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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신의 장미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여름비 메마른 고원 달의 강 여름의 흐름 숲의 축제 황금동굴 봄이 지나가다 도시 위를 날다 물결이 친다 해설/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상처의 뿌리에 닿는‘상처의 사회학’과‘상처의 윤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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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동서문학』신인상 출신, 신예작가 유시연의 첫 소설집.
● 사랑을 좇는 인간의 욕망과 그 상처의 미학이 뿜어내는 삶의 고해성사! ● 생이 주는 고통의 극단과 상처의 자기 치유과정을 보여주는 소설들. ● 상처의 사회학에 대한 서사적 탐구를 보여준 유시연의 소설미학! ● 꽉 짜인 구성과 발랄한 문체, 도도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다! 사랑을 좇는 인간의 욕망과 상처의 미학이 뿜어내는 삶의 고해성사! 작가 유시연이 세상에 내보이는 첫 소설집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고, 각 작품이 뿜어대는 서사적 매혹은 우리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집에 관류하는 문제의식은 사랑을 좇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상처이며, 인간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대처하기 위해 인간과 세계를 향한 끝없는 연민과 사랑을 품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 유시연 소설들이 보여주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들은 흔히 통용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자기 미학을 드러내고 있어 우리들의 주목에 값한다. 작가 유시연에게 있어 상처는 좀 더 적극적이고 치밀하며, 주도적이다. 이 적극성을 더 잘 드러나기 위해 작가는 비범하거나 통념을 깨는 소재와 장소와 인물들을 이 소설들 속에 불러낸다. 열아홉 살 때 성적 유린을 당한 여자(「당신의 장미」), 알래스카 원주민 여성(「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불임여성(「메마른 고원」),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 어머니와 이모(「달의 강」), 사북에서 막장 생활의 후유증으로 암 선고를 받은 한 남자(「봄이 지나가다」), 경운기 운전의 부주의로 어머니를 치어 죽인 어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여름의 흐름」) 등은 상처의 극단 속에서 자기 생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존재들의 이름이다. 그중에서 표제작인「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알래스카 원주민 여성인 ‘아네’가 외로움을 이겨 나가는 방식은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섣불리 모색하는 것에 있지 않다. 외로움의 극단에 서보는 것,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외로움의 복판을 횡단하는 것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아네에게는 알래스카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득된 “생존에 대한 집요함과 치열한 본능이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네란 존재는 극지방 근처의 생물학적 환경에 자연스레 적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유별난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작가 유시연에겐 아네가 보이는 적응력이란 존재의 특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네처럼 세상을 부유하는 자들이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 그로 인해 세상의 끝자락에 선 외로운 인간의 숭고한 삶의 형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방식이에요…… 허공에서 아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짙은 남빛과 청회색 지평선이 맞닿아 있는 밤 속에서 커다란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한밤중 짐승이 울부짖는 벌판에 나가 한바탕 혹한과 맞서 싸움으로써 외로움을 이겨나간다는 아네의 말이 바람처럼 그의 가슴을 두드린다. 노을을 보러 광활한 지평선을 달려 나가던 그의 무모함과 무엇이 다른가.>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중에서 문학평론가 황광수는 유시연의 이 소설에 대하여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유시연의 소설「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는 알래스카 원주민 여성과 지구 최북단의 눈과 얼음의 풍경을 병치하면서 삶의 근원적 의미에 다가가고 있다. 이 작품은 풍경을 심리적 차원으로 환치하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는 알래스카라는 독특한 자연풍광이 뿜어내는 차가운 정신성과 원초적 순수성에 다가가면서, 낭만적 신비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도 우리 시대의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빙산처럼 맑고 투명하면서도 공허한 여운을 남긴다. > 생이 주는 고통의 극단과 상처의 자기 치유과정 유시연의 문제작「달의 강」은 세 여성의 각기 서로 다른 박복한 삶에 대한 내용이다. 시종일관 인물 간에 팽팽히 감지되는 삶의 긴장과 각자의 삶에서 발산되는 도저한 외로움의 감성이 지배적이다. 어머니와 혼담이 오고간 남자는 이모와 사랑을 하여 끝내 어머니와 결혼을 하지 않고 이모와 야반도주를 하였다. 말하자면 이들 자매는 한 남자를 놓고 삼각관계에 놓였는데, 이유야 어떻든 여동생이 사랑을 쟁취하게 되었고, 언니는 사랑의 패배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언니로부터 쟁취해간 사랑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여동생은 그 남자와 헤어지고 “남자를 일곱 번이나 갈아치운 이모”로서 바느질을 하고 불경을 외며 지독히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나’의 어머니는 여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행복한 생활을 누리지도 못한 채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어떤 재력 있는 여인의 지원을 받기 위해 가장과 남편, 아버지의 역할을 내팽개친 남자로부터 감내하기 힘든 삶의 온갖 상처를 겪는다. 이렇게 자매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또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남자들로부터 상처를 간직한 채 삶을 살아왔던 셈이다. 자매의 기구한 삶의 숙명과 상처는 ‘나’의 현재적 삶과 살며시 포개진다. ‘나’는 자궁근종 수술로 자궁을 들어낸,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의 어머니와 이모가 그랬듯이, ‘나’ 역시 영혼과 육체에 깊게 패인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 작가 유시연은 작심한 것처럼 삶의 매서운 국면을 서늘히 목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란, 서로에게 치명적 상처를 낼 수 있는 맹독을 지닌 관계인바, 언제 순식간에 그 맹독이 온몸으로 퍼져 타인과의 관계가 절연되어 “어둠이라는 두려운 삶을 밤을 새워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과 맞닥뜨리게 될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망루 위에 서서 한 생을 건너가는 바람을, 그 인연의 허망함을 응시하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불모성을 견뎌내는 삶의 진정성을 보증해내는 형식이므로. 유시연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삶의 혹독한 상처를 지니게 되는데, 이 점은 자칫 부차적이거나 아예 은폐된 문제가 되어 상처를 주고받는 자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 그리하여 모두 삶의 불가해성에 의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존재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쉽게 수렴되고 만다. <상처의 사회학>에 대한 서사적 탐구를 보여준 유시연의 소설미학 신예작가 유시연의 소설은 상처의 구체성은 휘발된 채 상처라는 추상적 관념만을 남겨두지 않는다. 말하자면 곤혹스러운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상처를 삶의 지반과 동떨어진 어떤 비의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도 않으면서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실감을 갖는 어떤 상처로, 이른바 ‘상처의 사회학’ 혹은 ‘상처의 윤리학’에 대한 서사적 탐구를 진진하게 보여준다. 소설이란 장르가 태생적으로 상처받은 자들의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속성을 띠고 있어, 운명과 맞서 싸우는 괴로움과 곤혹스러움의 서사시라고 하지만 유시연의 소설처럼 집요하리만치 상처를 다루고 있는 소설을 이즈음 소설 속에 만나기가 참으로 드물다. 그러기에 중견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유시연의 이 소설집 속에 담긴 상처의 사회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미학적 잣대를 들이댄다. <이미 깊게 패인 상처의 고통으로 더는 그 어떠한 상처도 감내할 수 없는데도, 유시연은 이미 난 상처에 또 다른 상처를 덧낸다. 마치 삶이란, 상처투성이 자체이며, 상처를 적당히 아물게 하는 것은 언제 또 더 큰 상처를 덧나게 할지 모를 일이기에, 상처의 뿌리에 닿을 정도로 아파하는 것이 오히려 상처를 낳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서사화한다. 이렇듯 남의 힘을 섣불리 빌리는 게 아니라 상처를 입은 자의 처절한 외로움으로써 상처의 뿌리까지 뒤흔들어 혹독한 상처를 내고, 스스로 그 상처를 견디고 치유하기 해야만 ‘상처의 자기치유’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상처의 바닥을 보고 나서야 일종의 황홀경(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는 서사의 매혹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성찰적 역할을 보여준 유시연의 소설들 유시연의 소설은 “개 같은 인생”(「숲의 축제」)의 풍경들이 관념의 나래로써가 아닌, 실제 우리들의 삶의 구체적 모습과 포개지는 실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일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지금, 이곳에서 유시연의 소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귀중한 소설적 메시지에 귀 기울여본다.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가.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한없이 낮고 비루한 삶의 바닥에서 상처투성이의 생을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고, 온갖 위선과 위악에 의한 타자와의 관계로 상처를 치유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너나없이 먹고사는 일이 모든 일의 최상의 가치를 선점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유시연의 소설이 우리에게 타전하는 귀중한 소설적 전언에 우리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유시연 소설 전언은 피상적 계몽성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려 하지 않았거나 묵과하고 있었던 점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시연의 소설적 전언은 계몽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심층적 계몽적을 지니고 있어 우리의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성찰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소설집으로 독자에게 깊고 쓰라린 상처를 고해한 이후, 또 어떤 소설 세계를 펼쳐보일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작가, 핍진한 삶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무해줄 유시연만의 웅숭깊은 소설 세계의 진경을 펼쳐 보이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