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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에서 오늘 화양연화 경계에서 물고기는 제 비늘에 나이를 품는다 파기(破器) 아주 큰 식탁 비로자나불 수인을 닮은 구름 하늘 밖에서 돌아온 마음 시를 위한 탁발 가을, 치악산 법흥사 가는 길 아침, 수산시장에서 섬강 날개 없는 것은 겨울 부론강에서 새벽에 치악산 귀가(歸嫁) 부석사(浮石寺) 사과꽃 봄밤에 II 샤프란볼루에서 온 편지 스치듯 문득 샤프란볼루에서 온 편지 히포드롬 광장에서 멈추어 서서 샤프란볼루에서 온 편지 소금호수에서 연등제 꽃 진 자리 날마다 봄꿈 꽃 핀 자리 탁사정에서 비 내리는 여름 숲 어라연에는 은빛 물뱀이 산다 비는 내리고 주식회사 인생개발 나는 밥이다 그런 날도 있다 빈 의자 신문지 한 장 나도 한때는 비틀즈 팬이었다 내 마음도 실사로 나염 되나요 불립문자 어쩌라고 거풍(擧風) III 은행나무 신호등 바람이 분다 나무가 옷 벗는 소리 계촌국민학교 수동분교에서 바닥이 더 환하다 겨울 건너기 망명지에서 안면도(安眠島) 다시 버스를 기다리며 도돌이표 문화예술 아카데미에서 바닥으로 사는 것 I HAVE A DREAM 겨울 풍물장에서 비빔밥 한 그릇 부석사를 서성이다 길이 있었다 비비비비(非非非非) 봄날은 갔다 분기점을 지나며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다 [해설] 햇귀의 노래 | 이홍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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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귀의 노래
200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시우 시인의 첫 시집, 빛의 다양한 변주를 통한 어두운 일상과의 고투(苦鬪) 장시우의 시인의 첫 시집 『섬강에서』는 자주 비가 내릴 듯한 시인의 이름(張時雨)과는 달리 빛의 변주로 가득 차 있다. 햇살, 햇볕, 햇귀, 볕뉘, 어스름 등으로 시시각각 변주되는 그 빛은 때로 그의 시를 열고 닫기도 하고, 내밀한 부분을 감추기도, 환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녀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빛의 변주는 ‘햇귀’ ‘볕뉘’ 등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낱말들을 통해 섬세하게 나타난다. “햇귀가 웅크린 바위를 덮고 까칠한 바람을 재운다 (…중략…) 아침이 열린다.”(「치악산」)거나, “볕뉘에 스르륵/깜빡 말뚝잠 들기도 하는 것인데” (「겨울 풍물장에서」)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햇귀’는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이고, ‘볕뉘’는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혹은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뜻하는 낱말로, 시인이 빛에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번 시집에서 주를 이루는 계절적 배경인 봄과 가을이 주로 빛과 함께 노래되고 있다는 점도 이를 잘 입증해준다.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은 전체적으로 일상과의 고투(苦鬪)를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햇귀의 노래’라고 명명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시인은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산문시들과 연시풍의 작품들 또한 선연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