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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새벽의 귀신놀음
2 악서를 만들라는 명을 받다 3 머리를 맞대다 4 책을 읽다 5 새로운 답을 찾다 6 음악을 아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다 7 장악원 생활 8 쓸쓸한 장례식 9 단 하나의 꿈 10 소리를 담는 그릇 11 악기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 12 무거워진 보따리 13 무동의 인생 14 많은 이들의 바람을 담아 15 좋은 답을 알고 있는 아이 16 화원을 찾아 17 책의 꼴을 갖추어 가다 18 서문을 쓰다 19 임금에게 책을 바치다 20 온갖 소리를 담아 이야기를 쓰다 작가의 말_ 최고의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 책 속 실존 인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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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나를 도와 악樂에 관한 책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소.”
성현은 주상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악서樂書라. 악서라 하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궤와는 또 다른 책일까? 성현이 악보를 만들 수도 없으니 악보와도 다른 책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의궤와도 다르고, 악보와도 다른 그 어떤 책을 말하는 것일까? “악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을 만들어 주시오. 그 책만 보면 누구라도 예와 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쓸모 있는 책을 만들어 주시오. 공은 문장에 능하면서도 음률에 통달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니 악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이 책을 만들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하오.” 생각지도 못한 주상의 명에 성현은 대답을 못하고 생각에 빠졌다.---「악서를 만들라는 명을 받다」중에서 장악원에 도착하자마자 서고로 갔다. 장악원 서고에 있는 책들을 몇 권 들춰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해금 소리가 들려왔다. 들쑥날쑥 서툰 솜씨였지만 깊이가 있어 보였다. 누구의 연주인지 호기심이 발동한 성현은 해금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소리의 주인공은 이제 갓 어린애 티를 벗은 소년 악생이었다.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은 어린 악생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해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제 팔보다 긴 활로 줄을 문지르는 품이 제법 그럴싸했다. 무언가 파닥파닥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린 기생의 콧소리처럼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제법 마음을 건드리는 소리였다. 제 흥에 취해 연주를 하던 악생은 활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에휴.” 한 곡조가 끝났다. 그런데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린 악생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라고. 으으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앗, 제조 어르신.” 혼자 투덜거리던 악생은 성현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린 악생이 장악원 제조를 가까이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무 그늘에 아무렇게 나 앉아 연습하는 것을 들켜 버린 것이다. ---「새로운 답을 찾다」중에서 지난밤 목돌이는 장악원 제조에 예조 판서까지 맡고 있는 양반의 집에 간다 하여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는 장악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도랑을 건너고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달리고 평소에는 몇 번이나 쉬어 가던 길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숨이 차도록 뛰어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뛰는 내내 목돌이의 귓가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목돌이가 제조 어른의 집에 초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악원 식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참말이여? 네가 시방 제조 어르신 댁에 초대를 받았단 말이여” 동기생으로 있는 덕구는 목돌이보다 더 난리였다. 샘이 날 법도 한데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제조 어르신을 돕기로 했다더니 목돌이는 출셋길이 열려 부렀구먼. 시상에 양반 댁에 초대를 다 받고.” 함께 사는 악생 어른들도 목돌이를 부러워했다. “너를 예뻐하신다고는 하지만 너랑은 큰 차이가 나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어. 네가 땅이라면 그분은 하늘이여.” 목돌이는 성현의 뒷모습을 보며 비파를 타는 악생 어른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맞다. 잊어서는 안 된다. 성현이 아무리 목돌이를 귀여워해 주어도 성현은 지체 높은 양반이고 목돌이는 지지리 가난한 농부의 아들일 뿐이다.---「음악을 아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다」중에서 성현은 김영기와 비파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파에 대한 열정은 가득해 보였지만 5년간 장악원 악생 생활을 했다는 김영기는 아직도 자신의 연주 실력에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비파 연주를 청하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송태평과 송전수의 연주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김영기의 바람과 꿈과 진심이 담긴 연주였다. 사실 비파라는 악기는 배우기가 어려운 악기에 속한다. 배우는 사람이 줄을 잘못 고르거나 채를 잘못 쓰면 듣기 괴로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밥을 굶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렵습니다.” 그저 우연히 들었던 송전수의 비파 소리에 이끌려 장악원에 들어 왔지만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김영기는 악보를 보는 것도, 남의 연주를 듣고 틀린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제일 두려운 일은 혹여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를 쓰고 비파에 매달려 있지만 평생을 가도 송전수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없을까 두렵다고 했다. 성현은 말없이 김영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장악원 생활」중에서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장례 준비가 다 되었다. 종7품 부전율의 자리에 올랐다고는 하나 천민인 오두수의 장례는 초라했다. 죽을 때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작은 관에 들어갔다. 그나마 성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대문 밖 적당한 곳에 오두수를 매장하기로 했다. 시신을 짊어진 악공과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차례로 움막을 나섰다. “제조 어르신, 나머지는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누추한 곳에 계신 것만으로도 황공한데…….” 나이가 지긋한 악공이 함께 움막을 나서는 성현에게 머리를 숙였다. “괜찮네. 나도 같이 가세.” 성현은 제대로 된 곡소리도 없이 저세상으로 떠나는 오두수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김영기의 바람처럼 글을 모르는 악생이나 악공도 볼 수 있는 책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구슬피 우는 목돌이를 보며 성현은 오두수의 쓸쓸한 죽음에 대해 혼자 되뇌었다. “태어나서 세상에 몸을 부쳐 산다는 것은 물에 떠다니는 것과 같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쉬는 것과 같으니, 떠다니는 것이 영광될 게 무엇이겠으며 쉬는 것이 또 슬플 게 무엇이겠는가.”---「쓸쓸한 장례식」중에서 “자네는 왜 이렇게 대금을 만드는 일에 열심인가?” 성현이 넌지시 묻자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저 좋아서지요.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성현은 깜짝 놀랐다. 온 손에 생채기가 나도록 평생을 바쳐 대금을 만든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놀라웠다. 돈을 바라서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라니……. “대금 소리가 너무 좋지 않습니까? 소인이 이름난 악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름난 악사들이 제가 만든 대금으로 천상의 소리를 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천한 제 손에서 그런 것이 만들어진다니 저는 그저 좋을 뿐입니다.” 놀란 것은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목돌이 역시 정리하고 있던 종이들을 손에서 놓칠 만큼 깜짝 놀랐다. 목돌이는 노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이 굽은 노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목돌이가 존경해 마지않던 스승 오두수도 생전에 노인과 같은 말은 하지 않았었다. 그저 좋아서라니. 스승 오두수는 끊임없이 연습을 하며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문 때문에 괴로워만 했었다. 목돌이 역시 해금을 잘 켜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해금을 켜는 게 그저 좋기만 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었다.---「악기를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중에서 춤이란 것이 남이 추는 것을 보면 몸을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처럼 쉬워 보여도 실제 해 보면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의 기억과 머리의 기억이 달라 머릿속으로 동작을 외워도 몸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도 하고, 아무리 외우려 해도 문장이나 시를 외우는 것과 달라 외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춤 역시 악기를 다루는 일처럼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선비를 으뜸으로 치는 조선에서는 춤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대접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동이 되려는 양인의 자녀나 양반의 자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무동으로 뽑히면 악생과 마찬가지로 부모와 헤어져 음악과 춤을 배워야 했다. 어느 정도 배우게 되면 종묘 제향의 일무佾舞를 비롯해 회례연 등의 연회에서 춤을 추게 된다. 하지만 무동의 경우 춤을 출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온다. 바로 어깨가 떡 벌어지고 몸이 사내처럼 성장하게 되었을 때다. 그래서 무동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무동의 경우에는 장악원의 악공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무동이 많았다. 사람이 두 가지 재능을 가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무동의 인생」중에서 성현의 말에 목돌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림으로 그리면 되지 않겠느냐? 속악 진설도, 아악 진설도, 악기에 관한 부분들도 모두 그림으로 그려 설명을 곁들이면 되겠구나.” 다시 생각해 보아도 좋은 방법이었다. 글을 모르는 이들뿐 아니라 글을 아는 이들까지도 그림을 곁들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의례때 악생과 악공의 자리나 악기들의 위치에 대한 것도 그림을 붙이면 글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론에 대한 내용이야 글로 쓰면 되겠지만 다른 내용들은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현 역시 책으로만 보았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보고 들으니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직접 보지 않고도 이해를 도울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리는 것이다. 성현은 왜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의궤 역시 많은 부분이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다. 성현은 의궤를 보완하기 위해 책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좋은 답을 알고 있는 아이」중에서 첫닭 울음소리에 성현은 눈을 떴다. 고단했는데도 저절로 눈이 떠졌다. 사실 자료를 모으고 윤복이를 만나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성현은 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른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눈을 감아도 자료들이 눈앞에 떠다녔고,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다음 권에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몸보다 머릿속이 더 고단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괴롭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나았다. 성현은 간단히 청소를 하고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오늘은 아홉 번째 권을 끝내야 한다. 그래서 아홉 번째 권에 들어갈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아홉 번째 권에는 관복과 무동, 여기(女妓)의 복식에 대한 내용을 담기로 했다. 박곤과 김복근, 신말평과 함께 의논한 주제들을 망라하니 모두 9권 3책이 될 듯했다. 권은 내용으로 분류한 것이고, 실제 책 수는 3책이다. 오늘 점심을 먹기 전까지 아홉 번째 권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하고, 윤복이가 그림을 그리면 될 터였다. 윤복이가 그림을 다 그리면 박곤, 김복근, 신말평은 물론이고 유자광까지 함께 모여 책을 검토하고 서문을 쓰면 된다. 성현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수많은 것들이 책 안에 담겨 점점 책의 꼴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책의 꼴을 갖추어 가다」중에서 주상은 성현이 바친 책을 훑어보았다. 주상이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성현의 미간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성현의 마음에는 흡족한 책이었지만 주상의 마음에 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상이 책을 훑어보는 동안 마음을 졸이기는 유자광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찌하여 음악책에 ‘궤범’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오?” 주상 역시 성현이 붙인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 주상 전하. 이 책이 음악의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지었사옵니다.” 성현의 말에 주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학궤범?? 3책을 찬찬히 훑어본 주상은 크게 기뻐했다. “고생이 많았소. 공들이 바친 책이 아주 마음에 드오. 내 바로 이런 책을 원했던 것이오. 공들 덕분에 다시 교화를 펼 수 있을 듯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성현과 유자광을 비롯해 박곤, 김복근, 신말평은 몹시 기뻐 주상에게 연거푸 머리를 조아렸다. 성현은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다. “다시는 이런 책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 같소. 다들 고생이 많았소. 공들 덕분에 내가 원했던 책보다 훨씬 더 훌륭한 책이 만들어졌소. 이 책은 후대 사람들이 음악에 관해 공부할 때 분명 모범이 될 것이오.” ---「임금에게 책을 바치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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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24년,
성현과 함께 최고의 소리를 찾아 떠나다 “16년 전쯤 강원도 정선으로 민속 답사를 갔었다. 철부지 대학생이었던 나는 강원도의 맹추위와 굽이굽이 펼쳐진 길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었다. 그런데 굽이굽이 깊은 산속을 걸어 드문드문 나오는 인가를 찾아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해 내려오는 민요를 청해 듣고,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채록했던 6일간의 경험은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답사를 다녀온 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때 들었던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다녔다. 그러다 민요를 찾아 듣게 되었으며 대금, 소금, 해금을 비롯한 수많은 국악기의 소리에 매료되었다. 경기 민요를 배우러 다닐 만큼 우리 소리에 빠져들었던 나는 어느 날 [악학궤범]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기만 했지 국악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던 내게 그 책은 어렵고 무서운 책에 불과했다. 읽을 수도 없는 그 책을 나는 책장 구석에 꽂아 놓고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해금 연주자 성의신의 해금 소리를 들으며 아무래도 나는 꼭 우리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악학궤범]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악학궤범]을 쓴 성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상상력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최고의 소리를 찾아서]는 우리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던 작가 최형미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성현의 책 [악학궤범]을 바탕으로 상상하여 풀어낸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성현은 실존 역사 인물로 뛰어난 음악적 식견과 재능으로 인해 예조 판서 겸 장악원 제조를 맡아 나라의 예악(禮樂)을 관장하였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선에서 예악은 국가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없어지거나 낡거나 잘못된 악보들 때문에 그 소중한 음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성종은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을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그 명을 받은 성현은 유자광, 신말평, 박곤, 김복근 등과 함께 ‘음악과 관련하여 모범이 될 만한 책’이라는 뜻을 담은 [악학궤범]을 편찬하게 된다. 그 시대 음악과 사람과 삶이 만들어 내는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 엄청난 명을 받고 고민에 빠진 성현은 음악에 능한 사람, 문장에 능한 사람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고서(古書)를 찾아 뒤적여 보기도 하며, 소리 잘한다는 사람을 찾아가 들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노래들과 사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금 켜는 목돌이와 함께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악서에 담을 내용을 찾아다니던 그는 소리를 만드는 악기, 악기를 만드는 악기장,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연주자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무동을 만나고, 악기마다에 숨은 이야기와 악기장과 악기 연주자, 무동의 사연을 알게 된다. 신분에 상관없이 음악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도 [악학궤범]을 볼 수 있도록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 넣기로 한다. 유자광, 신말평, 박곤, 김복근, 목돌이, 그림 그리는 윤복이까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악(樂)에 대한 이론을 담은 첫 번째 권, 아악 진설 도설과 속악 진설 도설을 담은 두 번째 권, [고려사] 「악지」에서 당악 정재와 속악 정재를 찾아 정리한 세 번째 권, 시용 당악 정재를 담은 네 번째 권, 시용 향악 정재를 담은 다섯 번째 권, 아악과 당악, 향악에 쓰이는 악기들을 도설로 담은 여섯 번째 권과 일곱 번째 권, 의물과 복식에 대한 도설을 담은 여덟 번째 권과 아홉 번째 권으로 이루어진 [악학궤범] 9권 3책을 완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