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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강진살이
1장-다산이여, 다산이여! 1. 다산으로 가는 길 정치인은 선거로 말한다/곰팡이 복귀론/다산의 강진과 나의 강진 2. 다산 선생, 내가 뭘 해야 하겠소- 만인이 지은 집/삼시 세끼/ 2장-그 길밖에 길이 없어 1. 아름다운 시절 청년의 길/애국심만으로 2. 폭풍 속으로 혁명가의 사진/어머니의 이름으로/걷지 않으면 생각이 멈춘다 3. 세계의 눈 넓은 세상으로/저 푸른 초원 위에/복지 천국의 나라 3장-나의 목민심서 1. 수처작주(隨處作主) 현실정치로 나서다/어느 순간이든 최선을 2. 세상을 바꿔야지 나라를 책임질 큰 꿈/대한민국 손학규/공무원이 신나야 4장-준비하면 열린다 1. 열정시대 만족하십니까-/현장으로 가라/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2. 순수한 원칙 원칙은 지킨다/당신 빨갱이요-/나의 재산 목록 3. 길 위에서 묻다 이대로 좋습니까-/하늘의 뜻 5장-새판 짜기 1. 통합의 정치/더민주당은 그 민주당이 아니다/스스로 구하라/독일에서 보낸 한 철/제7공화국 2. 다시 저녁이 있는 삶 진보경제/저녁이 있는 삶을 만드는 나라들/강진의 여름은 뜨거웠다 에필로그 국민에게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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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정치가 백성들의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오로지 핍박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백성만 생각하는 삶. 다산은 그게 진정한 정치인이라 말했다. 매일 다산을 생각하고 다산의 글을 읽으며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나의 강진 생활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세상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 p.15 강진에서 한 해를 넘기고 나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 나라를 위해 뭔가 해달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 때로는 복잡한 내 마음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말없이 앉아 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보면 막걸리 두 병을 놓고 간 분도 있었고, 옥수수 한 자루를 툇마루 위에 놓고 간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씨암탉 잡아 대접하겠다며 토담집을 찾아왔고, 활어 운반차를 절간 마당까지 끌고 온 분도 있었다. 강진 읍내에 나가면 찐 감자를 건네기도 하고,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하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동네 이웃에게 푸념 늘어놓듯 세상 살기 어렵다고 말하고, 또 어떤 분들은 내가 세상으로 되돌아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압박 비슷한 충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 p.26 내가 민심대장정을 나섰을 때가 10년 전 여름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 속에서 분노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농부, 어부, 광부, 노동자, 자영업자 모두가 고달파했다. 빚에 허덕이는 농부들, 텅 빈 바다에서 끌어올린 빈 그물을 보며 한숨짓는 어부들, 두려움을 안은 채 탄광으로 들어가는 광부들, 대기업의 횡포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하청업체 노동자들, 하루 일거리를 찾지 못해 빈손으로 귀가하던 일용직 근로자들, 월세와 운영비 등 나가는 돈은 많은데 매상은 점점 줄어든다며 한숨짓던 자영업자들…. 그들 모두 내게 많은 걸 들려주었다. 대부분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 p.36 민심대장정 내내 서민들은 분노와 좌절을 내 앞에서 눈물로 쏟아냈다. 민심대장정 기간 중에 가장 난감했던 것이 내가 만난 사람들이 대화하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자기들의 어려운 처지를 말하다가 설움이 북받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린 소원이 없심더. 맨날 일만 했으면 좋겠심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울고 싶심더!” --- p.177 내가 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저녁 시간을 즐기는 여가에 대한 게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구도를 반대하는 가치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분법. 내가 잘살려면 누군가는 못 살아야 한다는 이분법. 내가 옳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이분법. 이 모든 이분법적 사고에 반대하는 가치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 p.233~234 서울 다녀오는 길에 강진 읍내 주유소에 들렀다. 평소 안면이 있는 주유소 여사장이 기름을 넣으며 말했다. “대표님, 세상이 시끌시끌헌디 왜 여기만 기시오. 언능 서울 올라가시게요.” 여사장은 주유할 때마다 그 비슷한 말을 여러 번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이 가슴 한 켠을 찌르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부끄러운 듯 살가운 웃음 뒤에 그 사람이 한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고단한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영화 속에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있는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내 목소리도 분명하게 들렸다. ‘세상으로 가라. 가서, 저 아름다운 사람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던져라.’ --- p.24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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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들이 수행하던 토굴에서 도탄에 빠진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다
“다산 선생, 내가 뭘 해야 하겠소?” 정계에서 물러난 손학규는 강진 백련사 뒤쪽 만덕산 8부 능선쯤에 자리한 토굴(토담집)에 머물며 다산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고자 했다. 강진에 귀양살이를 하러 왔을 당시 어느 노파의 주막집(사의재)에 하숙한 다산처럼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손학규 전 도지사가 이렇게 산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토담집으로 하나둘 찾아왔다. 대부분은 10년 전 민심대장정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지만, 도지사 시절의 부하직원이라든가 민주화운동 시절의 후배들, 유력한 지식인이나 정치가도 있었다.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 의원은 이고초려(二顧草廬)를 하기도 했다. 다산의 삶을 모방하면서 다산을 공부하겠다는 손학규에게 그들은 애원하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당신이 다산이 되란 말이오!” 허허 웃기만 하며 막걸리 사발을 채워주는 손학규에게 그들은 외쳤다. “이 나라가 불타고 있는 게, 이 나라의 국민들이 도탄에 빠져 고통 받는 게 당신 눈에는 안 들어 오냔 말이오?!” 물론 손학규의 눈에도 보였고, 손학규의 귀에도 들렸다. 국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잇속과 정치적 미래를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기존 정치인들의 모습이, 경제적·사회적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국민들의 아우성이 말이다. 하지만 이미 정치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던 그였다. 그래서 애써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10년 전 민심대장정 당시 들었던 사람들의 호소와 애절한 울음소리는 그의 귀에 더더욱 낭랑하게 울렸다. “우리가 살기 어렵다고 한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마세요.” 세상은, 대한민국을 손학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이제 국민에게 갑니다 지금껏 정치인 손학규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들은 잔인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로 있으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자 우파들은 그를 ‘빨갱이’로 불렀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철새’라 경멸했다. 그러나 우파들이 ‘빨갱이’라 불렀던 손학규는 2002년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용사들 영결식에 유일하게 참석한 유력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탈당은 남북 화해 협력과 보편적 복지라는 그의 굳은 신념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였다. 경기도지사로 해외 유수의 글로벌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였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가장 같이 일하고 싶은 장관’으로 꼽는 손학규. 『강진일기-나의 목민심서』에서 손학규는 자신의 삶과 정치적 여정, 그리고 지난 선택들에 대해 치장 없이 담담히 소회한다. 그리고 다산의 『목민심서』를 거듭 읽고 감탄하며 자신의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시절을 다산의 눈으로 되돌아보고 반성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제 다시 내가 목민관이 된다면 국민들을 정말로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목민심서』를 쓰고 싶어졌다.” 강진 토담집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사색 끝에 내놓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강진일기-나의 목민심서』다. 손학규는 말한다. “이제 국민에게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