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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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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기원
2장 피의 지위
3장 촉구
4장 오용해서는 안 되는 것
5장 생착
6장 효율 바깥의 문제
7장 에필로그

저자 소개 2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주간지 칼럼니스트와 SBS 드라마국 기획작가를 거쳐, 청강대 만화웹툰스쿨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에서 드라마 편성 준비 중이다. 장편소설 『큐피드, 아홉 개의 성물』과 『뇌사판정위원회』를 집필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
웹드라마 『옐로우』로 데뷔했다. 이후 웹드라마 『한입만 1, 2』, 『크리스마스가 싫은 네 가지 이유』와 JTBC 화요드라마 『라이브 온』 등을 집필했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에서 드라마 편성 준비 중이다. 『라이브 온』 대본집과 장편소설 『뇌사판정위원회』를 출간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324g | 123*196*14mm
ISBN13
9791199393714

책 속으로

따라서 화진은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부터 25%라는 수치에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것으로 그 존재의 가치를 평가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물론 세상의 모든 탄생이 그러하진 않을지라도 대개의 경우 수단보단 목적 자체로 존중받는 것과 비교한다면 적잖이 불우하고 불공정한 처사였음이 분명했다.
--- p.15

화진은 스스로 효용을 증명해 내어 기어이 취득한 이름 세 글자 대신 그저 이영진의 동생으로만 불렸다. 온 생을 통틀어 그녀가 일궈낸 최대 업적은 이영진의 동생인 것이었다.
--- p.16~17

이처럼 종종 어린아이에게 어른들의 행동은 이렇다 할 단서도, 복선도 주지 않고 느닷없이 범인이 밝혀지며 끝나는 엉터리 추리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 자라고 나면 그때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아주 작고 희미한 실마리들이 하나같이 두려움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서글픈 이치를 깨닫게 된다.
--- p.31

그러나 화진은 우연 따위 믿지 않는다. 우연이란 신이 설계해 놓은 필연의 문단 중 인간이 미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대목에 명명한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 p.60

그런 의미에서 언니를 죽이는 일은 살인이라기보다 자살의 변종에 가까웠다. 칼끝은 언니의 몸을 향하지만 잘려나가는 것은 화진의 일부, 아니 전부였다.
--- p.76

언니의 결손이 씨앗이었다면 그 세계는 온실이었다. 굴욕과 허영을 번갈아 급수하며 씨앗 혼자서는 결코 이르지 못했을 크기까지 언니를 비대하게 길러냈다. 언니는 그 안에서 칠 년에 걸쳐 만개했고 꽃가루 흩뿌리듯 죽은 제물들을 떨궜다.
--- p.83

그런 혜민의 옆모습을 흘깃대면서 화진의 속은 복잡하게 뒤엉켰다. 저처럼 낮은 데 머무는 동류를 향한 쓰라린 연민과, 그 자리를 저와 달리 기껍게 자득한 점유자에 대한 옹졸한 박탈감. 그런 혜민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 화진은 은근히 후련한 기분마저 느꼈다. 이로써 언니의 옆에는 다시 나 하나뿐이라는 배타적인 안도감이었다.
--- p.109

화진에게 있어 신이라 하면, 늘 언니를 살린 뒤 그 대가를 자신에게 청구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공방을 나선 그날만큼은 오래 두드린 사람에게 문 하나쯤 열어준다는 남자의 신을 잠시 빌려보기로 했다.
--- p.114

언니는 살인마였다. 희대의, 반복적인, 회개 없는 살인마.
--- p.123

인간이란 필요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비교군 안에서도 제 우월성을 입증할 지점을 골라내는 데 놀라울 만큼 재능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 p.131

그렇다면, 언니가 신의 우편에 섰다면, 그 논리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대필해 낸 저는 대체 어디쯤 서 있는 것인가.
--- p.157

혈육이란 무엇일까.
못내 해답을 찾지 못한 근원적 질문이 이 순간 화진의 머릿속에서 넝쿨처럼 뒤얽혔다.
--- p.223

출판사 리뷰

살인 서사의 외피 아래, 혈육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천착하다

이 작품에서 연쇄살인과 은폐, 단죄의 계획은 서사적 긴장을 견인하는 장치다. 그러나 작품의 무게중심은 화진이 끝내 언니를 단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사건의 귀결보다, 언니를 향한 사랑과 혐오가 어떠한 내력을 거쳐 형성되고 변모해 왔는가 하는 감정의 역사에 오롯이 놓여 있다. 숭앙과 열등감, 보호 본능과 적의, 연민과 수치심은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교체되지 않은 채 화진의 내면에서 서로를 부정하고 또 강화하는 모순적인 정동으로 공존한다.

서술은 3인칭 제한적 시점을 취해 철저히 동생 화진의 내면에 초점화된다. 독자는 화진이 보는 것만 보고, 화진이 외면하는 것은 함께 외면한다. 언니의 범행을 단죄하려 하면서도 여전히 언니의 아름다움에 현혹되는 화진의 시선에 독자 역시 포섭되는 것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그 제한된 시야가 한 차례 전복되는 순간, 독자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인물의 자기기만에 동참해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화진의 주관적 인식에 독자의 판단을 종속시킴으로써 혈육이라는 관계가 지닌 인식의 편향성을 독서의 과정 자체에서 경험하게 한다.

생착(生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안에 뿌리내리는 일

이식된 세포가 타인의 몸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혈액세포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현상을 의학에서는 생착이라 부른다. 작가들은 이 의학적 개념을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은유로 확장한다. 화진의 조혈모세포가 언니의 몸에 생착해 언니의 피를 만들어 왔듯, 언니라는 존재 역시 화진의 내면 깊숙이 뿌리내려 그의 욕망과 판단을 조직하는 내적 질서로 자리해 왔다. 언니를 죽이는 일이 일종의 자기 파괴에 가까워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칼끝은 언니를 향하지만, 그와 함께 도려내야 하는 것은 화진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부역(附逆)’이라는 또 하나의 핵심어는 이러한 은유를 더욱 복합적인 윤리의 차원으로 이끈다. 화진은 ‘피해자’와 ‘공범’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으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다. 소설은 그의 오랜 종속을 섣불리 면책하거나, 그가 저지른 행위를 단순한 도덕적 잣대로 단죄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의 무력함과 침묵을 정당화해 온 한 인간이 마침내 그 자기기만의 실체와 대면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랑했다면 끝내 멈추게 했어야 한다는 뒤늦은 화진의 자각. 그 뼈아픈 자각에 이르러 화진은 자신과 언니를 결박해 온 관계의 본질을 비로소 새롭게 인식한다.

왜 『피를 나눈 사이』인가

『피를 나눈 사이』라는 제목은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에서 출발해, 혈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서로의 삶뿐 아니라 죄의 무게까지 나누어 짊어지는 관계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두 자매에게 피는 동일한 혈통을 증명하는 표지인 동시에, 한 사람의 생명을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존속시킨 물질적 실체다. 나아가 그것은 오랜 부역과 침묵을 거치며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게 된 죄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피를 나눈다’는 행위에는 생명의 공유와 죄의 분담이라는 상반된 함의가 중첩되어 있다.

특히 이 제목에서 주목할 것은 ‘나눈’이라는 동사의 다의성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공유한다는 뜻을 지니면서, 동시에 하나의 몫을 갈라 각자에게 귀속시킨다는 의미를 품는다. 혈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끝내 서로의 삶과 죄를 어디까지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되는가. 소설은 이 물음을 서사의 저변에 지속적으로 환기하며, 혈육이라는 관계가 지닌 불가역적 결속의 의미를 끝까지 추궁한다.
리뷰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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