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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바늘 끝 우주 꽃 피는 꽃이다|바보|허공 속 공허|오궁길|동학사 가는 길|망월정|대지의 어머니|땅의 향기-손(孫)에게|근심 놓아둘 곳|무소유라고?|새벽 별 은총|지혜의 집|바늘 끝 우주|촛불|보살의 노래-반가사유상|예술의 기쁨|내 기도가 조각이 되기를|공간-묵가(墨家)|비어있는 공간|틈|돌, 돌, 돌|삶은 나그네 숙소|미루나무 하늘 까치집|흘러간다|대학(大學)|터|없습니다 2장 한평생 세월의 집 나이와 영혼|둥글게 돌고 돈다|새해|아침|내일을 내다 본다|가을을 봅니다|겨울 산|그리움|나에게 영원한 것|그날 엄숙한 장소|떠나는구나|묵은해는 그립다|산에 간다|석기시대를 본다|집, 사물|하나뿐인 해와 달?|한평생 세월의 집|계산으로 산다|하늘의 게으름|나는 내 나이의 집|내 영혼이 떠나는 날|왜?|노랑 장화|손(孫)아!|땅과 하늘에서 손주와 놀다|나는 이제 가렵니다|내가 여기 있어 3장 화이부동(和而不同) 화이부동(和而不同)|너와 나|보고 싶다|가을을 줍는다|은행잎|곶감|포도알|강|비, 바람, 소리|바람, 파도, 하르방, 제주|그리운 범섬 1|그리운 범섬 2|파초암(芭蕉庵)|파초암, 수평선 너머 그리움|토함산 석굴암|할미꽃 자연 꽃|나리꽃|꽃, 아름다운 심성|저녁노을|산길을 걷다|송구영신(送舊迎新)|어둠의 비밀|밤과 꿈, 은자(隱者)|하얀 달|해는 왜 떠 있나|단풍|머물 수 없는 가을|그리운 런던|아일랜드의 슬픔 4장 그대로 있게 두어라 기쁨|사물과 함께 산다|나를 본다|그늘, 그 과분한 있음|겨울, 차가움에 대하여|그날그날은|하나뿐인 얼굴|낯선 자, 의존자|낯선 자, 태초를 보다|낯선 자의 땅|날마다는 부정성(否定性)이다|기도|그대로 있게 두어라|나는 고도를 기다리는 타자(他者)다|나는 나에게 에로스다|나는 아직도 빈터에 거주하고 있다|독방|달항아리를 본다|잠, 모두가 잠잠하다|있다, 없다|중(中), 심(心)|좋아요|하루가 무엇이겠습니까?|신탄절(神誕節)|미움과 고움|순응 따라간다|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로다|우주는 하나다 5장 우주 공간에 큰 집 짓는다 사물 본성|손가락 놀이|어둠을 넘어|낯선 자를 찾다|사물, 공간, 시간|응암동 물질 고아원 1|응암동 물질 고아원 2|덫에 걸렸다|고요한 벽체와 나|두 개의 날개, 소통의 벽|두 날개와 낯선 자|인간상-수채화|정물-수채화|무등산-수채화|티르구지우 앙상블|어느 아름다운 공간|영원한 입맞춤-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서거 60주기에 콘스탄틴 브랑쿠시 조각 「입맞춤」 연작시-「입맞춤」 I. 「입맞춤」-사물|II. 「입맞춤」-예술의 근원|III. 「입맞춤」-사유|IV. 「입맞춤」-진리|V. 「입맞춤」-창작|VI. 「입맞춤의 문」 발문|견고한 침묵의 중심을 향하여-김화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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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은 끝에서 빛난다.
모든 것 다 바늘 끝에 모여 최고이자 최후인 곳 이룬다. 바늘 끝은 다 오른 정점이다. 바늘은 끝에서 침묵과 만난다. 그 끝은 보이지 않아 끝이 없다. 바늘 끝은 다 이룬 우주로 빛난다. --- 「바늘 끝 우주」 중에서 산은 그 산을 내어주는 터고 강은 그 강을 내어주는 터다. 땅은 그 땅을 내어주는 터고 하늘은 그 하늘의 창공을 내어주는 터다. 터는 그 안에서 스스로 터가 터로서 환히 밝혀 존재한다. --- 「터」 중에서 촛불이 꺼져 어둡다. 그 어둠은 내게 어둠을 주고 떠난다. 그 촛불은 나를 떠나 영원한가. 오늘도 나를 떠나가니 그간 왔던 낮과 밤도 사라져 버렸는데 그 흔적 나에게 영원한가. 꽃도 피고 지니 그 숨겨진 아름다움으로 영원한가. --- 「나에게 영원한 것」 중에서 마주하고 직립해 서 있는 두 날개는 두 얼굴입니다. 낯선 자의 얼굴, 낯선 자의 마주침입니다. 나와 마주하고 서 있어 계시하는 타자(他者) 얼굴의 무한한 드러냄이며 신의 얼굴, 하늘의 나무, 낯선 자입니다. --- 「두 날개와 낯선 자」 중에서 아무도 모르게 꽃은 핀다. 지극히 아무도 모르게 열려 등장한다. 입맞춤은 그렇게 열려 빛난다. --- 「Ⅱ.--- 「입맞춤」- 예술의 근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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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에서 시로, 재료만 달라졌을 뿐 질문은 이어진다.
엄태정의 시에는 조각가로서 평생 바라보아 온 세계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돌과 철, 나무와 같은 물질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며 형태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던 그의 작업 방식은 시에서도 이어진다. 시집에는 바늘, 돌, 별, 항아리, 촛불, 꽃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물을 설명하거나 장식하기보다 가만히 바라본다. 사물의 형태와 존재를 응시하는 짧고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일상의 대상은 어느 순간 존재와 침묵,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조각가로서의 작업과 시인의 언어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사물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한결같은 관심이 놓여 있다. 사물로서의 시는 특별한 ‘여기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조각에서 형태와 공간을 통해 탐구했던 질문을 이제 언어와 침묵, 시의 리듬을 통해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의 언어는 농축되어 그 의미를 넘어서고, 하나의 아름다움, 내밀한 낯선자를 만난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낯선자’는 이러한 엄태정의 사유를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다. 타자와의 만남과 존재에 대한 사유는 시집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서울대학교 캠퍼스에 설치된 그의 대표작 「쌍학상」에서 영감을 얻은 「두 날개와 낯선자」를 비롯해, 돌과 별, 항아리 등 친숙한 사물은 낯선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매개가 된다. 다섯 개의 장으로 펼쳐지는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 시집은 서문에 이어 총 5장, 134편의 시로 구성된다. 1장 「바늘 끝 우주」에서는 꽃과 바보, 촛불, 반가사유상 등 일상의 사물과 신성이 겹쳐지는 세계를 보여준다. 작은 사물 하나에서 우주와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편들이 시집의 문을 연다. 2장 「한평생 세월의 집」에서는 나이 듦과 가족, 손주, 삶과 죽음의 경계 등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3장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는 계절과 자연을 비롯해 제주, 아일랜드, 런던 등 여행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풍경과 감정을 담았다. 4장 「그대로 있게 두어라」에서는 존재와 침묵, 타자에 대한 사유가 더욱 깊어진다. 제목의 의미처럼 대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규정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시집 곳곳에 이어진다. 마지막 5장 「우주 공간에 큰 집 짓는다」에서는 사물의 본성과 공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조각가로서 평생 탐구해 온 조형의 세계를 시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브랑쿠시에게 바치는 시, 조각가의 예술 인생을 돌아보다 시집의 마지막에는 엄태정이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삼아온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 1876~1957)에게 바치는 시들이 놓인다. 「영원한 입맞춤-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서거 60주기에」에 이어 브랑쿠시의 대표작 「입맞춤」을 사물, 예술의 근원, 사유, 진리, 창작이라는 여섯 개의 화두로 풀어낸 연작시 「입맞춤」이 시집을 마무리한다. 브랑쿠시는 엄태정의 조각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예술가다. 로댕에서 출발해 브랑쿠시를 거쳐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아온 엄태정의 예술적 여정이 이번에는 시를 통해 다시 조명된다. 시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랑쿠시 연작시는 조각가로 살아온 한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뿌리와 현재를 돌아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낯선자를 찾아 나서듯 써 내려간 기도 엄태정은 시집을 펴내며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오랫동안 간간이 써서 모아둔, 내 삶의 애정과 결핍이 남긴 아픔의 기록”이라며 “존재의 충만함을 줄 수 있는 초월이 있음을 깨달아 가며, 낯선자를 찾아 나서듯 써 내려간 기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집이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침묵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 사랑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발문 「견고한 침묵의 중심을 향하여」에서 엄태정의 시를 조각과 분리된 새로운 작업으로 보기보다, 평생 이어온 예술적 탐구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물질을 다루던 조각가가 이제 언어를 재료로 삼았을 뿐, 사물의 본질과 존재를 향한 그의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엄태정은 조각을 통해 형태와 공간을 탐구해 온 60여 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 시를 통해 자신이 바라본 세계와 내면의 시간을 기록한다. 낯선자, 고요한 영혼은 조각가의 첫 시집이라는 사실을 넘어, 한 예술가가 평생 바라보고 질문해 온 세계를 언어로 다시 만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