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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에서 X로: 1990년대 한국 미술과의 접속 여경환
‘역사적 필연’으로서 90년대 한국 미술 신정훈 90년대―두 개의 풍경과 작은 성찰 황현산 한국 현대미술사의 신기원, 90년대 김홍희 청년작가―제도―공간 문혜진 그로테스크/스펙터클: 1990년대 한국의 우정아 도시 재앙과 현대적 미술 ‘너의 목소리 (크고 분명하게) 들려’: 김필호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전시 작품 연표 90년대 카탈로그 60선 90년대 전시 전경 90년대 대담 원고 참여작가 프로필 출품작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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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한 시대로서 조망하는 시각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단지 동시대의 연장선에 있다는 이유뿐만은 아니다. 그것은 90년대 미술에 대한 선행 연구가 아직 미진하고, 불과 20~3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도록·사진·영상 등의 아카이브 양과 그 보존 상태가 열악하며, 관련된 객관적인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현실에 그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17~18쪽)
한국 미술은 그 역사가 압력이 되어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는 경험을 충분히 해본 적이 없는 듯 보인다. 즉 이전 모델에 대한 복잡한 반응으로서,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은 보유하는 방식으로 이전과 차이를 만들어내며 전개되는 역사, 앞선 모델들이 새로운 미술 생산의 구속이자 가능성으로 기능하는, 그런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근거나 기반으로 기능하는 역사. 이런 상황은 분명 소망스러운 것이었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과정의 부재가 우리 미술의 오랜 조건이었다. (37쪽) 어떤 사람들은 성급하게 활자의 죽음을 말하였지만, 활자는 그 ‘活’의 본분을 이제야 완수할 수 있다는 듯이 어디서나 질주하고 어디에나 파고든다. 우리 시대보다 더 많은 글자를 소비한 시대가 있었던가. (…) 1990년대는 유래 없는 ‘문자시대’의 시작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으면 우선 컴퓨터의 부팅부터 시작하는 습관이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54쪽) 1990년대 말 대안공간을 배경으로 활동한 신세대는 엄밀히 말하면 ‘포스트신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선배 신세대 작가들이 ‘뮤지엄’그룹을 비롯한 소그룹 운동을 통하여 일종의 전 단계 대안공간 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지하 카페, 라이브 클럽 등 일상적 장소를 실천적 장소로 공간화함으로써 본격 대안공간 활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72쪽) 생물학적 나이 혹은 미술계 진입 시기라는 모호한 기준뿐 실상 실체 없는 대상인 젊은 작가에 대한 환대는 어디서 오는가? 일차적인 이유는 눈에 띄어야 하는 저널리즘의 속성상 매체는 언제나 기성과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술계의 구조와 관련해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젊은 작가의 등장은 기존 제도의 한계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인 이유든 가치관의 문제이든 기성 제도가 스스로의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할 때 그들은 대안을 찾게 된다. (103쪽) 아름답지만 죽음과 폭력을 내포한 이불의 여체는 오히려 실패로 끝난 유토피아, 즉 발전에 대한 열망과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적 욕망 모두를 좌절시키는 불가능성의 그로테스크한 상징이다. (129쪽) 90년대의 경험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현 시대 한국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정부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의 가사를 써서 길거리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체포, 감금, 검열의 위협에 떨 필요는 없다. 하루아침에 록 밴드랍시고 만들어서 클럽 무대에서 밤새 소리를 질러댄다고 해서 말릴 이유도 없다. ‘네 멋대로 해라’는 포스트모던 슬로건은 금방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지만, 90년대가 음악적 표현의 가능성과 지평을 전례 없이 확장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넓게 펼쳐진 가능성이 오늘날 K-Pop 물결의 표면 아래 저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본문 중에서 |
‘응답하라 19XX’를 넘어서서
‘동시대성’의 기원에 대한 다면적인 탐구 『X: 1990년대 한국미술』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동명의 전시를 위해 현실문화와 공동으로 발간한 책(도록)이다. 제목에서의 ‘X’는 90년대의 X세대를 지칭하면서도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어떤 함숫값을 가리킨다. 주지하듯이, 1990년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던 시기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뒤에 그것은 ‘좋았던 시절(bell epoque)’로 기억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중문화 영역에서 90년대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향수가 일정 정도 작용하는 것일 거다. 하지만 90년대는 ‘레트로(retro)’로 보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가까워 지나치게 단순한 진단임을 드러내고 만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IMF 등 얼른 떠오르는 사건들만 봐도 마냥 그렇게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의 피폐함을 잊기 위해 90년대를 ‘벨 에포크’로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지금의 문제에 대한 보다 원천적이고 구조적인 이해를 위해 그 시기를 반추하고 호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찌 되었건 ‘90년대 현상’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든 현실에 대한 자각이든 현재와의 관련성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X’는 현재로부터 묻는 90년대에 대한 물음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조건을 만든 90년대는 무엇인가? 최근 미술계에서는 ‘동시대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미술의 동시대성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90년대가 새로운 분기점을 이룬 시기라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90년대는 시기적으로 언제를 지칭하는가? 『X: 1990년대 한국미술』의 전시와 책을 기획한 큐레이터 여경환은 90년대를 잠정적으로 1987년부터 1996년까지의 10년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한다. 1987년은 “87민주화항쟁으로 터져 나온 민주화·자유화의 물결이 한국 사회 전반을 뒤덮었던 해이자, 미술에 있어서 (…) 신세대 소그룹 뮤지엄의 활동이 시작된 해”로서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이 기성세대와 명확한 단절을 선언한 시대라는 것이다. 반면, 1997년은 “IMF 구제금융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전면적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전환과 인터넷 서비스의 상용화, 그리고 미술에 있어서도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정착, 대안공간들의 설립, 해외 유학파 작가들의 본격적인 활동 등이 본격화되는 1997년 이후는 90년대라기보다는 2000년 이후의 시기로 묶어낼 수 있다”고 보면서 90년대 한국 사회와 미술계를 관통했던 흐름을 개괄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신정훈은 90년대의 미술을 한국 미술의 선행 흐름들, 이를테면, 80년대 미술은 물론 60, 70년대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등장했으며, 그에 따른 특징은 무엇일 수 있는지 질문하면서, 90년대 한국 미술의 등장이 마침내 ‘역사적 필연’을 획득한 시기임을 시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90년대 미술은 “전 지구적 수준의 어떤 기성의 모델과 전략이든, 우리의 물질적 조건과 그것을 사는 새로운 ‘감수성’을 갖춘 세대의 미술가들에게 ‘필연적’인 연관을 갖춘 것으로서, 따라서 그 활용에 수반되는 정당성의 근심으로부터 다소 자유롭게, 고려해봄직한 것이 되”었으며, 이것이 한국 미술의 동시대성의 한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 미술평론가인 김홍희에 따르면, 90년대는 한국 “현대미술의 신기원을 마련한 획기적인 시대”로서 한국의 포스트모던 아트가 발화·정립된 시대로 평가한다. 이를 보다 정치하게 논의하기 위해 그는 1990년대를 다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각기 신세대와 포스트신세대로 대별되는 작가들이 각각 소그룹 운동과 대안공간을 배경으로 출현하였다고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글로벌한 양식이 시대 특정적이고 지역 특정적인 한국의 현대미술, 즉 “편협한 지역주의를 탈피한 지역성과 지역적 전통을 존중하는 세계성의 만남을 의미”하는 글로컬리즘을 성취하였다고 본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 연구자인 문혜진은 「청년―작가―제도」라는 글에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현대미술에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은 청년 미술 그룹을 중심으로, 이들이 기존 제도와 맞물리며 생성한 탈주선을 살펴보고 있다. 당시에 활동했던 작가들과의 심도있는 인터뷰를 통해 90년대 신세대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도출해내 미학적 지평을 만들어가는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우정아는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이라는 거대 서사에서 간과되거나 방기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을 지적하면서 90년대의 트라우마적 사건 사고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이것이 당대의 작가들, 특히 이불과 최정화의 작업에서 시간이 흐른 뒤에 마치 트라우마의 증후처럼 나타나고 있음을 포착하고 있다. 그는 90년대 세기말 “사고 공화국”이라고 명명할 만큼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재앙적 사건들이 가장 동시대적인 작가들로 평가받는 이불과 최정화에게서 각각 ‘그로테스크’와 ‘스펙터클’이라는 양상들을 톺으면서 이것들을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컴퓨터,’ ‘세기말 드립,’ ‘즐거운 사라’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90년대적인 풍경을 경쾌하게 스케치하면서 거대한 변화의 와중에 겪어야만 했던 불안감과 오해, 혹은 실패의 전조를 읽어내고 있다. 조급함과 근시안적 엄숙함 때문에 또 다른 진보의 가능성을 놓쳐버려 엉뚱한 피해가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조교수인 김필호는 무엇보다도 문화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법적 기틀과 정치적 선례를 남긴 것이 90년대 대중음악의 유산임을 가장 우선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90년대가 문화적 상상력과 창의성이 집중적으로 발현된 시기였음을 밝히면서, 비록 90년대 대중음악이 세계화와 개방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만큼 국내 영토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지연 현상을 겪긴 했지만, 오늘날 지구촌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K-Pop 물결의 표면 아래의 저류를 만들어낸 것 또한 바로 90년대 대중음악이 펼쳐보였던 가능성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