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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론강 산 하나가 도화, 바람나다 이니스프리는 멀다 방부제 쾌락의 뒷면 호상 수국 내 안의 칼 우산동 블루스 시는 빈집 얼큰이 칼국수 전봇대 아래 웅어 불혹 세상이 낯설다 II 비비추 수목한계선 시인은 그런 거야 빗소리 삼합리에서 시의 얼굴 가을 간다 외로운 날은 물구나무를 선다 돌 깨는 남자 숫스러움을 놓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석경묵집에 는개 내릴 때 장미 가뭄 고인돌 송화 子夜歌 III 그날 봄눈 물방울이 닿는다 돼지머리 천장화 입관 봄비 가을비 비스듬히 봉천네 개복숭아 술빛을 보다가 공터 한 달에 한 번 반곡역 독서 니체 최후의 고백 화류항사 숨어 살기 좋은 심검당을 놓치고 IV 궂은비 내리는 날 흥야리 야담 야외수업 대학시절 우리는 좀 참아야 한다 돈 가수 화장 매지호에서 천렵 빗방울인 척 박물관 뜰 앞에서 시가 뭐길래 절정 달팽이의 전언 기차가 자미원역을 지나갈 때 나는 누구인가 [해설] 수벌거리는 시 | 박세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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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벌거리는 시
경험의 층과 결과 속에 대한 남김없는 누설- 환각에 기댄 듯한, 수줍은 향락에 기댄 듯한 ‘수벌거림’을 노래한 박재연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병 없이 앓는다. 이 시집의 주인도 병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태(胎)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출발점이 거기 있다면 나는 무심코 동의하겠다. 시인의 얼굴에서 시작되는 저 ‘세계의 밤’을 드로잉한 듯한 무정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수벌수벌’은 사전에 없는 비표준적인 어휘다. 세상은 이런 언어군을 방언이라 부른다. 그러나 수벌수벌은 자신이 방언인 줄 모르는 방언이다. 이미 방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시가 자신이 시인지조차 모르면서 존재하듯이 말이다. 나는 박재연의 시적 말하기 방식이 이 ‘수벌거림’의 자기 방언을 껴입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부스럭거림을 딛고 있는 듯, 환각에 기댄 듯, 수줍은 향락에 기댄 듯한 수벌거림을 통해 시인이 불러온 시적 주체는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 아니었던가. 부러워라. 자신의 몸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견딜 수 없는 시적 본능은 은근한 질투를 자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