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슈 알렉산더 헨슨(Matthew Alexander Henson, 1866~1955)은 미국의 탐험가입니다. 1909년 사월, 로버트 피어리(Robert Edwin Peary)와 에스키모 네 사람과 함께 북극점에 섰다고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는 1866년 팔월 팔일 메릴랜드주 찰스 카운티의 포토맥강 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이듬해였고, 부모는 둘 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흑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워싱턴으로 옮겼고, 어머니는 그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촌 손에서 자라며 학교를 여섯 해 남짓 다닌 뒤, 그는 볼티모어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에 선실 급사로 올랐습니다. 그 뒤 네 해 동안 선원으로 일하며 중국과 일본, 북아프리카와 남러시아까지 다녔습니다. 이때 배운 뱃일과 손재주가 훗날 북극에서 그를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뭍으로 돌아온 그는 워싱턴의 한 모자 가게에서 일하다 미국 해군의 토목 기사 피어리를 만났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때를 1888년으로 적습니다. 그는 수행원으로 피어리를 따라 니카라과 측량 사업에 갔고, 1891년 피어리의 둘째 북극 탐험부터는 한 번도 빠짐없이 동행했습니다. 그 뒤 열여덟 해 동안 여러 차례 북극을 오갔습니다. 1895년 북그린란드 빙원을 가로지른 귀환길, 운석 세 개를 뉴욕으로 실어 온 일, 1906년 북위 팔십칠 도 육 분까지 간 여정이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헨슨이 탐험대에서 맡은 일은 조수라는 이름 하나로 묶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썰매를 짜고 고쳤고, 개를 부렸고, 이글루를 지었고, 사냥을 했습니다. 그는 에스키모의 말을 익혀 탐험대와 그들 사이를 이었습니다. 피어리 자신도 그의 썰매 다루는 솜씨를 높이 샀습니다. 1909년 마지막 행군에서 피어리가 마지막까지 데려간 사람이 그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북극점 이후의 삶은 그 공적에 걸맞지 않았습니다. 피어리는 해군에서 진급하고 여러 훈장을 받았지만, 헨슨에게 돌아온 보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브루클린의 차고에서 일했습니다. 1913년에야 뉴욕 세관의 사무원 자리를 얻었고, 1936년 물러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인정은 늦게 왔습니다. 1937년 탐험가 클럽이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였고, 1944년에는 미국 의회가 피어리 탐험대의 대원들에게 준 메달을 그도 받았습니다. 1954년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를 백악관에 불렀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1955년 삼월 구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8년 그의 유해는 아내 루시 로스 헨슨과 함께 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져 피어리의 무덤 가까이 묻혔습니다.
그의 삶에는 그린란드에 남은 가족도 있습니다. 에스키모 여성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헨슨은 이 아들을 책에 적지 않았고, 이 사실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뒤에야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책 《북극의 흑인 탐험가》는 1912년 뉴욕에서 나왔습니다. 북극점에서 돌아온 지 세 해 만이었고, 헨슨이 남긴 단 한 권의 책입니다. 피어리의 서문과 부커 티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의 서론이 붙어 나왔습니다. 헨슨은 탐험 도중 적어 둔 일기와 메모를 엮어 이 책을 썼다고 첫째 부에서 직접 밝힙니다. 그래서 날짜가 붙은 일기가 본문 곳곳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책이 나온 때는 프레더릭 에이 쿡(Frederick Albert Cook)이 자기가 먼저 북극점에 닿았다고 주장해 세상이 시끄럽던 무렵입니다. 헨슨은 여덟째 부에서 쿡 박사에 관해 한 번 말하고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적습니다. 피어리 일행이 정확히 북극점에 닿았는지를 두고도 오늘날까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것은 그 논쟁의 판정이 아닙니다. 열여덟 해 동안 얼음 위에서 일한 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로 남긴 증언입니다. 그는 일곱째 부에서 자신을 백인이 세계의 일을 해낸 자리마다 함께 있던 흑인의 한 사람으로 적습니다. 그 문장은 이 책이 그의 삶에서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