’라는 뜻의 하카다(Hakadah)였습니다. 오히예사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공놀이 시합의 승리를 기려 얻었습니다.
그의 삶을 가른 것은 1862년의 봉기입니다. 이 책에서 ‘미네소타 학살’로도 불리는 그 싸움 뒤에 그는 할머니와 삼촌을 따라 캐나다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뒤 열 해 남짓 매니토바와 그 너머의 초원에서 옛 방식 그대로 사냥하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싸움 뒤에 처형된 줄로만 알았습니다. 실제로는 감옥에서 살아남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스트먼이라는 성을 쓰고 있었습니다. 1873년 무렵 열다섯 살의 그를 아버지가 찾아와 다코타 준주의 플랜드로로 데려갔습니다. 이 책 여섯째 장에서 그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예감, 매니토바호의 야영, 열네 살 때 엘리스 요새를 떠난 날의 일은 모두 이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기서부터 백인의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산티의 선교 학교를 거쳐 벨로잇 대학과 녹스 대학에서 공부했고, 1887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890년에는 보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을 마쳐 의사가 되었습니다. 첫 일자리는 사우스다코타 파인리지 보호구역의 관리소 의사였습니다. 그해 십이월 운디드니에서 수족 사람들이 학살되자, 그는 살아남은 부상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이듬해 그는 인디언 교육에 몸담고 있던 시인 일레인 구데일(Elaine Goodale)과 결혼했습니다. 이 책을 바친 그 아내입니다. 두 사람은 여섯 아이를 두었습니다.
파인리지를 떠난 뒤 그는 여러 자리를 거쳤습니다. 기독교청년회의 순회 간사로 여러 보호구역을 돌았고, 워싱턴에서 산티 수족의 권리를 대변했으며, 크로크리크 보호구역에서 다시 의사로 일했습니다. 1911년에는 인디언 출신 지식인들이 모인 아메리카 인디언 협회를 세우는 데 함께했습니다. 같은 해 런던의 세계 인종 회의에 아메리카 인디언을 대표해 나갔습니다. 보이스카우트와 캠프파이어 걸스 운동에도 힘을 보탰고, 뒤에는 아내와 함께 뉴햄프셔에서 아이들의 여름 캠프를 열었습니다. 1921년 무렵 부부는 갈라섰고, 그는 1939년 일월 디트로이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쓰기는 아내의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첫 책은 1902년의 《인디언의 어린 시절》로, 초원에서 보낸 소년 시절을 그린 회고록입니다. 그 뒤 동물 이야기와 옛이야기를 모은 책들이 이어졌고, 일레인은 그의 원고를 다듬는 데 깊이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11년에 나온 《인디언의 영혼》은 그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어린 시절을 이야기로 들려주던 그가 처음으로 자기 겨레의 신앙을 정면으로 다룬 책입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 책이 과학 논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받은 가르침에 충실한 기록이라고 밝힙니다. 이 책 뒤로 그는 1916년 자서전 《깊은 숲에서 문명으로》를 써서, 초원의 소년이 의사가 되기까지의 길을 스스로 돌아보았습니다. 이 책 넷째 장에서 그가 “문명인이 된 뒤로” 베풂의 미덕을 잊었다고 털어놓는 대목은, 그 두 세계 사이를 평생 오간 사람의 고백으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