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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1부. 새 언론의 꿈 화보 1. 창간 1장. 언론의 암흑시대 2장. 새 언론의 여명 돋보기 1 - 한겨레신문과 한겨레 돋보기 2 - IBM을 누른 PDI 3장.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돋보기 3 - 한 판의 승부 4장. 민족 민중 민주 언론의 탄생 돋보기 4 - 배달 안 되는 신문 한겨레 논쟁 1 - 지면 성격과 경영 방향 2부. 꺾을 수 없는 자유언론 화보 2. 탄압 1장. 아직은 겨울 돋보기 5 - 안국동, 양평동, 공덕동 2장. 역시 한겨레 돋보기 6 - 월급과 촌지 돋보기 7 - 6만6743명의 주인 3장. 갈 길을 묻다 돋보기 8 - 여편네 4장. 도약을 꿈꾸며 돋보기 9 - 논객의 요람 한겨레 논쟁 2 - 정파와 파벌의 경계 3부. 한걸음 또 한걸음 화보 3. 사업 1장. 다매체의 날개 돋보기 10 - 하마다와 케바우의 변신 2장. 참살이 사업 돋보기 11 - 휴가 없는 시사만화가 돋보기 12 - 군계일학의 지역기자 3장. 민주정부와 민주언론 돋보기 13 - 미주판과 영문판 4장. 기업 한겨레 돋보기 14 - 점거 농성의 추억 한겨레 논쟁 3 - 언론과 정치권력의 거리 4부. 연대와 신뢰의 시대로 화보 4. 특종 1장. 위기와 눈물 돋보기 15 - 풍물패에서 록밴드까지 2장. 다시 새 언론 돋보기 16 - 최소한의 이익 돋보기 17 - 한겨레 창과 Esc 3장. 정치 민주화를 넘어 경제 민주화로 돋보기 18 - 기자 중의 기자 4장. 스무살 청년의 꿈 돋보기 19 - 각계각층을 대표하여 한겨레 논쟁 4 - 지배구조와 선출제도 부록 1부. 인물 2부. 자료 3부. 한겨레 약사 / 국민주주명단 편집후기 1. 편찬과정 2. 끝말에 부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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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호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14일 오후 4시께였다. 임원들이 윤전기 앞에 섰다. 한승헌, 고은, 백낙청, 조영래, 김수행 등 외부 인사들도 윤전기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초대 공무부장 신동호가 버튼을 눌렀다. 일순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과연 신문이 나와 줄 것인가. “나온다, 나와.” 누군가 외쳤다. 만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앞에서 리영희는 눈물을 훔쳤다. 외신 기자들이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나는…할 말이 없어.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워서…할 말이 없어.” …… 편집국으로 자리를 옮겨 자축연이 열렸다. 송건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무슨 문제든지 여러분이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을 다 쓰십시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표현은 조심하십시오.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신문을 만들려면 우리가 그만큼 연구해야 합니다.” -60~61
한겨레는 민주주의를 조직 운영의 바탕으로 삼는다. 지면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경영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등 조직 전체의 지향과 미래를 두고 한겨레 사람들은 언제나 공론을 벌여 왔다. 한겨레의 여러 문제는 결국 공론을 통해 해결되어 왔다. 이것이 한겨레식 민주주의의 요체다. 한겨레를 둘러싼 중요한 문제 치고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별로 없다. ---p.81 기성 언론의 간부들은 한겨레를 두고 “창간 뒤 여섯 달 안에 망할 것”이라고 악담했다. 창간 뒤 여섯 달이 지난 1988년 11월, 한국언론학회지에 한국 신문의 신뢰도를 측정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교수, 의사, 변호사, 연구원 등 지식인 4백 명과 대학생 850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겨레에 대한 신뢰도가 37.6%로 가장 높았다. 2위를 차지한 동아일보의 신뢰도는 27.3%에 그쳤다. 1989년 2월, 한국갤럽은 한겨레가 발행부수 43만 부(가판 포함)로 신문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때문에 다른 신문사가 발칵 뒤집혔다. 4대지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거대 신문사들의 자존심이 상했다. 편파적인 조사가 아니냐며 애꿎게도 한국갤럽을 들볶았다. 한국갤럽 사람들이 곤욕을 치렀다. 최고의 신뢰도, 4대지 규모의 시장점유율은 이후 2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pp.128~129 “해 지면 호주머니에 소주 한잔 값이 없는 가난한 한겨레 기자들. 해 뜨면 독재정권 총칼부리도 무섭지 않은 의연한 한겨레 기자들. 월급 많아 좋은 직장, 신문사 다 팽개치고 박봉도 좋다 껄껄 웃으며 제 발로 모여든 한겨레 기자들. 술 고픈 것도 좋고 안식구 시린 눈치도 참을 수 있으나, 그러나, 윤전기 명색이 워낙 못나 신문 발행이 늦습니다. 속보성이 생명인 신문 인쇄가 늦습니다. 뜻있는 분들께 도움을 청합니다. 새 윤전기를 사주십시오.”이 광고의 대표 카피는 ‘국내에서 가장 못난 신문, 세계 언론 사상 가장 놀라운 신문’이었다. ---pp.151~152 “그런 일은 한겨레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어요. 경영이 어렵다는데, 나한테 드는 인건비가 많다는데, 내가 그만두면 젊은 후배들 몇 명이 더 일할 수 있다는데, 자 뒤돌아보지 말고 나이든 사람들 다 함께 배에서 뛰어내립시다, 그렇게 했던 거지요. 후배들이 등을 떠민 게 아니에요. 선배들이 먼저 기꺼이 그렇게 한 것이지. 다만 남은 사람들이 신문 제대로 못 만들면 다신 후배들 얼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 씨네21 편집장 출신으로 당시 희망퇴직한 안정숙의 기억이다. ---p.279 큰 싸움을 앞둔 한겨레는 다행스럽게도 혼자가 아니다. 대안을 찾고 진실을 갈구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한겨레를 기다리며 응원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한겨레를 통해 삶의 희망을 얻은 사람들이다. 가난하여 핍박받는 자, 시대를 깊이 멀리 보려는 자, 그들 모두가 한겨레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고 삶의 좌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들에겐 아직도 한겨레가 필요하다. 더욱 절실하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한겨레가 나아간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고뇌하며 싸우며 이 길을 갈 것이다. 희망으로 가는 길이다. ---p.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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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국민주 신문 한겨레, 그 20년의 역사<
대한민국 진보 언론의 대표적 이름, <한겨레>가 창간 스무 돌을 맞아 그 20년 역사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던 국민모금을 통해 태어난 <한겨레>는 87년 6월항쟁이 기폭제가 된 민주화의 결실이라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스스로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 <한겨레> 창간 전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아낸 이 책은 건조한 연대기적 기술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 정사와 야사, 논쟁사가 어울려 살아 숨쉬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사다. 무엇보다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대부분 사사와는 달리 20년 동안 계속되었던 경영의 어려움, ‘가야할 바’에 대한 내부 논쟁 등 <한겨레>의 한계와 아픔의 역사까지 가감 없이 담아냈다. 본문 외에도 20년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담은 ‘돋보기’라는 꼭지와 한겨레 내부의 격론을 불러일으켰던 4가지 주요 쟁점을 정리한 ‘한겨레 논쟁’을 구성하여, 읽는 재미와 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겨레 사람들 앞에선... 1987년 5월 15일, 한국 언론계에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족벌언론, 재벌언론, 어용언론의 틈새를 비집고 세계 최초의 국민주 신문 한겨레가 창간됐다. 정치가의 칼 앞에 두려움이 없는 언론, 자본가의 돈 앞에 구차함이 없는 언론, 오직 독자와 진실의 편에서 정론을 펼치는 언론을 만들어 보려는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군사정권에 의해 언론현장에서 쫓겨난 해직기자들과 굴종언론의 청지기 노릇을 스스로 거부한 현직기자들이 뜻을 모아 새 언론을 만들었다. 6만여 명의 국민들이 창간 기금을 내어 주주가 됐다. 기성 언론사의 간부들은 “그런 식으로 신문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냐”며 코웃음 쳤다. 막상 한겨레가 창간되자 “몇 달 안에 분명히 망할 것”이라고 이죽거렸다. 그러나 한겨레는 살아남았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 한국에서 가장 공정한 언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을 꼽을 때, 어느 조사기관이 시행한 어떤 종류의 조사이건 한겨레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87년 이후 민주세력이 주축이 된 대부분의 집단과 조직이 사분오열과 지리멸렬의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한겨레는 척박한 한국 신문 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유력 매체의 지위를 지켰다. 민주주의의 실험, 벤처기업의 실험, 정론지의 실험을 함께 이뤄내려는 꿈이 현실이 됐다.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케 했을까. 평범한 국민들이 주인인 신문, 대표이사와 편집국장을 선거로 뽑는 신문, 사원들이 자신의 퇴직금을 기꺼이 신문사 주식으로 전환하는 신문, 대통령도 삼성도 제 맘대로 휘두를 수 없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년간 한겨레 사람들이 치러온 땀과 눈물의 기록이 『희망으로 가는 길』에 담겨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겨레신문사가 펴낸 한겨레 역사의 기록이다. 혁신 언론의 효시, 자유 언론의 적자, 진보 언론의 맏형, 고급 정론의 대표, 한겨레 국민주주 중심의 소유구조, 컴퓨터조판시스템(CTS) 전면 편집, 순 한글 가로쓰기 전면 편집, 출입처 제도 혁파, 편집위원장 직선제 도입, 민주주의적 편집위원회 제도 도입, 신문사 윤리강령 채택, 민생 인권 중심의 편집국 구성, 독자투고 고정지면 배치, 1면에 칼럼 편집 …. 한겨레는 각종 혁신의 선구자였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첨단의 아이디어로 창간을 일구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겨레는 벤처기업이었다. 창간과 함께 분단의 금기, 권력의 비리, 재벌의 치부를 드러냈다. 이런 고발 보도를 접하지 못했던 권력자들은 당황했다. 그때까지는 기자들에게 촌지나 향응을 베푸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자가 뻣뻣하게 굴어도 편집 간부를 대접하면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 편집 간부가 완강하면 사주를 꼬드겨 문제를 해결했다. 한겨레는 그런 방식으로 무마할 수 없는 언론이었다. 독자들 역시 권력기관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기사를 난생 처음으로 접했다. 한겨레의 모든 독자가 양심적 제보자가 됐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부패, 비리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한겨레 기자부터 찾았다. 한겨레 창간을 통해 권력이 언론사주를 보호하고, 언론이 권력자의 치부를 가렸던 권언 유착의 시절도 끝이 났다. 한겨레는 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 결실이었지만, 이후에는 한겨레 스스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개척자 구실을 했다. 지난 20년 동안, 노태우 정부 시절의 ‘고문기술자 이근안 특종’, 김영삼 정부 시절의 ‘김현철 비리 특종’,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로비 특종’,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미 FTA 심층보도’를 비롯해 한겨레는 줄기차게 군사정부를 고발하고, 민주정부를 감시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태, 여성, 소수자 인권 분야의 의제를 이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등을 특종 보도하면서 자본권력의 감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겨레가 변화시킨 한국 사회, 한국 사회와 더불어 변화한 한겨레의 흔적이 『희망으로 가는 길』에 새겨져 있다. 오류와 한계까지 가감 없이 담다 그러나 한겨레가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후반에는 안기부가 편집국을 압수수색까지 하면서 한겨레를 탄압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안기부의 주도로 광고 수주 방해 공작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삼성 비자금 보도를 빌미삼은 삼성 그룹의 광고 게재 거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내부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신문사의 갈 바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한겨레에 대한 신념과 애정이 너무 투철하여 정치적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논란의 와중에 상처를 입고 신문사를 떠난 이도 있었다.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임직원 스스로 퇴직금을 주식으로 바꾸거나 집단으로 희망 퇴직하는 일도 겪었다. 다른 언론의 사사와는 달리 『희망으로 가는 길』은 그런 일들도 가감 없이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의 본문은 4부로 이뤄져 있다. 70년대 자유언론운동부터 2007년 12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사적 관점에서 한겨레의 편집과 경영 부문의 변천을 담았다. 지면 곳곳에는 ‘돋보기’라는 꼭지를 배치해 숨은 이야기를 실었다. 각 부의 마지막에는 ‘한겨레 논쟁’을 따로 실었다. ‘지면성격과 경영방향’, ‘정파와 파벌의 경계’, ‘언론과 정치권력의 거리’, ‘지배구조와 선출제도’ 등 한겨레 20년을 가로질렀던 4대 주요 쟁점을 뽑아 내부의 격론을 담았다. 부록 마지막 부분에는 6만 7천여 명에 이르는 한겨레신문 국민주주의 명단도 함께 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