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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에 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인해, 폐해가 극심했던 구 정치체계의 개혁을 위해, 그리고 은퇴 후 수원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국력을 총동원해 수원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화성행궁을 신축했으며 화성을 쌓았다. 수원 화성은 5.4km에 이르는 성곽과 옹성, 치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의 건축 기술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성곽의 기본 형태는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했으면서도, 당시의 새로운 기법이나 요소들을 군데군데 더해서 만들었다. 화성을 세울 때 특별히 신경을 쓴 점이 있었는데, 바로 ‘길’을 만드는 일이다. 화성을 크게 나누는 십자로를 만들어야 했고, 십자로에서부터 장안문과 동장대까지 가는 넓고 반듯한 길도 새로 내야 했다. 조선 시대에 이렇게 십자 모양으로 길을 만드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었다. 왜 굳이 십자로를 새로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여, 화성을 상업의 중심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정조의 뜻이 담긴 것이다. 성곽을 완성하고 길을 정비하니, 가로변에는 기와를 얹은 상점들이 연이어 자리 잡으며 시장이 확대되어 갔다. 이러한 모습들은 계획 도시인 화성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수원화성 살펴보기
화성은 옛날부터 사용해 오던 기술에 새로운 과학적 기술을 더해서 쌓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눈에 띈다. * 돌과 벽돌로 쌓은 성벽 돌과 벽돌을 함께 사용하여 지은 성벽은 화성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세밀하게 쌓을 필요가 있는 곳은 벽돌로 쌓았기 때문에, 직선뿐만 아니라 곡선으로도 성벽을 쌓을 수 있었다. * 치성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치’ 또는 ‘치성’이라고 한다. 적이 성 가까이 다가오거나 성벽을 기어 올라올 때, 옆쪽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이는 정약용이 생각해 낸 것이라고 한다. *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꼭대기에 있는 망루로 가려면 안쪽에 난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야 한다. 그 모양이 마치 소라와 비슷하다고 해서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중간 중간에 구멍이 있어 군사들을 보호하면서도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공심돈 역시 화성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