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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삶
노예선에서 자유를 사기까지 EPUB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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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읽기 전에 알면 좋은 것
1부. 나의 고향, 그 풍속과 관습
2부. 납치, 그리고 노예선
3부. 버지니아를 거쳐 영국으로
4부. 바다의 전쟁과 뜻밖의 배반
5부. 서인도 제도의 억압과 잔혹
6부. 삼 펜스로 시작한 장사
7부. 자유를 얻다
8부. 세 가지 꿈과 난파
9부. 포르투에서 북극해까지
10부. 신앙에 이르는 길
11부. 모스키토 해안에서 돌아오는 길
12부. 청원과 맺음말
해설
지은이
번역 원칙
판권

저자 소개

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 1745?~1797)는 노예로 팔려 갔다가 스스로 자유를 산 아프리카인입니다. 뒤에 영국에서 노예무역 폐지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생애 대부분을 구스타부스 바사(Gustavus Vassa)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편지와 청원서에도 이 이름으로 서명했습니다. 책 표지에는 두 이름을 함께 올렸습니다.

그는 1745년 지금의 나이지리아 남동부에 해당하는 이보 땅의 에사카라는 골짜기에서 태어났다고 적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을의 원로이자 재판관이었습니다. 열한 살 무렵 그는 누이와 함께 납치되었고, 여러 주인의 손을 거쳐 바닷가로 끌려가 노예선에 실렸습니다. 바베이도스를 거쳐 버지니아의 농장에 팔렸다가, 영국 해군 대위 마이클 헨리 패스컬에게 다시 팔렸습니다. 패스컬은 그에게 구스타부스 바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그는 주인을 따라 군함을 탔습니다. 칠 년 전쟁 중이던 1758년 루이스버그 원정과 1759년 라고스 해전, 1761년 벨일 포위전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사이 글을 배웠고, 1759년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세인트마거릿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풀려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762년 말 패스컬은 그를 서인도 제도로 가는 배의 선장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1763년 그는 몬트세랫의 퀘이커교도 상인 로버트 킹에게 팔렸습니다. 킹의 배를 타고 섬들과 북아메리카 해안을 오가며, 그는 노예들이 당하는 매질과 고문과 살해를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잔돈 몇 푼으로 작은 장사를 시작해 조금씩 돈을 모았습니다. 1766년 칠월, 그는 모은 돈 사십 파운드를 치르고 해방 증서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습니다.

자유인이 된 그는 런던에 자리를 잡고 선원으로 일했습니다. 지중해와 서인도 제도를 다녔고, 1773년에는 콘스턴틴 존 핍스가 이끈 북극 탐험에 참여했습니다. 이 무렵 그는 깊은 신앙의 번민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1774년 카디스에 머물던 배에서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1775년에는 찰스 어빙 박사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의 모스키토 해안으로 건너가 농장 일을 거들었습니다. 이듬해 그곳을 떠났습니다.

1780년대에 들어 그는 런던에 사는 흑인들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1783년에는 노예선 종호에서 노예 백삼십여 명이 바다에 던져진 사건을 그랜빌 샤프에게 알렸습니다. 이 일은 노예무역의 실상을 영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86년 십일월에는 가난한 흑인들을 시에라리온으로 보내는 정부 사업에 식량·물자 감독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영의 부정을 문제 삼다가 이듬해 삼월 해임되었습니다. 그는 오토바 쿠고아노 등과 함께 '아프리카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글을 싣고 의회와 왕실에 청원했습니다.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삶》은 이런 활동의 한가운데인 1789년에 나왔습니다. 의회가 노예무역 문제를 심의하던 해였습니다. 그는 예약 구독자를 모아 두 권짜리 책을 자기 돈으로 펴냈고, 머리에 의회 의원들에게 바치는 글을 붙였습니다. 책은 아프리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노예선의 참상, 해방, 회심, 시에라리온 사업과 해임, 왕비에게 올린 청원까지를 차례로 들려줍니다. 노예로 살았던 사람이 제 손으로 쓴 증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폐지 운동이 내세울 수 있는 힘 있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책은 크게 팔렸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영국에서 아홉 판을 거듭했고, 미국과 네덜란드, 독일에서도 나왔습니다. 그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글을 고치고 보탰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 곳곳을 돌며 책을 팔고 강연을 했습니다. 이 책 덕분에 그는 당시 아프리카인으로서는 드물게 상당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1792년 그는 케임브리지셔 소햄에서 영국 여성 수재나 컬런과 결혼해 딸 둘을 두었습니다. 아내는 1796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이듬해인 1797년 삼월 삼십일일 런던에서 쉰 살 남짓한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바라던 노예무역 폐지 법안은 그로부터 열 해 뒤인 1807년에 영국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그의 출생지를 두고는 오늘날 이견이 있습니다. 미국의 연구자 빈센트 캐레타(Vincent Carretta)는 1759년의 세례 기록과 해군 승선 기록에 그가 캐롤라이나 태생으로 적혀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시절의 이야기는 그가 다른 이들에게 들은 것을 바탕으로 썼을지 모른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보 지방의 풍속을 그린 대목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을 들어 이 견해에 반대합니다. 어느 쪽이든, 노예로 끌려간 뒤의 삶을 다룬 대목은 대부분 다른 기록으로 뒷받침됩니다. 생몰년의 물음표는 이 논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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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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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3.0(DRM) | 0.7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7.6만자, 약 6.1만 단어, A4 약 110쪽 ?
ISBN13
9791123021942

출판사 리뷰

고전파는 퍼블릭 도메인 고전을 오늘의 한국어로 새로 읽는 도서담의 전자책 임프린트입니다. SHORT CLASSICS는 한 번에 완독할 수 있는 분량과 맥락 안내, 해설을 함께 엮어 오래된 문장을 지금의 독서 경험으로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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