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산문(山門)의 호법신(護法神) 09
- 나주 불회사, 운흥사, 남원 실상사, 영암 쌍계사지, 무안 총지사지, 법천사 2. 민중을 닮은 벅수 33 - 곡성 청단리, 가곡리, 율천리, 서봉리, 장성 신호리, 담양 개선마을, 화순 가수리, 영암 죽정리, 동구림리, 영광 도동리, 광주 수곡동, 성촌마을, 부안 월천리, 죽림리, 정읍 오봉리, 백암리, 무안 광산리, 성남리, 보성 해평리, 장흥 방촌리, 잠두리, 해남 관동리 3. 갯마을 수호신(守護神) 85 - 신안 고란리, 궁항리, 당촌리, 외남리, 월포리, 반월도, 여수 동산동, 봉산동, 연등동, 선소 바닷가, 개도, 진도 덕병리 4. 관문(關門)의 수문장(守門將) 121 - 부안 동중리-동문 안, 서외리-서문 안, 강진 병영성 홍교, 광주 전남대 대강당 앞-광주 읍성 서원문 5. 지리산 자락의 비보(裨補)장승 135 - 남원 호기리, 서천리, 권포리, 유곡리, 의지리, 북천리 |
|
공동체 안녕 비는 순박한 민중의 마음
장승은 장승(長承, 長丞), 장생(長栍), 법수(法首菩薩), 벅수, 수살막이 등 다양하게 불린다. 몸에 주장군(周將軍), 당장군(唐將軍), 축사대장군(逐邪大將軍), 보호동맥(補護東脈), 와주성선(媧柱成仙),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등의 이름을 새기고 길목을 지켜 왔다. 그 이름들에는 힘이 센 중국의 장군들을 불러와 신화적인 내용을 입혀놓은 것도 있다. 더 크게, 더 강하게, 더 무섭게 그래야 보이지 않는 사악한 것들이 물러날 것이라 믿었던 마음이고, 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마을 어귀, 사찰의 산문 앞, 길이 갈라지는 자리, 인적 드문 고갯마루, 세찬 바람과 물길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수백 년을 말없이 서 있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들을 향해 퉁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고 붙박고 서 있다. 인간이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병, 죽음, 물난리, 가뭄 같은 하늘의 재앙, 낯설고 두려운 기운, 잡귀, 잡신, 절망―그 모든 것을 막고 서 있다. 마을보다 한 발 앞에 나서서 마을과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액막이로, 길의 이수(里數)를 나타내는 이정표로, 민중과 함께 살아온 이웃이자, 소망을 비추는 등불 같은 신앙으로 서 있다. 무섭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인자한 부처님 같기도 하고, 문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소 과장되어 해학적인 느낌도 있고, 비현실적인 느낌도 난다. 장인의 솜씨든 아니든 순박한 민중들 마음으로 깎아 만든 것이었기에 그 안에는 인간의 체온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결국 장승은 우리 자신의 얼굴인 셈이다. 민중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을 안으로 품지 않고 밖에 세워 두었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악한 것들을 막고자 그 마음을 돌로 깎아 이름을 붙여 바깥 자리에 세웠다. 장승은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경계’이며 ‘벽’이다. 그래서 장승은 신이기 이전에 인간의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사악한 것을 밖에 붙잡아 두려 했던 오래된 소원이다. 우리의 마음이었던 이러한 장승이 지금은 세월과 풍파에 닳아 눈 코 입이 뭉개지고, 개발에 밀려 흙에 파묻혀 있기도 하고, 깨져서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기도 하고, 어떤 이기적인 자가 훔쳐가버려 종적이 묘연한 것도 있고, 동구 밖 제 자리에서 박물관이나 옹색한 곳으로 쫓겨나 있기도 하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이것마저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아프고 조바심이 난다.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전라도에 남아 있는 장승들만이라도 이곳에 옮겨 놓는다. --- 본문 중에서 |
|
돌에 새긴 마음
찰칵! 단칼에 목을 치는 것 같아 섬뜩하고, 또 누군가 닫힌 문을 열어주는 것 같은 반가운 소리다. 바람처럼 떠돌고, 눈처럼 내려앉았다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의자에 앉아있으면서 떠돌았고, 길에서조차 방황하는, 아니 술래처럼 숨겨진 것을 찾고, 애절하게 갈구하는…. 형은 늘 있으면서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 길 위에 있었다. 누군가는 술이나 스포츠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핸드폰에 빠져 사는 동안, 형은 언제나 혼자 있었다. 아니 늘 카메라와 함께 있었다. 그러니 카메라는… 고독한 사내를 구원했을 연인이고, 대상을 보는 구도와 각도, 사랑과 생각이 오롯이 담긴, 세상을 향한 ‘해석’까지 담긴 형의 두 번째 눈, 또 다른 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눈이 향한 곳이 돌…. 그리고 사람. 사람이 새긴 돌, 사람을 새긴 장승, 돌로 새긴 마음…. 그들은 돌에 왜 사람을 새겼을까. 그리고 왜 마을이나 산문에 세웠을까. 형이 찾고 싶은 건 돌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시원의 이야기일까. 혹시 그들의 생각, 전라도의 마음이라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국문학을 전공했고, 평생 교단을 지킨 형이 택한 것은 ‘언어’라기보다 ‘필름’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어둠을, 언어보다 필름을 통해 더 잘 포착한다. 조용히 낮게 살고자 했던 형이라서 장승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그리고 어둠은 형의 손길을 통해 기묘하게 되살아났고 빛이 난다. 옛것 역시 다시 숨을 쉬게 한다. 어둠을 꺼내서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힘, 형의 힘이다. 장승을 볼 때마다 형의 얼굴과 삶이 포개지고 겹친다. 사진 속 장승에게 손을 내밀면 금방 형이 나를 따뜻하게 붙잡는 것 같다. 장승 하나하나는 마을의 비원을 품고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형은 그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형의 그런 생각, 그런 마음이 담겨있다. 형은 늘 그랬던 것처럼 길 위에 있다. 오늘도…. 형은 이곳저곳 항상 떠돌지만, 이미 한곳에만 단단히 뿌리를 박은 진짜 장승인지 모른다. 박 용 수(동신고 교사,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