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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정혼에 부쳐
여는 글 1장 고서화 감상의 바른 길 2장 추사 서도의 이해 3장 추사진작眞作 4장 추사위작僞作 5장 타인작 6장 연구작 맺는 글 후기 부록 별책:퇴우이선생진적첩의 제 고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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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책 : 퇴우이선생진적첩
“조선성리학으로서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했던 성리학의 거봉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묵적 「회암서절요 서」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 중 한분인 우암 송시열 선생의 두 번에 걸친 친필발문 그리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성 겸재의 네 폭 산수화, 역시 조선시대 시성 중 한 분인 겸재의 지기 사천 이병연의 제시 등이 담겨져 있는 『퇴우이선생진적첩』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서이다. 흠잡을 곳이 보이지 않는 학술논문서로서의 이론적 체계와 정교하고 세심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논증, 그 학문적 깊이 등을 보면 30대 중반이라는 저자의 나이가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필력 또한 뛰어나서 이 책이 논문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논문서를 읽으며 이러한 벅찬 감동과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 경험은 흔치않다. 얼마 전 이 귀중한 우리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흠잡은 어떠한 논거와 예술에 관한 기본을 갖추지 못한 한 작자의 저서 『진상-이동천저 동아일보사 』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와부뇌명’,‘일광견폐형백견폐성’ 두 고사 성어와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작자의 저서를 ‘광견폐서’라 칭한 저자의 가볍지 않은 재치가 돋보인다.”
지금까지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에 담겨있는 작품들에 관한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 진적첩에 담겨있는 작품들에 관한 부분적인 연구들만이 이루어졌을 뿐 첩 전체의 내용과 내력來歷, 그리고 이 진적첩의 가치 등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학문적 성취를 이룬 저자가 그 철학과 이론을 바탕으로 진적첩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하나하나 꼼꼼히 비평·검토하고 진적첩 자체의 연구에 그 중심을 두며 설명을 전개한다. 진적첩의 구성과 첩에 담긴 모든 발문들의 내용과 내력을 살펴 이 첩의 연원淵源과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역사를 밝히고, 첩에 담긴 퇴계의 친필수고본親筆手稿本인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 서序」의 전반적인 내용확인을 통하여 퇴계 사상의 단면을 알아보고, 또한 이 첩에 담긴 겸재의 네 폭 산수화와 발문, 사천 이병연의 제시를 살펴, 각각의 작품에 담겨있는 의미와 퇴계의 수고원고와 겸재의 산수 그리고 겸재의 산수와 여러 발문들과의 관계를 밝히며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증명하여 나간다. 조선성리학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했던 성리학의 거봉 퇴계 이황을 말하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도입되어 정몽주, 길재 등을 시작으로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등을 거쳐 이황에게 귀결되어지고 이황에 의하여 조선성리학으로서의 학문적인 체계가 성립된다. 이론의 여지없이 퇴계는 조선성리학의 거봉으로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물론이고 현재 그의 독특한 사상은 유럽·미주에서 서구이론의 불완전함을 보완해줄 사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퇴계의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발문 그 가치를 논하다 퇴계의 사상에 관하여 기존의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그 성과 또한 뛰어나다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존의 방대한 자료들을 살펴 그 중 가치 있는 연구들을 선별하여 기존의 연구 성과를 모아 정리하고, 그만의 예리한 안목과 섬세함으로 기존 연구들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진적첩 내의 퇴계 친필수고본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두 번에 걸친 발문 그 소중한 가치를 증명한다. 화성 겸재의 네 폭 산수화, 차자 만수의 부기발문, 지기 사천의 제시를 말하다 퇴계의 친필수고본 「회암서절요 서」와 우암의 두 번에 걸친 발문이 겸재의 집 ‘인곡’에 전해지는 내력을 적은 만수의 발문부기의 내용을 살펴보고, 겸재 자신이 만년 화성의 필력으로 이 묵보가 전해지는 과정을 지기였던 사천의 제시와 함께 첨부한 네 폭 산수화의 구성과 의미를 정교하고 꼼꼼하게 밝힌다. 또한 경지에 오른 저자의 명확하고 정교한 논리와 고증을 바탕으로 최근 논란이 된 진적첩에 관한 두 잡음을 명쾌하게 불식시킨다. 고산과 구룡산인의 발문, 모운의 발문별지를 살펴 후대의 평가를 말하다 겸재의 집 ‘인곡’에서 나와 떠돌던 진적첩을 소장하게 된 고산 임헌회가 그 벅찬 소감을 적어놓은 발문과 이후 진적첩을 완상한 구룡산인 김용진이 그 마음에 느낀 바를 적은 발문, 그리고 손자를 얻은것을 기념하여 지기였던 동교 민태식으로부터 이 묵보를 전하여 받은 모운 이강호가 마음의 느낌과 후세·후손에게 당부하는 글을 적어놓은 발문별지의 내용을 세세히 살펴 퇴계와 우암의 사상과 진적첩에 관한 평가를 논한다. 차례 I. 서序 II.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1. 진적첩眞蹟帖의 구성 2. 진적첩眞蹟帖의 내력 III.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 서序」를 통해 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사상 1.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 서序」 2.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발문 2편 IV.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기록화와 발문 1. 기록화 (1) 「계상정거溪上靜居」 (2) 「무봉산중舞鳳山中」 (3) 「풍계유택楓溪遺宅」 (4) 「인곡정사仁谷精舍」 2. 발문 (1) 정만수鄭萬遂(1701~1784) 발문 (2) 사천·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 제시 (3)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 발문 (4) 구룡산인九龍山人 김용진金容鎭(1878~1968) 발문 (5) 모운茅雲 이강호李康灝(1899~1980) 발문(별지) V. 결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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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비가 옛 사람을 본받아 외로이 학문을 닦아서 이미 널리 배움으로 말미암아 깊은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묻혀버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응당 한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무식한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참으로 알아주는 것이 기대될 수 없는 경우라면 도리어 영원히 묻혀서 그 깊은 아름다움을 잘 보전하여, 무식한 자들의 입에 의해 수다스럽게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위당 정인보, 『완당전집』 서문 중)
출판사 서평 동서고금의 예술철학과 이론을 섭렵하고 그 경계가 없는 박학함을 기반으로 저자만의 예술철학과 이론을 펼치며, 또 그 세심한 감식안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분석하고 평가하며 펼쳐지는 저자의 예술철학·이론 세계가 마치 웅장한 교향곡이나 대서사시를 듣고 읽는 듯, 또 마치 거대한 산이 읽는 이의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한 벅찬 감동이 밀려와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세계 미술사계에서 차세대 미술사계를 이끌어 나갈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는 저자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한국 미술학계에서 고미술, 특히 서화예술 작품의 ‘진위眞僞’ 논쟁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르는 화두이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 작품은 그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이 책은 한국 미술계에 만연한 위작 유통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평생 동안 연구해온 추사 김정희의 서화 작품을 세심한 감식안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예술철학과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평가하고 그 진위 여부를 가려낸 치열한 감평서이다. 추사 관련 작품으로 알려져 온 우리 서화 약 200여 편의 기존 학계의 연구성과와 서체, 화법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분석?평가하면서 필자는, 예술 작품을 보는 기본적인 감식안도 갖추지 않은 채 자본과 문화 권력에 맞물려 제대로 된 비평 문화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상계, 미술학계를 비판한다. 문인화의 고봉, 추사 김정희를 말하다 뛰어난 사상가이자 우리나라 서화예술계에서 문인화의 최고 경지에 오른 예술가, 추사 김정희. 그는 경학, 역사학, 금석학을 비롯한 각종 학문 분야를 두루 섭렵하고 고대 중국의 육조체, 왕희지, 구양순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운필법을 습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 ‘추사체’를 창조해낸 장본인이다. 명실 공히 문인화의 최고봉에 오른 인물로 추사 김정희는 서화예술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앙해마지 않는 독특한 운필법과 예술혼을 지닌 인물이다. 치열한 감식안으로 추사 예술의 진면목을 가리다 하지만 추사의 이러한 독창적이고 변화무쌍한 예술을 제대로 감식해내고 평가할 만한 학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 때문에 추사의 작품은 물론이고 유수의 전통미술이 아직까지 모호한 평가 기준에 따른 엉터리 감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미술품감정학’을 배우고 왔다는 예술철학·이론의 기본기도 갖추지 못한 인사가 논리적 체계와 근거도 없는 ‘광견폐성狂犬吠聲’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평생을 추사를 비롯한 서화예술 연구에 매진해온 필자가 집필을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는 추사 작품을 비롯한 모든 서화작품의 진위는 무엇보다 서도書道의 수준이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예술철학·이론을 갖추고 서도가 경지에 오른 감식안을 바탕으로 그 필획과 작자, 배자 등을 통한 감상, 감정만이 유일한 기준이라고 강조하면서, 평생을 갈고 닦은 저자만의 치열하고 엄격한 감식안으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추사 예술의 진면목을 가려낸다. 위작이 만연하는 한국 미술계를 꼬집다 우리나라 서화예술계에서 인정받는 작품의 상당수가 아직까지 위작 혐의를 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정작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많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크게 제기된 바 있듯이 우리 미술학계에서 발표되는 전시나 출간 도서의 상당수가 위작을 무분별하게 포함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제2, 제3의 엉터리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고미술품의 진위 문제는 비단 미술학계의 진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 보존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개별 작품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 계승의 차원에서도 제대로 된 작품 평가를 통해 위작을 가려내는 풍토를 조성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학자적 양심을 바탕을 한 치열한 비평 문화를 기대하다 필자는 현 미술계가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를 앓고 있는 이유로 작품을 바라보는 감식안이 부족한 학자들과 자본의 논리에 얽매인 소장가 및 미술계의 논리를 비판한다. 즉, 작품의 진위 여부를 올바로 가릴 수 있는 예술철학·이론과 서도의 수준을 바탕으로 한 감식안을 갖춘 학자가 많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문제라면, 학자적 양심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자본과 주류 미술계의 권력에 편승해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문제이다. 이에 필자는 학식과 덕망, 무엇보다도 학자적 양심과 철저한 도덕성을 갖춘 학자들을 선별하여 치열한 토론과 학습을 통해 전통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우리 예술문화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요 내용 1장 고서화 감상의 바른 길 미세한 모필로 예술혼을 새겨 넣은 서화는 신중하게 작가의 예술정신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그 작품을 명확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조선조 유명 문인인 강희맹과 김정희를 비롯하여 유협, 포안도, 조맹부, 노자, 순자 등 동양의 유명 사상가 문인들이 글씨와 그림을 창작할 때 취했던 자세와 철학을 비교하고 이를 통해 서화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와 방법의 문제를 논한다. 2장 추사 서도의 이해 추사 서화예술의 운필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 장에서는 추사의 서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기별 기준작을 선별하여 서체별, 연대별 총 26점을 감평한다. 또한 조선시대 서도의 흐름을 설명하고 추사 선생 사후 150여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작품에 대한 올바른 감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추사의 예술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감상을 하려면 추사 특유의 운필법을 하루 속히 배우고 연구, 연마하여 추사와 근접한 안목과 서도 수준을 갖출 것을 역설한다. 3장 추사 진작 섬세한 감평을 거쳐 추사의 진정한 작품이라 평가되는 총 80여 점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엮었다. 이를 통해 추사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발전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독특한 추사체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엿볼 수 있다. 대자大字 해서 현판으로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많이 알려져있는 명작이며, 추사의 서체를 연구하는데 있어 기본이 되는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제2장 추사 서도의 이해’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추사 운필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판板’자의 ‘목木’ 부분‘一’획과 봉은사 「대웅전」(도 135-2) 현판의 ‘대大’자의 ‘一’획을 보면,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8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운필법으로 행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추사선생 71세시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쓰셨다고 전해지는 추사께서 이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작품이다.(중략) 작품을 하신 후 3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필자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추사의 다른 만년 작품보다 더욱 그 경지가 심오하고 높아 보여 숙연해진다. 이 작품을 한참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다. 4장 추사 위작 세간에서 추사 진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위모한 작품 총 60 여점을 모아, 기존연구의 문제점을 밝히고 글씨 행획과 작자, 배자를 비교하면서, 이들 작품이 추사의 진작이 될 수 없는 위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서문, 권돈인의 산수, 그리고 하단에 김정희의 산수로 구성되어있다고 전해지는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품이다. 먼저 「합벽산수축」을 보자. 본 작품을 보아야겠으나 축軸(족자) 증간 부분에 위치한 산수 두 폭 중 상단의 산수도를 살펴보면 그림의 좌측 하단에 ‘번염樊髥’이라는 관서와 관서의 필획으로 보아 확실한 이재 권돈인의 작품으로 보인다. 축軸(족자) 제일 하단의 김정희 작품이라 전해지는 산수를 보면 작품의 상단에 ‘추산죽수소경작원인필의秋山竹樹小景作元人筆意(가을 산 대나무가 있는 작은 풍경이다. 원인의 필의로 그렸다)’라 쓰여있는 작가의 화제가 위치하고 있다. 화제 끝 부분에 ‘석전石癲’이라고 관서되어있는데 화제의 글과 관서의 필획과 행획, 작자로 보아 우봉 조희룡의 작품이 확실하다. 따라서 ‘석전石癲’이라는 아호역시 ‘석감石?(석감石敢)’과 같은 우봉 조희룡의 아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추사와 이재 권돈인의 합작품이 아닌 이재 권돈인과 우봉 조희룡의 합작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완당근제阮堂謹題’나 ‘완수阮?’로 관서된 발문은 어찌된 것이며 「합벽산수축 서문」의 내용과 ‘완당한서阮堂汗書’의 관서는 어찌된 일인가? 또한 축 하단의 우봉 조희룡 산수의 ‘석전’ 관서와 그 밑에 찍혀있는 ‘완당阮堂’ 도인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5장 타인작 추사 제자들의 작품임에도 추사의 작품으로 오인되어 유통되는 작품 총 20 여점을 감평한다. 위작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으나 제자 작품이 더욱 선별해내기 까다롭고, 그로 인하여 추사 작품 진위의 혼돈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위작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모암문고茅岩文庫 소장 작품인 추사秋史와 이재彛齋의 합작품인 「완염합벽」(도 22)'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책자 작품을 보면, 먼저 이재彛齋가 책의 앞부분을 '우염노인又髥老人', ’염우제髥又題‘, 그리고 ’우염거사又髥居士‘라는 관서를 사용하시어 작품하셨고, 추사秋史가 책 후반을 작품 하신 후, '노완老阮'과 ’노완시안老阮試眼‘이라는 관서를 사용하셨다. ‘염髥’이란 수염이라는 뜻으로 ’염우제髥又題‘란 ’염이 다시 제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 「완염합벽」의 존재로 ’염髥‘의 관서가 이재 권돈인의 아호임이 확실해졌다. '우염又髥'이란 직역을 한다면 "또 다시 수염이 자랐다"라는 뜻으로, 추사의 '노완老阮'과 같은 의미로 '나아가 더 드신 후, 늙은, 노인' 등의 뜻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항간에 ’염髥‘의 관서는 추사의 아호이고, ‘우염又髥’의 관서는 권돈인의 아호라 주장하는 분이 계신 것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난엽, 난화 모두 추사 난초를 모방한 작품이나 구도가 추사와 다르다. 더욱 추사 작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매우 고졸한 필치로 쓰여진 화제와 ‘번상제樊上題’라 관서된 점이다. ‘번상제란’ ‘번염樊髥(번옹樊翁)이 번상樊上에 머물며 쓰다’라는 의미이다.(‘번상’의 지명에 관하여 「완염합벽」(도 22)의 설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행한 도록에 의하면 “이재 권돈인은 1846년부터 1849년 그의 나이 64세부터 67세까지의 기간동안 도봉산 밑 번리樊里에 거하였다.”하였다. ‘번상’의 위치에 관하여 이견이 있지만 이 전시도록의 내용을 따른다하더라도, 이 난화의 화제와 관서가 무신년戊申年(1848년)에 쓰여졌다고 되어있으니 추사나이 63세, 이재 66세 시로 그 시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번상제樊上題’라 뚜렷하게 관서된 이재 권돈인 작품을 어느 누군가 한쪽 귀퉁이에 추사답지 않은 서체로 ‘번상촌장균공樊上村庄勻共’이라 쓰고 ‘정희正喜’라고 도인까지 찍어 추사작으로 둔갑시켰다. 다엽다화多葉多花한 구도로 보아도 추사가 아니다. 추사가 진정 이재에게 작품하여 주었다면 그 잘 쓰는 글씨와 시로써 당당하게 작품하여 주었을 것이지 한구석에 그것도 끝 변의 난화 획 위에 ‘번상촌장균공樊上村庄勻共’이라 쓰고 ‘정희正喜’라 도인해 주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6장 연구작 역시 추사작품으로 유통되고 있으나 아직 그 진위 여부와 작자가 불투명하여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작품 6점을 모았다. ‘신해태정辛亥泰正 길상여의관吉祥如意館’- 신해년이면 추사 66세 때인데 - 표지 글씨“(도 203-1)는 추사 제자 중 한 분인 우봉 조희룡의 글씨이다. 추사 문하에서 수학할 때 추사를 도와 책력을 써드린 듯하니, 추사 고택에 전해온다고 해서 아무런 비평과 고증 없이 추사의 진품으로 본다면 이는 고증학, 실증학, 금석학에 근거한 감상, 감정이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완당과 완당 바람」 전시도록 도 70, 71 참조) 옹체翁體(옹방강. 호 담계覃溪. 금석학金石學, 비판碑版, 법첩학法帖學에 통달한 중국 청나라의 학자, 서예가. 주요 저서로 『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 등이 있다)의 획이 약간씩 보이나 ‘일一’, ‘이二’자의 획과 표시(○)한 파임획이 추사의 필획이 아니다. 자체, 작자, 행획으로 보아 추사 40대말이나 50대 초반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데 상기上記한 획이 아니니, 필자의 생각에는 추사의 아우인 산천 김명희 작품인 듯하나 더욱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