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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김장순의 시로 못 다한 이야기
1부 일본 탈출기 나는 첫 번째 귀국자였다 / 꿈에 그리던 면 서기가 되었으나 / 임명장 대신 날아온 영장 / ‘인촌’의 아들이 내 자리에 / 송별식 / 부산으로 / 시모노세키에서 대판으로 / 전쟁 막바지의 대판 풍경 / 부끄러운 피지배자의 모습 / 일본인보다 더 악랄한 조선인 지도원 / 채소 찌꺼기를 주워 먹는 동포들 / 밀감 장사로 큰돈을 벌었지만 / 폭격의 공포도 점점 무뎌지고 / 일은 고되지 않았으나 / 도박꾼들 / 자신의 딸을 주겠다던 일본인 조장 / 공습으로 불타는 대판 / 공습으로 폐허가 된 대판 / 진짜 환자, 가짜 환자 / 탈출 준비 / 일본인들에게 받은 인상 / 노가다 판으로 / 기총소사에 넋을 잃고 / 일본에서 한 재산 마련한 밥집 주인 / 노가다 판을 떠나 시모노세키로 / 동포에게 맛본 지옥 체험 / 꿀맛보다 달콤했던 상한 밥 한 그릇 / 고마운 경상도 아저씨 / 표류하는 배에서 사경을 헤매다 / 섬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다 / 풍랑이 잦아들자 도원경이 찾아들고 / 보고파 몸부림치고 목메어 울던 고향 땅으로 / 후기 2부 내 고향 줄포 줄포의 전성기와 폐항 / 일제 강점기 일본인 분포 상황 / 일본인 호적 / 중국인 분포 상황 / 일제 강점기 관공서·각종 기관(단체)·학교 / 일제 강점기 줄포의 유흥업소 / 줄포의 민속과 풍습 / 내 고장 인물들 / 맺는말 3부 줄포 아리랑 진정서에 얽힌 사연 / 미영골 양반 / 신언서판 / 일모작 모내기 철을 보내고 에필로그 | 착한 사람이 아니고는 농사짓덜 못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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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시바다니 조선소에서 고된 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강제 징용 10개월 만에 일본을 탈출, 해방된 5일 후 부산 도착... “그해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다. 가마니때기를 걸치고 햇볕을 가려도 땀을 주체할 수가 없고, 바닷바람도 더위를 식히질 못했다. 가끔 배 한쪽만 비스듬히 모습을 보인 채 가라앉아 있거나, 침몰되어 물 위에 돛대만 내민 군함이나 기선의 잔해가 보이기도 했다. 또 양태만 하게 불은 송장이 여기저기 표류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전쟁의 참혹함에 몸부림쳤다. 소이탄, 폭탄, 기총 소사, 함포 사격...... 인간이 만들고서 결국 인간이 죽었다.” - 『일본탈출기』본문 중에서 김장순.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4년, 일본 오사카 시바다니 조선소에 강제 징용되어 굶주림과 고된 노동 그리고 폭격에 시달리다가 일본을 탈출하여 고향에서 첫 번째 귀국자가 된, 이름 없는 한 농부의 이름이다. 그가 광복 70주년, 일본 탈출 70년만에 강제 징용의 실상 그리고 일본 탈출 과정을 촘촘한 기억으로 써내려 간 『일본탈출기』를 출간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80년대 출판 기회가 무산되어 하마터면 다락방에 영원히 묻힐 뻔한 이 글을 문학평론가이자 국어교사인 김영호(김장순의 2남)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다. 8월 20일은 김장순이 일본을 탈출하여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부산에 도착한 지 정확히 70년이 되는 날이다. 소학교 졸업 학력으로 주경야독 끝에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으나 친일파 인촌 김성수 아들 대신 강제 징용돼... 미당과 한 학교를 다녔지만 초등학교(일제 당시 소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김장순은 “비빌 언덕이 없응게 공부밖에 더 허겄는가”라며 주경야독 끝에 ‘부안군 읍면서기 자격시험’에 6등으로 합격한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끼는 법. 전라북도에서 시행하는 강습소 수료 자격시험에 또다시 상위권으로 합격하여 보안면사무소로 전근이 되고 정식 임명장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징용 영장’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 봉게 그게 결국은 음모”였다. 당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의 발기인,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징병을 독려하던 인촌 김성수 집안의 음모 때문에 김성수 아들 대신 강제 징용(본문 36-37쪽)된 것이다.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오사카 시바다니 조선소로 끌려간 것이다. 굶주림과 고된 노동으로 짐승처럼 견딘 시바다니 조선소 미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오사카의 공포 “공출이란 명목으로 피땀 흘려 가꾼 양곡의 전부, 대대로 물려 오던 가보와 유기그릇이며 제사도구, 금은 가락지, 소, 징용이나 정신대, 학도병, 강제 모병 등으로 일제에 모든 것을 바치고서, 일본 땅에 끌려와 짐승 이하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곳에 끌려오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조선 땅에서 설마하니 채소 찌꺼기를 주워 먹은 따위야 있었겠는가.” “B-29 폭격기 20여 대가 편대를 이루고 옆으로 줄을 지어 나란히 서쪽 하늘을 덮으며 날아왔다. 대판 상공에 이르러 소이탄을 일제히 투척하고 동쪽으로 사라졌다. 소이탄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순간 활짝 불꽃을 피우고 국수가닥처럼 불꽃을 늘어뜨리며 땅으로 낙하한다. 그야말로 하늘은 휘황찬란한 꽃밭이 된다. 잠시 후 땅 위도 꽃밭을 이룬다.” 시바다니 조선소에서의 고된 노동과 굶주림은 상상을 초월했다. 길에 버려진 밀감 껍질이나 채소 찌꺼기 따위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는 굶주림과 계속되는 미국의 폭격으로 인한 공포 그리고 지진 등을 경험하며 조선소 탈출을 결심한 김장순은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그후 노가다 판을 전전하며 우여곡절 끝에 시모노세키로 이동하여 어렵사리 자그마한 발동선을 육백 원에 얻어 타고 일본 탈출에 성공한다. 소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와 글쓰기 좋아해 강제 징용 당시와 탈출 과정 그리고 시대 풍경을 촘촘하게 기록 이 글은 김장순이 58세 되던 해(해방 34주년)에 쓴 글을 66세에 정리하고 덧붙인 것이다. 자신을 강제 징용되게 만든 김성수 집안과 일제에 대한 분노가 보이지만 강제 징용의 과정(줄포에서 부산에 이르는 과정)과 시바다니 조선소의 생활 그리고 미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오사카의 풍경, 탈출 과정에서 보고 느낀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묘사 등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일본 탈출 후 고향에서 대서소를 운영해 온 그의 이력이 말해 주듯 이 책에서도 평소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의 문학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객관적 시각으로 당시 풍경을 담담하고도 세밀하게 그려낸 것은 이 글이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이다. 특히 일본인의 자상함을 소개한 부분, 동포를 등쳐먹는 조선인에 대한 분개가 표현된 부분은 그의 기록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시골 농부의 눈에 비친 시대 풍경과 사람 모습이 촘촘한 기억을 토대로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시대를 객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편견 없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시골 농사꾼의 촘촘한 기억으로 되살려낸 강제 징용의 실상... 광복 70주년 맞아 후손들에게 현대사의 아픔 체감하는 계기 되었으면 2015년 8월 20일은 그가 일본을 탈출, 부산에 도착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강제 징용과 징병으로 수십만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조선 처녀들을 위안부로 희생시킨 일본에 대한 꾸짖음이나 분노 같은 것이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 평범한 농투산이를 강제 징용에 이르게 한 자들이 여전히 시대를 지배하고 치부를 각색하는 하는 현실에서, 김장순 씨는 어쩌면 자신을 곤궁에 처하게 만든 자 그리고 시대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