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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의 동물원
조선 선비들의 동물 관찰기 그리고 인간의 마음
최지원
알렙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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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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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벌레와 나

1부 유학자, 동물원을 가다
1. 학을 춤추게 하는 법: 동물, 마음의 노예
2. 벌레, 인간의 조상: 유학자의 만물친족설
3. 승냥이와 모기의 밥: 유학자들의 육식
4. 자연은 없다: 유학자의 자연관

2부 너와 나를 먹여 살리는 동물원의 정치학
1. 고양이의 도둑질: 영혼의 빈익빈부익부
2. 눈치 보는 말똥구리: 인간과 동물의 눈치 게임
3. 꿀벌의 복종: 너는 나의 일벌
4. 비둘기, 권위를 말하다: 넌 내 친구가 아니야

3부 생명의 억하심정
1. 파리의 억하심정: 동물의 앙갚음
2. 소와 말의 억하심정: 내 목숨을 사고파는 동물원의 경제
3. 순 임금과 제비새끼의 억하심정: 자식이라는 업보

4부 인간이라는 미신
1. 어리석은 비둘기와 깁스하는 꿩: 초월적인 종교는 없다
2. 첩보원 쥐와 사기꾼 족제비: 동물 앞에 선 인간 지능
3. 원숭이의 자살: 동물 앞에 선 인간성
4. 우리 집 성인, 병아리: 기술로서의 인간성

5부 인간, 동물이 설계한 인공지능
1. 코로 소리를 듣는 소: 동물의 감각
2. 무지갯빛 까마귀: 사람의 감각
3. 최초의 짐승: 결론을 대신하여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38g | 153*224*30mm
ISBN13
9788997779529

출판사 리뷰

한 마리 족제비가 온몸에 진흙을 발라 머리와 꼬리를 구분할 수 없도록 하고는 앞발을 모으고 썩은 말뚝처럼 사람같이 밭둑에 선다. 그러면 다른 족제비는 눈을 감고 죽은 듯이 그 밑에 누워 있다. 그때 까치가 와서 엿보고 죽은 줄 알고 한 번 찍는다. 짐짓 꿈틀하면 까치가 의심이 나서 재빨리 썩은 말뚝같이 서 있는 놈 위에 앉는다. 그놈이 입을 벌려 그 발을 깨문다. 까치는 그때야 족제비의 머리에 앉은 것을 알게 된다. (……) 한 족제비가 말뚝처럼 섰는데 다른 족제비가 그 아래에 죽은 듯이 누울 줄을 어떻게 아는가. 이것이 자연이 아닌가. 그렇더라도 사람으로서 교묘한 꾀로 교활한 짓을 하는 자가 있으면 쥐와 족제비 같은 종류인 것이다. - 이덕무, 『청장관전서』

『유학자의 동물원』은 조선 유학자들에 대해
내가 받았던 인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독자들은 이 책에서 20세기식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 김시천(동양철학자)

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동물의 세계!
관찰기 속에 인간의 마음을 기록하다


이덕무는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난 게 잘못이니 자신의 근본인 벌레나 기왓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익은 “고기가 되어야 하는 짐승들의 물음”을 들으며, 인간이 짐승을 먹을 수 있는가(육식)에 대해 고민한다. 박지원은 소나 말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정약용은 오징어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고고한 백로의 이야기로 자신의 위선을 고백한다.

관성대로 살아가는 생명은 기계적이다. 인간도 고통받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런 인간의 마음을 기계의 숙명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유학자들이 동물을 관찰하며 남긴 글을 보며, 지은이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조선의 유학자들, 동물을 관찰하다 그리고 기록하다

조선의 유학자들, 특히 실학자들은 동물에 관해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이들은 산과 바다, 초목과 산천, 곤충과 물고기, 동물과 사람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꼬집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물 세계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자 척도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자신의 관찰대로 세계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덕무와 이익 등 조선의 유학자들이 온갖 짐승과 날짐승 심지어 벌레까지 관찰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파리의 드나듦과 쓰임새를 적고야 만다.

『유학자의 동물원』은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동물 관찰기를 토대로, 유학으로 인간세상의 규율을 정하려 했던 조선 유학자의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책 속에는 20세기식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동물의 이야기가 상당하다. 유학자들은 소박하고 다소 비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습성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고민했다. 유학자들은 음풍농월하며 속세의 일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았다. 성인 군자가 인간의 모범이라 여겼지만, 인간도 하나의 벌레(짐승)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그러한 유학의 세계관이 바라보는 동물의 세계란 무엇일까?

백성은 바로 나의 동포이고 만물도 다 나와 같은 종류이다. 날짐승·길짐승 같은 것은 그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사람과 같은데 어찌 차마 해칠 수 있으랴? - 이익

하늘이 물건을 낼 때 그것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것이 없다. 나는 놀고 먹는 사람에게 의심을 갖는다. 사지와 칠규가 거미의 실보다 낫지 않단 말인가. - 이덕무

사물을 생성하는 것은 하늘이고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호랑이와 이리 등 살상하는 맹수를 죽여서 사슴과 노루를 편하게 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쫓아내어 어진 신하를 보호하는 것이니, 이는 곧 천지의 지극한 인이다. - 정약용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실제로는 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과 습성에 대해 사고하였음을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 최지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학과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동물 관찰기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물 다큐멘터리와 기록물을 즐겨보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저자는 먼저 동물 관찰기를 쓴 유학자들의 동물관을 보여준 후, 이를 현대 과학의 성과와 자주 비교/분석한다. 미국에서 간행되는 영어판 학술지 《Chinese Science》에 유학과 과학을 비유/비교하는 논문들이 가끔 나오지만, 책으로서는 저자의 시도가 최초일 것이다.

동물 관찰기 속에 드러난 유학의 세계에 대해, 심도 깊은 사색과 해석이 필요하다면, 단지 관찰 기록을 정리 수집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터이다. 저자는 고전문헌만이 아니라, 현대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 행동경제학 등 주요 관점들과 성과들을 적극 활용한다.

책의 주제

“육체의 에너지(먹이)”와 “마음의 에너지(호오)”
생명의 작동 원리를 말하다!


저자는 이 책의 기획 의도를“고통받는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마음을 기계의 숙명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동물을 바라보며 고민한 문제는, 살아온 관성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명의 기계성’에 관한 것이다. 유학자들은 ‘생명이라는 기계’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말해 준다. 바로 육체가 에너지로 삼는 ‘먹을 것’과 마음이 에너지로 삼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다. 이 책의 조선 유학자들은 바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하는 동물의 습성을 관찰하며 인간의 마음을 추론한다. 유학자들은 동물이 사람보다 지능이 부족하다고 동물을 마음 없는 기계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소박하고 다소 비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각자의 삶을 통해 형성된 좋거나 싫은 느낌, 즉 호오好惡라는 감정의 노예로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이 인간과 별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였다.

동물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한 갈래: 동아시아 만물친족설

이 책은 바로 생명의 가장 작은 단위인 벌레와 티끌에서 인간과 닮은 점을 찾아낸 유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마음속 천 갈래로 갈라지는 생각에 조종당하는 관성의 노예로 인간과 동물을 바라보는 “유학자들의 시선”을 소개한다. 동물과 인간의 ‘마음’이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는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동물관은 애초에 동물과 인간이 본질적으로 한 갈래에서 나왔다는 동아시아 ‘만물친족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만물친족설 역시 1장의 소재이다.

내가 일전에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뽀얀 나비가 펄럭펄럭거리며 떼를 지어 날아와 일렁이는 물결 위를 빽빽하게 덮고 있었다. 사공이 말하기를, “이는 물벌레가 변해 나비로 된 것입니다.” 하기에, 나는 이것으로써 곤어(鯤魚)가 변해서 대붕(大鵬)이 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이익, 『성호사설』

인간은 동물과 함께 벌레라는 조상에서 시작하여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동물원의 한 식구이다. 유학자의 동물원에서는 티끌도 인간과 친족 관계다. 그러나 인간은 티끌에서 작은 벌레를 아우르는 모든 생명과 함께 인류애를 나눌 수 없다. 티끌을 자식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그 불가능함을 아는 인간은 애초에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사랑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저 티끌과 벌레, 온갖 동물들이 나의 친족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같이 살아야 하듯, 사람은 한 지구에서 태어난 벌레 형제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고민을 하는 유학자들은 자신들 역시 벌레에서 시작된 하나의 짐승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남의 살을 먹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정당한 답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에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함부로 정당성을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정당성을 가지는 길이다.

유학자들, 도덕이라는 잣대로 생명의 정치판을 구상하다

그런데 유학자들이 인간의 친족인 동물을 잡아먹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의 행태가 독한 모순임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유학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은 얽히고설킨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몸을 자원으로 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가 먹이사슬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의 몸을 최대한 살리려는 전대미문의 실험을 시작한 이상, 자연을 역행하는 도덕을 무기로 유학자들은 그 모순을 최대한 줄여보기 위해 어떤 동물은 살리고 어떤 동물은 죽이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기술과 자원이 한정된 사회에서 유학자들은 모든 생명의 몸을 살릴 수는 없다. 게다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의 몸을 살리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밟고 살아남으려 한다. 따라서 유학자들은 그러한 아우성 속에서 약하고 하찮은 동물을 살리며 자연에 역행하는 ‘작위’를 부려야 한다. 그들은 동물의 마음을 추스르고 달래거나, 동물의 눈치를 보는 과정을 통하여 역으로 인간의 마음을 조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음을 조정하는 과정은 동물을 향한 ‘도덕’이라는 작위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명의 정치판이 바로 2장의 주제이다.

억울한 동물들의 삶조차 개선하려는 유학자들

동물의 마음을 달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이 태어나면서부터 밥을 찾으려 안간힘을 써야만 살 수 있다는 억울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3장의 주제이다. 이 책의 유학자들은 세상 모든 동물, 심지어 전지전능해 보이는 하늘마저 살아가기 위한 고행에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며 파리 한 마리, 송충이 한 마리, 그리고 사람에게 평생 부림을 당하는 가축들의 억하심정을 고민한다. 유학자들은 이 억하심정을 줄이기 위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위엄 서린 포식동물을 혐오 동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파리와 송충이, 그리고 가축들은 계속 억울할 수밖에 없다. 북학파들의 주장은 바로 이 억울한 가축의 삶조차 개선시키려는 의지에서 나왔음을 3장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소를 절대로 도살할 수 없게 한다면, 몇 년 안에 모든 농부가 제때에 밭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다른 가축이 없는데, 소 잡는 것마저 금한다면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다.”고 반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소의 도살을 금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다른 가축을 기르는 일에 힘을 쓰게 된다. 그러면 돼지나 염소도 번성할 것이다. (……)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나 염소고기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아서 병이 날까 염려스럽다.”고 한다.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식성은 길들이기에 달린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어째서 그 고기를 먹어도 병들지 않는 것인가? 율곡은 평생 동안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소의 힘을 이용해 만든 곡식을 먹으면서 또 그 쇠고기를 먹는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이치에 합당한 말이다. - 박제가, 『북학의』,

조물주가 한 짓이 참 괴상하다. 어째서 나는 너를 혐오하게 되었을까? 너는 왜 하필 나의 피를 빨아먹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회남자』에서 사람이 깨끗이 목욕을 하고 나면 ‘우린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하나’며 서캐와 이가 서로를 위로한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자원으로 갖는다. 그러니 유학자들은 파리나 서캐가 더럽고 성가시다고 미워하기는 양심이 편치 않음을 고백한다. 모든 생명이 그저 우연하게 태어났을 뿐이며 파리나 서캐 역시 그렇다. 그 우연한 사건에 따르는 고행은 그 생명이 모조리 짊어지게 된다. 그것은 분명 억울함이다. 이 억울함은 너무 태생적이고 근본적이라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누구나 태어난 대로 살아야 하는 고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갖 억울함과 소원을 토로하는 하늘조차, 입이 있다면 ‘나도 하늘로 태어나서 억울한 점이 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인간성’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삶을 보존하는 기술!

4장에서는 인간보다 지능적이거나 헌신적이고, 심지어 자살까지 할 수 있는 동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덕무와 이익이 바라본 동물의 지능과 도덕성을 통하여 ‘인간성’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서로의 몸과 마음을 보존하려는 기술일 뿐임을 말하려 한다. 여기서 인간성은 동물성이 열등한 성질임을 반추해 주는 거울이 아니다. 서로의 동물성을 인정하고,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그 자체다.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듯이, 어떤 동물이라도 자유롭게 그 인간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익의 목적이었다.

이익은 항상 ‘형제간에 우애’라는 것이 동물에게서도, 그리고 인간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 판단했다. 이익은 땅 싸움 재산 싸움하는 인간 형제들이 엄마 젖을 차지하려 싸우는 짐승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물의 효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던 이익은 첫째 병아리가 제 어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 이익을 위해 어미닭을 따라다녔다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에 산짐승이 닭둥우리를 뚫고 들어와 닭과 병아리들을 다 잡아가는 사건이 터졌는데, 오직 첫 번에 깐 암평아리 한 마리와 두 번째에 깐 병아리 두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에 깐 병아리 두 마리는 어미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첫째 암평아리가 형제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목격한 이익은 동서고금에 이 암평아리에 비길 만한 동물이 없으며, 그 암평아리가 바로 우리 집 앞마당에 거처했다며 두고두고 기억하였다. 평생 싸우고 할퀴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보았던 이익은 이 암평아리를 성자라 지칭하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고 소학을 읽은 적도 없는데 어찌 이런 짐승이 세상에 나왔는지 묻는다.

우리 집은 서울에 있어도 해마다 닭 한 배씩을 기르고 그 병아리를 즐겁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이 처음 알에서 깨어 나오면 노란 주둥이가 연하고 부드러우며 녹색을 띤 털이 더부룩한 것이 잠시도 어미의 날개를 떠나지 않고, 어미가 마시면 따라 마시고 어미가 쪼면 따라 쪼며, 화기가 애애하여 자애로움과 정성, 효도가 지극하다. 조금 자라 어미를 떠나면 또 아우와 형이 서로 따르며 항상 같이 다니고 같이 자고, 개가 기웃거리면 서로 호위하고 새매가 지나가면 서로 소리친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

동물이라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인간성이라는 기술을 완성하는 방법

5장에서는 동물의 감각과 생김새,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하는 동아시아 학자들의 시선을 통하여 온갖 동물의 감각 정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로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동물의 감각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없지만, 동물이 자신의 몸을 어떤 기능을 위해 쓰는지는 유추할 수 있다. 동물의 삶을 그들의 기능 그대로 관찰한 동아시아의 동물 텍스트가 인간성이라는 기술을 완성하는 방법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이 책의 유학자들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억울한 생명의 본질을 인식하고 동물의 마음을 이루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파리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 존재에게 파리의 ‘성품’이 어쩌고 운운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파리와 소인의 억울함을 두 눈으로 보았다면, 그들의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유학자들은 하늘이 부여한 성(性)에 대한 추상적 담론에서 벗어나, 습관적인 생각에 의해 동물의 삶이 굴러가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습관적인 생각이 어떤 감정과 사건으로 만들어지는지도 알아보려 했다. 생명은 습관에 따른 관성적 사고만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유학자들은 그 관성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습관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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