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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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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야기. 『담장 위의 로미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에드몽 로스탕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익숙한 구도를 빌려 와 첫 막에서 보란 듯이 뒤집는다. 원수인 아버지들은 실은 절친한 친구였고, 금지된 사랑은 처음부터 허락된 정략결혼이었으며, 목숨을 건 결투는 청구서가 딸린 공연이었다. 웃음은 바로 여기서 터진다. 책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던 두 젊은이가 자기들이 남이 쓴 각본 속 꼭두각시였음을 깨닫는 순간의 당혹감은, 오래된 희극 공식을 정확히 비튼 데서 오는 쾌감이다.
이 작품이 단순한 풍자극에 머물지 않는 것은 그다음 걸음 때문이다. 로스탕은 낭만을 비웃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진짜 모험을 찾아 떠난 소년은 굶주림과 상처만 안고 돌아오고, 진짜 사랑의 도피를 제안받은 소녀는 겁에 질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깨닫는다. 무대가 가짜였다고 해서 그 위에서 떨렸던 마음까지 가짜는 아니라는 것을. 평범한 모슬린을 새틴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결론은 소박하지만, 냉소가 지적인 태도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오히려 용기 있는 대답으로 읽힌다. 담장이라는 상징도 오래 곱씹을 만하다. 담장이 사라지자 사랑은 시들고 우정은 삐걱거린다. 그래서 마지막에 칼잡이 스트라포렐은 담장을 마저 쌓으라고 권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이 짓궂은 지혜는, 거리 두기를 잃어버린 오늘의 관계들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분량은 짧고 장면은 경쾌하다. 그 안에는 훗날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꽃피울 로스탕 문학의 씨앗이 모두 담겨 있다. 낭만에 대한 동경과 그에 대한 아이러니, 그리고 끝내 마음의 진실을 믿는 따뜻함이다. 18세기 풍습과 고전 속 연인들을 꼼꼼히 짚어 준 각주 덕분에, 희곡이 낯선 독자도 한 편의 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사랑 앞에서 너무 계산하거나 너무 지쳐 버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