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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레이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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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s는 1994년에 여성 피아니스트 Rachel Grimes와 Jason Noble, Christian Frederickson 이렇게 3인으로 구성된 모던 챔버 앙상블입니다. 이들이 하는 음악은 실내악을 기본으로 락과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특이하게도 피아노, 아코디언에 하프시코드와 같은 건반악기 그리고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가 주를 이루고있습니다. 고전적인 현악기와 건반악기를 위주로 우울한 멜로디의 서정적인 곡들을 연주하는가 하면 미니멀한 연주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음악은 분위기를 묘사하는 느낌이 강한데 한편의 영화음악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이들의 작법은 실내악과 영화음악에 많은 기반을 두었으며 Oliver Stone이나 Miguel Areta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몇몇 다큐멘터리 필름의 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습니다. |
"세기초의 우울과 긍정의 회화적 풍경"
--- 김미영 (음악/영화평론가)
미국의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1995년에 데뷔 앨범 'Handwriting'을 발매하고, 1999년에 세 번째 앨범 'Selenography'를 발매하였던 사이에 레이첼스(Rachel's)는 에곤 실레를 위한 실내악을 사려 깊게 작곡하여 연주했다. 레이첼스 음악이 들려주는 변칙적인 인스트루멘테이션의 의아함과 불쑥 튀어나오는 음향에 대한 경의, 현악기를 운용하는 포스트록(Post Rock)의 양상의 다양성에 대한 깨달음 대신에 'Music for Egon Schiele'는 그 어떤 인디 음악의 마인드도 들어서기 힘든 꽉 짜인 실내악을 전달해낸다. 이 음반은 애초에 레이첼스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레이첼스의 멤버였던 레이첼 그라임스(Rachel Grimes)에게 작곡이 의뢰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이후에 레이첼스가 인디 음악에서 도출해낸 자신들의 경향성을 설명해낼 수 있는 맥락을 찾을 수 있게 된 계기처럼 작용하게 된다.그 어느 누구도 다른 어떤 이에 대한 정확한 전기를 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원의 몸짓을 품고 에곤 실레의 사라진 생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하며, 그 생을 유추하여 표현해내는 멀티 미디어 극이 90년대 중후반 시카고 프로덕션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에곤 실레의 회화 작품들의 슬라이드 쇼와 그의 그림들을 반영해내고 해석하고자 하는 몸짓들, 그가 남긴 일기들에서 발췌한 몇 줄의 독백, 그리고 레이첼스의 라이브 연주로 이루어졌다.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빈 분리파에 소속되었던 에곤 실레의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려한 회화적 수사와 더불어, 혹은 그의 대비되는 관점에서 모던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된다. 그는 카프카의 시대를 살아갔던 화가였으며, 마치 카프카의 인물처럼 자신의 인간조건의 전부를 차지했던 예술세계에 들이밀어진 세인의 편견과 오만에 기인한 의심과 편협한 재단의 잣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였다. 우리가 설사 그 시대의 데카당스와 노이로제를 세기 초의 징후에 불과한 것으로 지금 바라보고 있다 해도, 그것이 형성해낸 삶의 조건들 속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들이 가졌던 의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그림을 단순히 섹슈얼리티의 드러냄으로, 혹은 죽음과 소녀의 주제를 변주해내는 시대적 낭만주의의 소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그러한 단언에 저항하며, 가혹한 생의 조건에 맞서서 자신의 육체로 표현해낸 그의 회화적 양식에 차라리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전율로, 침묵과 공허함으로, 그의 매체였던 회화에 보다 가까운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세대에 걸맞는 방식으로 그의 스타일을 재현해내었던 피터 정이나 혹은 락 이후의 락 음악이 갖는 정체성에서 탈피하여 애매한 사려 깊음으로 에곤 실레를 불러내는 작업에 동참하였던 레이첼스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그림들에 다가설 기회를 얻게 되었다. 비록 이 작업에 동참한 레이첼스가 재즈와 현악에 매료되었고, 평론가들에 의해 포스트록에 접목된 미니멀리즘이라고 설명되었던 'Handwriting' 시절이나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에서 매혹적인 정적 사이렌이나 세익스피어, 바다 항해자들에 이르는 연상들을 풀어내었던 'The Sea and Bells' 시절, 혹은 월면지리부도(月面地理附圖)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비수를 품은 화가 아르테미시아(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에서 오늘날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있는 영화의 최초의 발명가들 중 하나였던 루이 르프랭스를 하프시코드와 볼륨 딜레이의 노이즈, 과격하게 뜯겨지는 첼로의 현 사이에 배치해놓은 'Selenography' 시절의 레이첼스가 아닌 것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레이첼 그라임스가 작곡한 곡들은 우리가 에곤 실레의 작품 앞에서 경험하게 되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스캔들일 수밖에 없는 너와 나의 삶,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처하게 되는 헐벗은 생의 조건들, 선과 면을 구별지으면서도 투명하게 흔적을 남기는 과슈(Gouache)에 대한 매혹, 데카당스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잔인한 미의식들 대신에 그의 그림이 진정으로 남겨주었던 열망과 긍정을 지향하고 있다. 아무런 익스페리멘틀리즘이 없는 열망과 긍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다면, 다른 시절의 레이첼스와 차별적으로 들려오는 피아노, 비올라, 첼로의 건조한 조합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된다. 애초에 이들은 음향의 틈을, 화이트 노이즈의 장관을 트랙 사이에 끼워넣었던 밴드가 아니었는가. 90년대 초반에 루이스빌의 로컬 밴드 로단(Rodan) 출신의 제이슨 노블(Jason Noble)과 줄리어드 출신의 크리스티안 프레드릭슨(Christian Frederickson)이 처음에 친구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 음악 테이프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레이첼스 헤일로(Rachel's Halo)였다. 그리고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인디 밴드 훌라 후프(Hula Hoop)에 소속되었던 레이첼 그라임스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밴드가 만든 테이프를 듣게 되었고, 이 세 사람이 모여 레이첼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1995년 시카고의 주변 밴드들 셸락(Shellac), 콕테일스(Coctails), 쥰 오브 44(June of 44) 등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 Handwriting이다.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와 프리다 칼로(Frida Kalo)에 대한 곡이 실려있는 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트랙은 음악적으로 레이첼스를 가장 주목하게 만든 음반은 단연코 Selenography이지만, 이들을 동세대의 청자들에게 각인시켜던 최초의 음반은 Music For Egon Schiele일 것이다(어느 누구도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라는 영화에 수록된 이들의 곡을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에곤 실레라는 키워드가 갖는 그 압도적인 매혹은, 에곤 실레를 입에 올린 그 어떤 밴드에게든지 당연히 따라갔을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이 음반은 레이첼스의 가장 변칙적인 음반이지만(처음에 레이첼 그라임스의 개인적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이 밴드의 세 핵 중 하나인 제이슨 노블은 참여하지도 않은 앨범이다) 레이첼스 음악에 귀 기울이게 만들어준, 그리고 다시 한번 에곤 실레를 처음 보았던 그 짧은 순간에 경험했을 영원에 이를 것 같았던 도약과 상호이해의 느낌을 모두에게 상기시켜준 앨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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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를 바라보는 100년의 간극 - 제2 빈악파와 레이첼의 시도
--- 정준호 (클래식 음악평론가, 전 그라모폰 편집장)
우리는 흔히 시각적인 인상과 청각적인 경험을 연결하고자 음악과 미술 사조를 서로 빗대거나 작곡가와 화가의 성향을 비교한다. 조물주의 영광에 다가가 무한한 신앙을 고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미켈란젤로와 바흐를 비교하기도 하고, 인간적인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킨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면에서 루트비히 반 베토벤과 빈센트 반 고흐를 나란히 생각한다. 성경과 신화를 매개로 여러 회화 작품이 클래식 음악과 연결되기도 한다. 트로이 전쟁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천지창조와 출애굽, 예수의 탄생과 수난,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다룬 수많은 그림과 음악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빈번한 예는 음악과 미술에 있어 인상파와 19세기말 빈을 중심으로 교류했던 예술가들일 것이다. 전자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의 몽환적이고 화려한 음색의 음악을 모네·마네·쇠라 등 빛의 예술가들과 공통분모로 묶으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구스타프 말러에서 시작해 아르놀트 쇤베르크·알반 베르크·안톤 베베른으로 이어지는 제2 빈악파의 음악을 이들이 조우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에곤 실레·오스카르 코코슈카 등 이른바 분리파 작가들의 회화에 투영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의 대부분은 도락가들의 진지하지 못한 유희일 뿐 사려 깊은 고찰의 산물인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을 회화에 있어서의 인상주의(Impressionism)에 결부하려는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신조가 샤를 보들레르나 스테판 말라르메와 같은 상징주의(Symbolism) 시인들의 작업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라벨의 경우도 이국적인 탐색의 일환으로 파블로 피카소나 장 콕토와 작업하기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비하면 음악과 미술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은 예는 그나마 세기전환기(Jahrhundertwende) 빈의 예술가들에게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말러는 클림트의 스튜디오에서 수채화가의 딸인 알마 신틀러를 만나 결혼했고, 알마 말러는 1911년 남편 사후에 코코슈카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말러가 죽은 뒤 그녀는 바우하우스를 이끈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과 차례로 결혼한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쇤베르크는 스승의 미망인인 알마와 코코슈카 사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더욱 정제된 기법으로 승화시킨 베베른은 스위스 출신의 화가 파울 클레와 교류를 갖기도 한다. 이런 인연은 예술사에서 흔히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사조로 연결된다. 음악에 있어 표현주의는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몸담았던 후기 낭만주의의 세계를 완성한다. 말러가 머뭇거리며 떠나지 못했던 트리스탄의 세계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Verkl rte Nacht)으로 결실을 맺고, 슈트라우스의 핏빛 처절한 오페라 '살로메'(Salome)나 '엘렉트라'(Elektra)는 실레의 섬뜩한 자화상과 초상화 장면 장면에 녹아 있다. 하지만 실레의 그림과 가장 잘 연관되는 작곡가는 알반 베르크이다. 베르크가 1904년 쇤베르크의 제자 모집 광고를 보고 그를 찾아가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처럼, 실레도 1907년 클림트의 아틀리에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한다. 결혼한 베르크가 여러 여인들, 그 중에서도 알마와 그로피우스의 딸인 마농 그로피우스를 사랑해 그녀를 위한 레퀴엠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것처럼, 실레는 원래 클림트의 모델이었으나 자신을 사랑해 많은 초상의 모델이 된 발리 노이칠과 훗날 아내가 된 에디트 하름스 사이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클림트가 에로티시즘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치장했던 것을 실레가 모조리 까발려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베르크의 관심사도 말러의 애잔하고 서정적인 회귀성보다는 더 퇴폐적이고(보들레르의 시에 붙인 '포도주'), 그로테스트한 면(뷔히너의 극에 의한 오페라 '보체크')을 추구했다. 실레가 제1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18년 독감에 걸려 28세의 생을 마감한 것처럼, 베르크도 1935년 벌레에 물려 생긴 등창이 터져 생긴 폐혈증으로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 이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알반 베르크의 난해한 스코어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단편들은 1995년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 내 아이티너런트 시어터 길드에서 슈테판 마주레크가 '에곤 실레'라는 제목으로 공연한 무용 공연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다. 베르크의 탐미적이고 열정에 솟구치는 음악과는 달리 레이첼 그라임스(피아노)와 후앙 카를로스 시비에로(비올라), 앨리슨 버거(첼로)가 연주하는 곡들은 미니멀리즘을 연상케 하듯 반복적이고 큰 변화 없다. 실레의 일생을 열두 곡의 에피소드로 나눠 진행한 이들의 의도는 일면 쇤베르크가 베베른의 '첼로를 위한 여섯 개의 바가텔, Op 9'를 위해 쓴 서문을 상기하게 한다. 오리지널 음반의 커버에도 인용된 그 서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짤막한 형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절제를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라. 하나의 시선은 한 편의 시로, 한 번의 호흡은 한 권의 소설로 확대된다. 한 권의 소설을 단 하나의 몸짓으로 나타내고, 행복을 단 한 번의 호흡으로 표현한다. 이와 같은 집중을 위해서는 그것에 상응할 정도의 감상이 배제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곡들은 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음으로만 이야기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연민과 동정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고스란히 이입하지는 않는다. 뭔가 동떨어진 채 훔쳐보고, 머뭇거리며, 실레의 세계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듯한 느낌이다. 디아길레프가 라벨의 '라 발스'(La Valse)를 듣고 "이 곡은 왈츠가 아니라 왈츠에 대한 초상이다"라고 말했듯이 레이첼의 음악은 실레와 혼연일체 되었던 베르크와는 달리 그의 회화를 관조하고 있다. 20세기와 21세기라는 100년의 간극 때문인가, 아니면 회화와 음악의 공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영원한 유보인가? 레이첼과 실레의 감상 속에서 그 답을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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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스 Rachel's의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에 대한 짧은 각서(覺書)
--- 서동진 (문화평론가)
'레이첼스'는 포스트-록의 계보에 속한 밴드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밴드일 것이다. 그리고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그 과격한 밴드의 가장 도발적인 음반일 것이다.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그것의 '연주자'들인 레이첼스가 포스트-록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점 하나 만으로 가까스로 록큰롤 앨범으로 분류될 수 있을 뿐이다. 이 음반을 듣는 이들이 제 아무리 Gastr Del Sol이나 Tortoise같은 포스트-록에 익숙해 있다해도 어쩔 수 없는 당혹스러움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포스트-록은 록큰롤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남아있던 록의 마지막 흔적은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 변함 없이 사용되던 지시어인 '밴드'라는 개념일 것이다. 밴드는 우리가 '비틀즈'라는 록은 원형-신화적인 존재에게서 상기하듯이, 록큰롤이 만들어낸 신화적 주체였다. 화가가 시각예술의 신화적 주체였듯이 밴드는 20세기 대중음악 특히 록큰롤의 주체를 가리키는 영웅적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록을 실천하는 주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레이첼스'는 포스트-록의 많은 밴들에게 여전히 그 흔적을 드리우고 있던 그 밴드란 개념 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에서 '레이첼스'는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아름답고 우아한 실내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앨범은 1995년 에곤 실레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무용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사운드트랙이다. '레이첼스'라는 밴드의 신원을 모른 채 이 앨범을 듣는다면 아마 누구나 미니멀리즘적인 경향의 현대 음악으로 이 앨범을 기억할 것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현대 음악 특히 미니멀리스트 경향의 음악들이 그렇듯이 주제화된 조성을 그리고 그러한 곡조가 운반하는 쾌락을 전연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용되는 악기들은 모두 집요하게 사운드의 물질성을 캐묻는다. 그리고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는 에곤 실레를 향한 사운드의 이미지, 그를 다시 환영 속에서 불러내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창조한다. 따라서 이 앨범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앨범의 재킷이 필요하다. 그것은 영화의 자막처럼 각 곡들이 불러내는 환영의 촉매가 될 것이다. 이 앨범은 아름답고 소중하게 마련된 그림과 글을 담고 있다.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데카당트한 바이마르 시대의 그만큼 퇴폐적이고 또한 관능적인 에곤 실레를 위해 그들은 사운드로 조직된 직물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듣는 이에게 촉발한다. '레이첼스'의 다른 앨범들에서 한결같이 반복되듯이 이들에게 있어 음악은 풍경이다. 그것은 포스트-록의 많은 밴드들과 그들이 공유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포스트-록은 관통하는 핵심적인 공통성을 꼽자면 아무래도 영화를 향한 강박관념적인 애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영화는 관습적인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모더니즘 영화들일 것이고 또 모더니즘 영화 가운데서도 그러한 경향의 영화들의 시각적 반복어구인 풍경을 통한 감정의 촉발일 것이다. 무의미하고 건조한 화면을 연결하고 그로부터 화면이 반영하는 세계와는 상관없이 어떤 감정이 촉발되듯이, '레이첼스'는 귓전으로 열정 없는 메마르고 빈약한 사운드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것은 건조하고 심지어 기계적인 듯처럼 들리는 실내악의 텍스처(texture)이지만 우리는 에곤 실레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레이첼스'의 앨범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포스트-록의 결정적인 증후이다. 포스트-록이 인접한 음악을 끌어들이고, 록큰롤을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며 그것을 "텍스트"로 만들어버렸을 때, 어쩌면 레이첼스와 같은 기이한 록큰롤 밴드의 출현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레이첼스의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물론 실내악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록큰롤이라는 부호 속에서 듣는다. 분명 우리가 이 음반으로부터 듣는 사운드는 증폭된 전기기타와 드럼과 베이스가 아니라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피아노의 사운드이다. 물론 인스트루멘털(instrumental)은 포스트-록의 기본적인 표식 가운데 하나이고 우리는 더 이상 이에 대해 낯설어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레이첼스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록큰롤의 퍼포밍(performing)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레이첼스에게 있어 록큰롤은 결국 텍스트가 되었으며 연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건 록큰롤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레이첼스는 록큰롤을 둘러싼 그같은 우리의 불안한 물음을 향해 거는 도박같아 보인다. 그 도박을 즐기려는 용기가 있는 자들에게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쾌락일 것이다. 그러나 그 도박을 우울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고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