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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1901 ~ 1945년의 한국영화사를 되짚다
김려실
삼인 200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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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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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한국영화사의 제도적 기억

1부 시네마의 전래와 정착
1. 영화의 전래를 둘러싼 주장들
대한민국 수립 이후 |해방 이전

2. 활동사진과 극장 체험
판촉영화, 활동사진소, 활동사진회 |극장의 분리와 관객성의 분열 |활동사진 배급망 |근대 극장이라는 정치적 공간

3. 연쇄극과 민간영화의 출발
부르주아 인텔리 계층과 영화 |연쇄극 토착화

4. 관제영화와 식민지 근대화 프로젝트
경무국의 위생 활동사진 |체신국의 저축 장려 활동사진

5. 다큐멘터리와 국가의례
이토 히로부미와 다큐멘터리 |총독부 활동사진반 |다큐멘터리의 이중성

2부 내셔널 시네마의 미장센
1. 조선총독부의 영화정책
민족영화와 국가영화 |무성영화기의 영화 통제

2. 상상된 민족영화 〈아리랑〉
〈아리랑〉 이전 |〈아리랑〉 이후 |영화소설과 시나리오 비교 |의도된 ‘모호성(ambiguity)’ |〈아리랑〉 담론의 변증법

3. 짧았던 황금기
나운규의 부침 |카프의 영화운동과 그 몰락

3부 토키화―테크놀로지와 이데올로기의 길항
1. 모던의 ‘미몽’, 토키의 ‘미몽’
토키 전환기의 ‘말 못할 사정’ |이필우와 토키 〈춘향전〉 |〈미몽〉, 혹은 조롱 속의 자유 |〈나그네〉/〈여로〉의 이해관계

2. 〈군용열차〉의 불길한 출발
영화인의 전향과 친일 |〈군용열차〉의 제작 배경 |대륙친선영화 〈백란의 노래〉 |방첩영화 〈군용열차〉 |합작 선전영화라는 딜레마

3. 〈어화〉의 ‘멜로드라마적 상상력’
〈어화〉의 멜로드라마적 코드 |〈어화〉의 이원론과 ‘양가성(ambivalence)’ |기생 여주인공의 양가적 위치 |기생, 조선영화의 스펙터클 |멜로드라마는 왜 반복되나?

4부 친일영화의 다양한 층위
1. 조선영화령과 영화신체제
영화 탄압의 서막 |조선영화령의 특수성 |영화신체제와 영화인의 대응

2. 지원병제도와 〈지원병〉
카프 맹원들의 친일영화 |〈지원병〉에 묘사된 지원 |〈지원병〉과 현실의 괴리

3. 〈집 없는 천사〉들의 전쟁
국민학교령과 아동용 선전영화 |소년항공병 영화의 유행 |고려영화주식회사의 아동영화 |〈수업료〉의 경우 |〈집 없는 천사〉의 경우

4. 조선영화와 만주
만주 이민의 역사 |조선영화에 그려진 만주 |만주영화협회의 선전영화 |〈복지만리〉의 재구성

5. 영화 속의 영화신체제
극장체인의 형성 |〈반도의 봄〉의 자기 반영성

6. 내선일체 총력 영화 〈그대와 나〉
조선영화 초유의 대작 |허영이 꿈꾼 일선통혼 |영화계의 친일 청산 문제

5부 조영 영화의 가족국가주의
1. 〈망루의 결사대〉
경무국의 방첩영화 |망루의 위계질서

2. 〈조선해협〉
지원병 일가의 대 잇기 |전선과 총후의 교차편집

3. 〈젊은 모습〉
징병제 선전영화의 모순 |결혼은 국책이다

4. 〈사랑과 맹세〉
조영판〈집 없는 천사〉 |누구의 사랑과 맹세할 것인가? |조영의 아동영화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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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김려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인간?환경학연구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이다. 지은 책에 『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2005)과 공저 『영화와 시선 10―복수는 나의 것』(2006), 『한국 영화사―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2006) 등이 있다. 영화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학문 활동을 시작해서 영화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고찰로 옮겨 갔고, 요즘 천착하는 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가 어떤 맥락에서 수입되고 수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21g | 153*224*30mm
ISBN13
9788991097612

책 속으로

기존의 한국영화사가 노정하는 서술상의 불균형은 근본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수탈’과 ‘저항’으로 재단하는 이분법에 기인한다. 그로 인해 ‘항일영화/친일영화’, ‘민족적 전통/종속적 모방’, ‘리얼리즘 영화/신파 멜로드라마’라는 이항 대립이 어느덧 조선영화를 분석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발굴된 영화를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친일영화를 비판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영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간섭을 정당화해 버릴 위험이 있고, 논리적으로는 일본인이 일본을 위해 만든 ‘국책영화’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좁히고 만다는 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무성영화기에는 각 극장의 전속 변사가 영화를 설명하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1926년부터 1940년대까지 장기간 단속(斷續)적으로 상영된 〈아리랑〉의 경우, 변사도 여러 명이었고 따라서 영화설명의 버전(version)도 변사의 수 이상으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리랑〉의 ‘필름’은 하나였지만 ‘영화’ <아리랑>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단성사에서 〈아리랑〉을 해설한 적이 있는 변사 성동호는 임검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고려해 두 가지 버전으로 〈아리랑〉을 해설했다. 경찰이 임석했을 때 전설(前說)은 “쫓아가는 사나이는 서울 모전문학교에 재학중 철학을 연구하다가 미처났다는 김영진이라는 청년이오”로 했지만 지방 상영이라든지 가끔 극장에 경찰이 없을 경우에는 “서울 모전문학교에서 철학공부하다가 3·1운동의 고문으로 미치광이가 된 영진”이라고 해설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pp.115-116

그런데 친일한 지식인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이 ‘후일’이란 대체 언제인 것일까? 서광제뿐만 아니라 지도자급 위치에 놓인 친일 엘리트들은 그때가 언제인지 그들 자신도 모르면서 친일을 정당화하고 동포를 동원하려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구호를 즐겨 썼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애에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막연한 그날이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찾아왔을 때’ 후일을 대비해 그들이 도모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업국으로 돌아갔고, 조선영화는 무성영화로 퇴보했다. 친일 영화인들의 주장과 달리, 기술적으로 우수한 일본과 합작한 결과 조선영화에 남은 것은 의존심뿐이었다. 기자재와 기술 문제를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여 해결해 왔던 그들에게는 새로 생긴 국경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 p.146

완성된 영화의 개요와 로케이션의 상황으로 볼 때 〈복지만리〉는 만주국의 슬로건을 표상한 친일영화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큐멘터리 터치로 연출된 리얼리즘 영화이기도 했다. 즉, 기존의 연구는 ‘친일’과 ‘리얼리즘’이 반드시 상반되는 가치가 아니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최근의 발굴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는 친일 대 리얼리즘의 패러다임에 맞아떨어지는 영화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핀 〈집 없는 천사〉처럼 내선일체 영화는 총독부의 정책에 영합하여 제작되었으면서도 종종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조선의 현실을 드러내고 말아 위정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는 제작자와 감독이 의도했다기보다는 내선일체 자체의 모순 때문이며 카메라의 현장성 때문이다.

--- pp.263-264

출판사 리뷰

국가와 영화―초기 한국영화사를 재구성하다

1부에서는 조선에 영화가 전래된 시기와 유입 주체에 대한 기존의 주장들을 되짚고, 영화라는 매체가 조선에 이식되어 제작되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다루었다. 특히 해방 전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중단한 「조선영화총관」(1929)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해방 이후의 기록과 매우 달라 흥미롭다.

2부에서는 무성영화기에 민간영화와 관제영화가 조선인 관객을 민족/국민으로 확보하고자 펼친 전략을 밝히고자 했다. 조선총독부에서 검열과 탄압으로 국가영화를 구축하려 했다면 〈아리랑〉은 그 틈새에서 ‘의도된 모호성(ambiguity)’으로써 권력을 전복하는 방법으로 민족영화가 되었다. 나운규는 잡지 『삼천리』를 통해, “자랑할 만한 우리의 조선 정서를 가득 담어 놋는 동시에 「동무들아 결코 결코 실망하지 말자.」하는 것을 암시로라도 표현하려 애섯고 또 한가지는 「우리의 고유한 기상은 남성적이엇다. 민족성이라 할가할그 집단의 정신은 의협하엿고 용맹하엿든 것이니 나는 그 패기를 영화 우에 살니려 하엿든 것이외다.”(오자와 띄어쓰기 모두 원문 그대로, 본문 111쪽)라고, 〈아리랑〉에서 표현하고자 한 뜻을 에둘러 밝힌 바 있다.

3부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발성영화로 인해 1930년대 후반 급속도로 진행된 토키화가 조선 영화계와 관객에게 미친 영향을 다루고, 토키화 실현을 위해 시도된 조선 영화계와 일본 영화사들 간의 불평등한 합작이 어떻게 친일영화로 귀착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조선의 첫 촬영감독이자 녹음기사인 이필우가 일본인 기술자들과 함께 웨스턴 일렉트릭 시스템을 모방해 자체 토키 기술을 개발하고 나아가 동시녹음까지 시도한 이야기에서는 해방 이전 조선영화의 기술 수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고, 2005년 중국에서 발견된 필름 〈어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시 영화에 이미 아시아적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수 있는 ‘타자의 눈을 의식한 조선미 표현’이 두드러진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화〉에는 30년대의 사회상을 드러내는, 신여성과는 구별되는 모던 걸이 등장하여 근대 여성사의 일단을 보여 주는 한편, 그동안 조선영화에서 식민지 민족의 은유로 작동하던 ‘기생’이라는 존재가 조선적인 스펙터클을 구현한다.

4부에서는 조선인의 염원에 따라 조선인 지원병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선전하는 〈지원병〉을 비롯해 걸작 리얼리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웰메이드 친일영화’ 〈집 없는 천사〉, 그리고 내선일체의 의미를 조선인이 일방적으로 일본화하는 것에 두지 않은 점에서 유일한 ‘진짜 내선일체 영화’인 조선인 감독의 〈그대와 나〉에 이르기까지, ‘친일영화’라 싸잡아 불리어 온 영화들의 다양한 외연을 다룸으로써 중일전쟁 이후의 영화신체제가 실로 여러 층위에서 전면적으로 조선영화계를 재편했음을 밝혔다.

5부에서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전 조선의 영화사를 통폐합하여 설립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만든 전쟁선전영화 4편을 분석했다. 일본인 배우가 대거 출연하고 일본 기술로 만들어진 이들 일본어 영화는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자 가족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 영화에 나타나는, 만주 여성과 ‘반도처녀’의 차이점, 그리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의 위계질서를 통해 일제가 대륙과 조선에 품었던, 다른 ‘꿈’이 명백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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