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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많이도 빌며 살아왔다. 하늘에도 빌었다. 땅에도 빌었다. 달님에게도 빌었고 별님에게도 빌었다. 바윗돌에도 빌었고 대감님에게도 빌었다. 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살 때였을까? 어려서 비는 것을 본 맨 처음은 어머님이 대감님께 비는 것을 본 것이었으리라.
---p.7 이십사 세 1월 3일. 이것이 전생에서 타고 나온 나의 명이란 말인가? 이렇게도 짧은 명을 타고 세상에 나왔더란 말인가? 억울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의 학교와 절에서 얻어 들은 말이 머리 한구석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pp.91-92 셋째로 글을 좀 써놓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동화를 몇 편 써서 발표했고 희곡도 발표한 일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죽어가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서둘러서 쓰면 좀 더 탐탁하고 보람 있는 것을 써놓을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좀 더 살 수 있었으면……’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하면 지금 곧 죽어서는 정말 안 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p.113 외로움이 절정에 달해, 한정 없는 외로움과 슬픔 가운데에 있을 때 저쪽 높은 곳 그 안에서 나를 찾으려 했고, 그 섭리 그 은총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려고 했고, 그에 빌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pp.273-274 영세하기 전에 지은 죄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든 간에 고해할 것 없이 모두 씻김을 받는 것이라 했지만, 나는 그동안 머리 숙이고 있는 동안 오십 평생에 지은 죄를 살피며 그 죄를 사해주십시사 하고 빌었고, 그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사 하고 빌었다. 나 한 몸도 건져주시려니와 내 둘레의 많은 사람과 그 다음을 이어오는 암담과 절망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주십시사 하고 비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p.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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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인간 마해송의 깊은 사유와 구원의 기록
『아름다운 새벽』에서는 작가 마해송의 치열한 삶의 현장과 내면의 고뇌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마해송은 개화기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무렵인 1905년에 개성에서 태어나 가부장제의 완고한 가풍 속에서 자랐다. 부친의 강요로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조혼을 하게 되고, 그것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자신은 물론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된 상대방에게도 가혹한 굴레가 된 인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시대의 폐습을 타파하고자 노력한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마해송은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문예춘추』 편집자, 『모던일본』 발행인으로 큰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24세에 폐결핵으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생환하여 글쓰기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동화와 수필을 창작하고 말년에 가톨릭에 귀의하며 모든 암담과 절망에 허덕이는 존재들을 위해 기도를 이어간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6‧25 전쟁과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를 건너며 겪어야 했던 삶의 시련,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그의 진실된 고백 앞에 아름답게 피어난다. 『아름다운 새벽』의 마지막 장면은 마해송이 영세를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 개정판 「책머리에」에서 오래전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현이 나를 만날 때마다 아버님의 산문은 신문화 이후 몇 안 되게 손꼽히는 간결하고 아름답고 힘 있는 문장이라고 말해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남보다 앞서서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할 기회가 있었고 특히 일본생활 중에는 당대에 일본에서 으뜸가는 일본 문학가들과의 교유와 그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야 했던 『문예춘추』나 『모던일본』 등 잡지의 편집 책임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명까지 해줄 때면 나는 이 친구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무척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개정판 출간을 계기로 『아름다운 새벽』을 다시 읽으면서 우선 어쩔 수 없이 사무쳐오는 육친의 정으로 가슴이 메어왔지만, 글의 전체를 관통해서 당신이 옳고 바르게 또 비굴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사시려고 평생을 노력하신 그 고집이 느껴져서 새삼 아버님이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2026년 가을 마종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