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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입센과 작품의 시대 등장인물 제1막 제2막 제3막 작품 해설 오늘날의 《어린 에욜프》 생각해 볼 질문 10가지 헨리크 입센 연보 번역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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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위로하지 않는 희곡
《낯선 아이 ? 어린 에욜프》를 읽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입센은 아이의 죽음을 1막 끝에 배치하는 이상한 선택을 했다. 보통이라면 절정에 놓일 사건이 초반에 끝나 버리고, 남은 두 막에는 무대 위를 오가는 사람과 깃발과 배 한 척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초연 당시 이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을 들은 이유다. 그러나 사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이 극의 진짜 대상이 드러난다. 아이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이 벗겨 낸 부모의 얼굴이다. 가장 잔인한 장면은 부부가 서로에게 죄를 던지는 2막이다. 아이가 탁자에서 떨어져 다리를 못 쓰게 된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품에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의 장애는 부모의 정욕이 남긴 자국이었고, 목발을 볼 때마다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아야 했다. 그래서 아이를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를 책상 앞에 붙들어 두는 것으로, 어머니는 남편을 독차지하려는 마음으로 그 회피를 견뎠다. 입센은 이것을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이라 불려 온 것의 정체로 그린다. 그러면서도 이 극은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에 두 사람은 해변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오기로 한다. 다만 아내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라고. 사랑 없이 시작하는 선의도 선의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렇게 시작해야 오래간다는 것이 입센의 냉정한 제안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죽은 아들의 방에서 자고 그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계획을 들으면, 이것이 속죄인지 또 다른 형태의 자기 위안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입센은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마지막에 시선을 "위로" 돌릴 때,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지금 읽히는 이유는 그 미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 자식에게 얹는 못다 이룬 꿈, 재난 앞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은 침묵과 그 뒤에 벌어지는 책임 공방. 백삼십 년 전 노르웨이 피오르가에 세워 둔 무대가 지금 우리의 뉴스와 겹친다. 읽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극이 던진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