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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1부 꿈을 키우며 기억 속에 없는 어머니 한국 최초의 컴퓨터 평범한 모범생 대학 시절 동베를린 사건 하이델베르크로 프랑크푸르트로 평양으로 뮌스터로 결혼 준과 린 2부 저항의 시대: 유신 체제와 맞서 추방령 유신의 막바지에 광주의 한 북으로 간 사람들 6월 항쟁 3부 전환의 시대: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1989년 가을 훔볼트 대학에서 생긴 일 겨울의 을밀대 역사는 끝났는가 남북의 학자들과 함께 고통이 있는 곳에 부끄러운 일 황장엽 김경필 파일 6·15 시대를 맞아 [경계도시] 경계인 아주 특별한 해, 2003년 4부 미완의 귀향: 37년 만의 귀향 성묫길 두 가지 승리 구치소 풍경 밖에서의 투쟁 경계에 피는 꽃 법정 이야기 외국에 비친 한국의 모습 잔인한 4월 항소심 꿈자리 뜨거운 대지와 검푸른 바다 5부 성찰의 시간: 다시 베를린으로 폭풍 이후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 전시회 어떤 순애보 [신생철학] 아물지 않은 상처 독일 며느리 질병과 싸우는 전선 애틀랜타의 기억 후쿠시마 단상 우정에 대하여 마이센의 장식 접시 6부 미래를 그리며: 다른 아시아와의 만남 ‘중국의 꿈’과 나의 꿈 유기 ‘3G’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세계 비움과 나눔 저항과 희망 검색어 화쟁의 경계인 맺으면서: 불타는 얼음 약력 및 저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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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지녔던 정의감, 신념 그리고 정열은, 반드시 있다고 믿었던 ‘고향’을 당장에라도 밟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낙관이 체념으로 변하지는 않았으나, 낙관이 그저 낙관을 위한 자기변명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낙관이 되기 위해서는 긴 과정과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한마디로 절제할 줄 아는 낙관주의이다. 나는 이를 은유적으로 ‘불타는 얼음’이라고 부른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메탄히드라트’는 얼음처럼 생겼지만 새파란 불길을 지피면서 고열을 낸다. 가스가 오랜 시간의 인고 끝에 고체가 되고, 이것이 다시 열을 뿜어내면서 다시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나의 ‘불타는 얼음’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또 희망, 낙관과 비관 그리고 또 낙관의 열린 과정이다.”
“마침내 11월 8일 저녁, 동서 베를린을 가르고 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렸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시내를 가득 채웠고, 모든 전철역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나는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전철역을 찾았다. 이 역은 동서 베를린의 전철이 연결되는 유일한 곳으로, 동베를린을 방문할 때 수속을 밟는 역이다. 동독의 국경 수비대 요원이 있었지만, 밀려들어가고 나오는 인파에 시달려 속수무책으로 구석에 서있었다. 나도 서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동베를린 구역으로 떠밀려 갔다.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내게도 인사를 건넸고 나도 화답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우리가 통일을 맞으면 이보다 더 가슴이 벅차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이 환희와 열광은 온전하게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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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송두율 교수가 한국을 떠났다
37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그는 1개월간 국정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9개월간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었으며, 석방된 뒤 바깥세상에서 2주일을 보내고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야 그는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다시 13년이 흘렀다. 올해로 일흔세 살이 된 그에게 2017년은, 스물세 살 때 고국을 떠나와 외국 땅에 머문 지 꼭 50년, 반세기가 되는 해이다. 주변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건들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말로 쓰는 마지막 책’이 될 12번 째 책이자 ‘자전적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남과 북을 잇는 경계인으로 살겠다는 선택은 그에게 평생 ‘그리움’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형벌을 지운 것은 아니었을까.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의 검푸른 바다와 자신의 고향인 광주의 뜨거운 대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 빛나는 청춘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그는 늘 그리웠으리라. 한국을 다녀간 후 그는 남도 북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남과 북의 사정은 여전히 빠르게 요동치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이 그곳, ‘경계’에 서있다. 2003년 어느 날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고 돌아간 그의 삶이 말해 주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아닐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대립적인 이분법의 틀에서 벗어나 공존의 제3 공간을 열라고, 경계인이자 자유인이 되라고. 그런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라고. 그리고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