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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사슴 요리
류혜진 저
걷는사람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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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너럭바위 고인돌의 고요
서해의 쓸모
숨은 방
아무도 모르는 시
침
맑은 날
없는 사람
아홉 가지 사슴 요리

해설
돌봄의 등뼈 위에서
이철주(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 소개 1

202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서해의 쓸모」로 등단했고 경기문화재단의 출간 지원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도예와 미술치료, 정신분석을 전공했다. 도예가로 20년, 미술치료사와 정신분석가로 20년을 살았다. 이제 남은 20+n년은 소설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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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130*200*20mm
ISBN13
9791175011199

책 속으로

나와 친구들은 그 너럭바위를 고인돌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고인돌의 멋진 풍채와 기품은 다른 바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고, 온 세상을 품은 듯한 고인돌은 모든 세상의 고통과 진실을 다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고인돌 위에 누워 하늘 보기를 좋아했다. 고인돌에서 바라본 하늘은 계속 다른 춤을 추는 구름 덕에 지루하지 않았고, 어떤 두려움도 우울함도 느낄 수 없이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했다. 나는 낮 동안 태양의 온기로 데워진 고인돌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에 안겨 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지금도 너럭바위 고인돌을 떠올리면 그 따뜻함이 사무쳐 눈물이 차오른다. 외로운 나를 오롯이 품어 주고 안아 주었던 것은 고인돌뿐이었다.
---「너럭바위 고인돌의 고요」중에서

계속 같은 거만 보는 거 지겹지 않아?
지겹지 않아요.
왜 매달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지 물어봐도 되니?
그냥 좋아요. 제 꿈이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어요.
꿈? 아, 꿈이었구나.
선생님 꿈은 뭐였어요?
글쎄, 난 꿈을 가져 본 적이 없어. 먹고사는 게 꿈이라면 꿈이었지.
지금이라도 꿈이 생기면 좋겠네요. 저는 아직도 꿈을 꿔요. 저도 제 병이 희망이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 희망을 누가 정할까요. 나에겐 기억이 희망이에요. 건강해질 거라고, 보통의 삶으로 되돌아갈 거라는 희망이 아니에요. 그래서 난 계속 꿈꾸고 싶어요.
---「침」중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사라지고 없는 사람일까요? 상처일까요?
둘 다 아닐까요.
희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이보를 보내고 테라스에 앉아 어두워지는 거리에 불이 하나씩 들
어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구시가와 블타바강은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봄이 다시 와도 밤이 깊어지면 그림자 같은 카프카의 자갈돌 밟는 발소리가 들리겠지. 사막 같은 삶의 고통을 견디며 걸으려나.
---「없는 사람」중에서

나는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맥주 캔을 납작하게 구겼다. 나라고 새끼 사슴과 다를까? 나도 넘어지면 바로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러니 달려야 산다.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그래야 살아. 왜 사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는 게 지금보다 더 고달프다고. 나에겐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아홉 가지 사슴 요리」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2026년 등단 전까지 지난 5년 동안 풀어낸 여덟 편의 소설은 대부분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소설이 될 수 없는 자전적 이야기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고쳐도, 아무리 봐도, 소설일 수 없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목덜미를 잡게 했다. 자기애의 과잉 감정에 ‘사로잡힌’ 소설이 아니라 자기애를 ‘다루는’ 소설이 되기까지. 나의 동력이고 좌절인 자기애가 이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겼다.

추천평

사는 게 늘 ‘입구도 없는 좁고 어두운 구멍에 갇혀 있는 기분’이라면 어떨까. 떠올리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사는 게 무엇일까. 과연 행복한 삶이란 존재할까. 류혜진의 소설은 이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류혜진 소설에서 삶은 ‘검은 개에 쫓기는 악몽’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절망적이고 불안할까. 그 이면에는 잘못된 욕망이나 왜곡된 진실 그리고 의도치 않은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은 흔들리지 않는다. 검은 개에게 무릎 꿇지 않고 끌려다니지 않는다. 꿋꿋하게 마주해 싸운다.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나아갈 뿐이다. 그게 온갖 환멸이 들끓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류혜진식 방법이다. 비굴해하지도 위장하지도 않는, 처절한 몸부림. 그렇지 않고는 진실에 닿을 수 없다는 듯 애초에 요령과 타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애잔하다. 진흙탕에서 구른 후 오히려 투명해진 느낌이랄까. 진솔한 세상을 위한 한 방. 이를 구현하는, 솔직하고 담백한 문체가 믿음직스럽다.

류혜진의 소설 읽기는 화려하고 요란한 요즘 서사 속에서 희미한 흑백 사진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그 사진은 마법 같아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입구도 없는 좁고 어두운 구멍 속에서 기적처럼 한 줄기 빛을 맞닥뜨린다. 절망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류혜진의 소설은 처연히 보여 준다. - 조영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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