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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목차 미적 풍속의 도덕적 효용 숭고에 관하여 비장미에 관하여 우아와 품위에 관하여 품위에 관하여 아름다운 형식의 사용에 필요한 한계에 관하여 예술 작품에서 속되고 저급한 요소를 사용하는 문제에 관한 단상 미학의 여러 문제에 관한 단상 소박시와 감상시에 관하여 감상시 풍자시 애가 전원시 도덕 제도로서의 무대 비극 예술에 관하여 비극적 대상에서 얻는 쾌감의 원인에 관하여 copyrights (참고) 분량: 약 27.1 만자 (종이책 기준 약 454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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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기>
1795년 '호렌' 제11호에 실린 '미적 풍속의 위험'이라는 글의 저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정에만 기초하고 취미 말고는 아무 보증도 갖지 않는 도덕성을 의심스럽게 여긴 점에서는 옳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강하고 순수한 감정이 도덕적 삶에 유익한 영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내가 이제 다루려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도덕적 진보에 기여하는 공로를 취미에 돌릴 때, 좋은 취미가 어떤 행위에 갖는 관심만으로 그 행위가 도덕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도덕성은 결코 자기 자신 말고 다른 어떤 토대도 가질 수 없다. 내가 이 논문에서 지적하고자 하듯, 취미는 행실에서 도덕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홀로, 자기 도움 없는 영향만으로는 결코 어떤 도덕적인 것도 산출할 수 없다. 내적 자유에 관해서도 외적 물리적 자유에 관해서와 사정은 절대적으로 같다. 나는 외적 영향 일체와 독립하여 단순히 내 의지에 복종할 때에만 물리적 의미에서 자유롭게 행동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방해 없이 내 자신의 의지에 복종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이 원리가 내 의지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는 순간, 나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넘어서거나 나 자신과 구별되는 어떤 원리에 빚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의무에 부합하여 그러한 행위를 완수할 가능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것을 궁극적으로 내 이성과 구별되는 어떤 원리에 빚지고 있을 수 있다. 이 원리의 이념이 내 독립성을 강제할 수도 있었던 힘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것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유가 고유한 의미에서는 타인에 의해 규제되도록 강제되지 않는 데 있음에도, 어떤 사람이 자기 자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기서 취미가 덕에 복종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비록 덕 자신은 덕의 실천에서 어떤 외래적 도움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념을 명백히 지니고 있다 해도 말이다. 어떤 행위의 수행을 방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 다행히도 그 길에 어떤 장애물도 놓지 않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조금이라도 자유롭기를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행위자가 다른 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같은 방식으로, 도덕 질서의 행위도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도 있었던 유혹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도덕적 행위라는 자격을 잃지 않는다. 행위자가 모든 외래적 작용 원천을 배제하고 오직 자기 이성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충분하다. 외적 행위의 자유는 그것이 한 인격의 의지에서 직접 나오는 순간 확립된다. 내적 행위의 도덕성은 행위자의 의지가 이성의 법칙들에 의해 곧바로 그 행위로 규정되는 순간 확립된다. 우리의 의지에 맞서며 극복되어야 할 힘들을 길에서 만나느냐 만나지 않느냐에 따라, 자유로운 인간으로 행동하는 일은 더 쉬워지거나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더 많거나 적을 수 있다. 자유는 반대하는 힘들이 아무리 힘차게 대립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이기게 할 때 더 크거나 적어도 더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가 아무 저항도 만나지 않았거나, 외래적 도움이 우리 자신의 도움 없이 그 저항을 파괴했다고 해서 자유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이 자기 명령들과 싸우며 물리쳐야 할 본능들을 우리 안에서 깨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순간 이성에 복종하기 위해 더 많거나 더 적은 저항을 해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성은 더 많거나 적을 수 있다. 우리의 도덕성은 우리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본능들이 아무리 강력해도 우리가 곧바로 이성에 복종할 때 더 크거나 적어도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우리가 불복종할 유혹을 받지 않았거나, 이 힘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어떤 다른 힘에 의해 마비되었다고 해서 도덕성이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행위가 가장 기분 좋은 것인지 미리 묻지 않고, 오직 그것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그 행위로 자극된다.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그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수고를 치르게 했거나 어떤 쾌락을 빼앗았더라면 우리가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이 성격을 보존할 것이다. 인간성의 명예를 위해, 어떤 인간도 악이 악이라는 이유만으로 악을 선호할 만큼 낮게 떨어질 수는 없으며, 오히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어떤 우연한 사정 때문에 선이 쾌적한 것을 배제하거나 수고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선이 선이기 때문에 선을 선호할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에서 모든 도덕적 행위는 선과 쾌적한 것 사이의 갈등, 또는 같은 말로 욕망과 이성 사이의 갈등 말고는 다른 원리를 갖지 않는 듯 보인다. 한편에는 우리의 감성적 본능들의 힘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의지의 약함, 곧 도덕적 능력이 있다. 겉보기에는 이것이 우리의 모든 잘못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을 돕는 데에는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가 두 종류인 것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이성의 편과 선한 의지의 힘을 강화하여 어떤 유혹도 그것을 이길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혹의 힘을 꺾어, 이성과 의지가 더 약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두 번째 절차로는 참된 도덕성이 거의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의지의 어떤 변화도 없이 일어나며, 행위들에 도덕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오직 의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역시 문제의 경우에는 의지의 변화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바뀌어야 할 나쁜 의지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향해 있으나 약한 의지만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너무 약한 이 의지는, 더 강한 충동이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갔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선한 행위들에 이 길을 통해 도달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향한 강한 의지가 어떤 행위의 원리가 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도덕적 행위 앞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명제를 내세우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 의무의 법칙에 제기되는 저항을 중화하는 모든 것은 실제로 도덕성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도덕성은 우리 안에 자연적 적을 가지고 있다. 감성적 본능이 그것이다. 이 본능은 어떤 대상이 자기 욕망들을 유혹하자마자 곧바로 그것을 만족시키려 하며, 이성이 자기에게 거슬리는 어떤 것을 요구하자마자 그 명령들에 반항하기를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이 감성적 본능은 의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끊임없이 몰두한다. 그럼에도 의지는 도덕 법칙의 관할 아래 있으며, 이성이 요구하는 것과 결코 모순되어서는 안 될 의무 아래 있다. <추천평>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을 포함한 미학 저작들은 칸트 이후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필독서였다. 쉴러는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혼란을 목격한 뒤 단순한 정치 개혁이나 이성주의만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물질적 욕구에 얽매이는 충동과 엄격한 도덕 법칙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제3의 힘인 '놀이 충동(Spieltrieb)'을 제시했다. 미적 경험과 예술을 통해서만 인간이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어 전인적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논증은 탁월했다. 헤겔의 변증법적 구조와 지양(Aufheben) 개념의 원형이 이미 쉴러의 텍스트에 깊이 새겨져 있으므로 철학사적 가치가 매우 컸다." - anthegoyr, Goodreads 독자 "18세기 말 계몽주의의 한계를 꿰뚫어 보고 예술을 인간 영혼의 치유제로 선언한 기념비적인 저작이었다. 문장은 고전적이고 사유의 밀도가 높아 호흡이 가볍지 않았지만, 한 문장씩 곱씹을 때마다 큰 지적 쾌감을 안겨주었다. 쉴러는 인간이 오직 아름다움을 직면하고 유희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설파했다.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분업화되고 파편화된 인간성의 비극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회복할 열쇠로 미적 감수성을 제시한 대목은 200년이 지난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로 다가왔다. 미학과 윤리학이 어떻게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저였다." - kyle, Goodreads 독자 "문학가이자 극작가로만 알고 있던 쉴러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적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숭고(Sublime)와 우아(Grace)에 대한 쉴러의 분석은 칸트 미학의 난해한 추상성을 생생한 인간 실존과 예술 창작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도덕적 의무와 자연적 본능이 충돌할 때, 예술적 아름다움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으로 도덕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설득력 있었다. 단순한 이론서를 넘어 예술이 개인과 사회의 자유에 왜 본질적인지를 입증한 최고의 에세이였다. 철학과 예술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었다." - cehgiyhe, Goodreads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