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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 독립문을 세우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근처에 독립문이 자리잡고 있다. 이 문은 독립협회가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 우리나라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부터 독립된 자주국가라는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만든 문이다. 독립문의 크기는 높이 약 14m, 폭이 11.5m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독립문 가운데에는 무지개 모양의 문(홍예문)이 있고, 안쪽에는 독립문 꼭대기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독립문 맨 위는 돌난간으로 삥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 가운데 이맛돌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배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배꽃 위로는 태극기와 함께 ‘독립문(獨立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독립문 앞쪽과 뒤쪽에 각각 한글과 한자로 쓰여 있다.
독립협회,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1876년 개항 이후 개화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사회를 이루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1884년에는 갑신정변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세워 보려고 했는데, 청나라의 군대가 출동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10년 뒤 1894년에도 갑오개혁∙을미개혁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다. 여러 번의 개혁 실패를 통해 원인을 찾게 되었다. 가장 큰 요인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독립협회’였다.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활동 목표 중 하나였다. 197년 8월부터 여러 차례 대중적인 토론회와 강연회를 열었다. 이 강연이 점차 커져 모임이름을 ‘만민공동회’라 불렀다.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서재필이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급받아 독립협회가 만들어지기 전인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어야 했기에 순 한글로 쓰여졌다.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만든 이유는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대변자가 되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알리고, 부정부패 탐관오리 등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독립신문은 새로운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한글판 뿐만 아니라 영문판도 발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