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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편
지금 내리는 눈을 타기로 했다 한 달짜리 겨울이 시작됐다 자꾸 삐끗해도 밤은 꽤 아늑했다 여든까지 타려면 가벼워져야 한다 스키를 벗고 강릉의 겨울을 걸었다 지금은 이게 공자고 맹자다 이 겨울 풍경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갈 수 있을 때 가자 갈 수 있는 길이 많아진 기분이었다 어차피 때가 되면 눈은 녹으니까 쉬는 것도 스키다 이제 스키는 생존이 아니라 놀이였다 다음 턴은 이미 시작됐다 무주, 계획대로 된 건 스키뿐이었다 일본편 세상의 모든 눈을 타는 법을 배웠다 다시는 하쿠바에 가지 말자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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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라는 낯선 계절, 우리는 스키를 탔다
삼십오 년 동안 직장에 다닌 오스씨가 은퇴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던 생활이 끝나자 두 사람 앞에는 갑자기 길고 넓은 시간이 펼쳐졌다. 은퇴를 기념해 무엇을 할까. 저자는 근사한 선물이나 짧은 여행 대신 한 달 동안 스키장을 돌아다니며 살아보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부산을 떠나 웰리힐리와 용평, 하이원, 무주를 차례로 옮겨 다닌다. 한 달치 짐과 스키 장비를 차에 싣고 겨울 한가운데로 들어간 것이다. 국내에서의 스키살이를 마친 뒤에는 일본 홋카이도로 건너가 파우더 스키 강습에도 도전한다. 익숙한 집을 떠나 매일 눈 위에서 생활하며 두 사람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미리 연습해본다. 『은퇴했으니까 스키부터』는 은퇴한 오스씨와 그의 오랜 동반자 선우비가 함께 보낸 한 달간의 스키살이를 기록한 에세이다. 눈이 오지 않아 흙이 드러난 스키장, 영하 18도의 강추위, 감기와 냉기 비염, 무릎과 허리의 통증, 주말 숙소를 구하기 위한 예약 경쟁까지, 이 책의 겨울은 낭만적인 설경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몸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때로는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해야 하는 날도 있다. 저자는 스키 고수의 시선으로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숏턴을 연구하고, 배운 자세를 슬로프에서 시험하며,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을 하나씩 고쳐나간다. 젊을 때처럼 체력과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지만, 몸의 한계를 안다는 것이 곧 즐거움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힘을 덜 쓰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의 속도를 받아들이면 좋아하는 일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오래 즐길 수 있다. 스키 날로 눈 위에 새로운 곡선을 그리는 과정은 나이 들어가는 몸을 이해하고 그 몸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이 된다. 선우비와 오스씨는 이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동반자다. 그러나 낯선 숙소에서 하루 종일 붙어 지내다 보면 오래된 관계에도 미처 알지 못한 모습이 남아 있다. 한 사람은 한 번 더 타고 싶고 다른 사람은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잘 타고 싶은 욕심과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긋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다시 보조를 맞춘다. 이 책의 매력은 은퇴와 나이 듦을 거창한 교훈으로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장을 보고 저녁을 차리고, 젖은 장비를 말리고, 다음 숙소를 알아보는 하루하루가 모여 새로운 생활의 리듬을 만든다. 저자는 그 사소한 장면들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와 솔직한 투덜거림, 스스로를 향한 유머는 평범한 나날에 잔잔한 웃음을 보탠다. 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 달간 스키장을 옮겨 다니며 살아본 이의 생생한 체류기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도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생각해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은퇴했으니까, 스키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