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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손홍규
문학과지성사 2010.06.25.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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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푸른문학

책소개

저자 소개1

작가한마디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孫洪奎

손홍규는 특유의 상상력 속에 독특한 유머와 능수능란한 아이러니를 구사하면서 인간사의 진리와 인간다움의 진리를 부단히 탐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변혁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인다. 차세대 입담꾼으로 꼽히며 읽는 재미마저 톡톡한 그의 소설이 마냥 재밌고 유쾌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담긴 주제의식의 무거움이 녹록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
손홍규는 특유의 상상력 속에 독특한 유머와 능수능란한 아이러니를 구사하면서 인간사의 진리와 인간다움의 진리를 부단히 탐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변혁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인다. 차세대 입담꾼으로 꼽히며 읽는 재미마저 톡톡한 그의 소설이 마냥 재밌고 유쾌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담긴 주제의식의 무거움이 녹록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다. 안정된 문장에 탄탄한 구조, 그에 더해 해박한 고유어 지식과 완벽한 전라도 사투리 구사. 그만의 언어제련 솜씨로 아주 진지하게 희망과 변혁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문단에서 손홍규를 주목하는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2004년 대산창작기금을, 2005년에는 문예진흥기금을 받았고, 2008년 제5회 제비꽃 서민소설상을 수상했다. 2008년 11월부터 경향신문에 '손홍규의 로그인'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파르티잔 극장』 등이 있다. 노근리 평화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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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41g | 148*210*20mm
ISBN13
9788932020600

예스24 리뷰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그림자를 꿈꾸다
도서1팀 김도훈 (문학,인물 담당 / eyefamily@yes24.com)
2010.07.23.
알 함두릴라.
아랍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다. 일상의 작은 일 하나까지 알라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무슬림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슬람과 무슬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때 들었던 한 강의에서 시작됐다. 한국중동학회장을 역임하셨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선생님¹께 들었던 이슬람교 개론이라는 수업. 한 학기 동안 당신의 목표는 이슬람에 대한 모든 편견과 오해를 풀어내는 것이라 단언하시면서 한 학기 내내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강의였다.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니. 그렇게 이슬람과 인연을 맺고 졸업논문도 이슬람을 주제로 썼으니, 그 수업은 내 진정한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루 다섯 번씩 정한 시간에 알라에 기도를 올리며 살아가는 경건한 무슬림들의 생활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차이가 무엇인지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different와 wrong은 그냥 다른 거예요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급격한 세속화는 이슬람 사회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화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꾸란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도 그 중 한 가지다. 그런데 이슬람 정육점이라니, 돼지고기를 썰어서 판매하는 무슬림이라니,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그것도 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으로 참전하여 눌러 앉은 사람이란다. 전쟁의 참혹한 흔적을 몸에 새겨 넣은 흉터를 가지고 이국땅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하산 아저씨,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 채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는 그의 의붓아들. 이들은 different와 wrong을 거의 동일한 단어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갖은 선입견과 편견, 폭력적인 시선 속에 살아간다.
주인공이 자란 고아원 원장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이다. 공원 화장실 앞에서 하산 아저씨를 보고 움츠려든 청년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소설 속이나 현실이나 마찬가지로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같은 시선이 판을 친다. 침대에 사람을 눕히고 그가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서 침대에 맞추고 침대보다 크면 잘라서 침대에 맞췄다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가 왜이리 많은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다른 사람의 존재와 생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폭력적인 시선이 다름과 틀림의 의미를 동일화하는 중요한 원인이라 생각한다.
소수자로 살아가기 힘든 한국사회. 작가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주변에서 살아가는 '지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실제 우리 사회는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보다 더 암울한 것 같다. 참 우울하다.

"우리가 타인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내부의 모순을 모순으로 여길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다. 타인의 모순된 행동을 통해서 나를 유추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타인을 거울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미지의 영역에 내버려둔 채 한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p.170)

『여럿이 함께』에서 신영복 선생은 "不鏡於水 鏡於人"(불경어수 경어인)이라는 묵자의 말을 인용한다. 당시 사람들이 맑은 물을 거울로 삼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 말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하산 아저씨 역시 타인을 거울로 삼는 삶을 이야기한다. 타인이 '틀린' 사람이라면 鏡於人은 불가능할 것이다. 거울에 비춰보면 전쟁을 통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거울이 아닌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비춰보면 전쟁의 그늘에서 피폐해진 삶이 드러난다는 묵자의 가르침은 프로크루스테스로 가득한 우울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볼 때, 다름과 틀림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알게 되리라.

한 사람의 그림자가 온 지구를 덮는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하산 아저씨는 부단히 그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고아면서 무지막지한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돌연변이를 보는 듯한 경멸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의 흉터를 보고 낄낄대며 웃는 고아원 원장과 부인의 대화를 보고 작가는 단언한다. "상처받은 사람을 놀리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나'는 자기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자신이 왜 고아가 되었는지, 오른쪽 쇄골 아래 큼지막한 흉터가 왜 생겨났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대신 그의 주변에는 그와 동일한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또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스크랩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흉터의 의미를 조금씩 발견해 나간다.

"신부의 그림자 속에 있을 때면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내 몸의 흉터가 사라지고 파인 곳이 메워지고 새살이 돋고, 돋았던 곳이 가라앉으며 소름이 슬며시 가라앉듯 까닭 모를 서글픔도 사라졌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시도한대도 그 순간만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부의 그림자는 지구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상처를 덮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이니까." (p.60)

흉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그 흉터를 감추려고 뭔가 대단한 사람인양 떠벌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종교지도자인 전도사와 이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처와 흉터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역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온 지구를 덮을 수 있다는 작가의 외침이 가슴 한 켠에서 깊이 울려 펴진다. 하산 아저씨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자기 몸에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는 주인공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로 인해 그의 자신의 흉터를 뛰어넘어 이 더럽고 치사한 세계마저 입양할 수 있는 용기와 단호한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그림자에 대한 단상

최근 들어 한국사회를 가리켜 '다문화 사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다문화 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와 다르게 생긴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문화 사회이건 아니건 그 어느 사회에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인간존재에 대한 경외'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를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든 그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정육점 이야기는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밟고 싶지도 않은 그림자가 될 것인가,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그림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이제 내 몫이다.

덧.
손홍규 작가는 문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작품을 써 내려가는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은 단어나 표현까지도 세심하게 다룬 그의 노력과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무릎을 치게 하는 수많은 표현 중 최고의 표현을 하나 꼽아본다.
"식은 햇살이 고양이처럼 은밀하게 들어와 식당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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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통 가톨릭 성자 집안에서 자라 이슬람을 전공하신 선생님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이 세상에 돌아가지 않겠냐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희수 선생님을 알고 싶다면 그의 작가파일을 확인해 참고하시라.
(http://www.yes24.com/2.0/AuthorFile/AuthorFileD.aspx?authno=522&Scode=008)

책 속으로

“운명은 면식범이다.”
제기랄, 이런 화법은 「수사반장」 탓이었다. 운명은 우리 주위에 기거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수렁에 처넣으려고 기를 쓰는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안다고 믿기에 방심하게 되고 운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초이면서 최후인 발길질로 간단하게 우리를 끝장내버린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이 불쌍한 녀석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길―네가 태어날 때 너만 태어난 게 아니라 너의 운명도 함께 태어났거든.” 그날 운명은 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방심했던 탓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낯선 이가 찾아오면 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하산 아저씨를 보고도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까맣게 모른 채 너른 개활지에 홀로 핀 들꽃처럼 서 있었던 거다. --- pp.17~18

배가 고프지 않아도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으면 내가 사는 곳이 고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유곤로의 심지를 돋우고 유엔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화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심지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여주면 이내 불꽃이 자리를 잡아 푸르게 익었다. 나는 석유 사르는 냄새가 좋았다. 아득한 사막 혹은 바다 아래 어느 퇴적암에서 끌어올린 순결한 액체들이 타는 냄새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의 심정과 흡사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터의 병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천국에 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지금 견디는 이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수긍할 수 없었다. 살아서 지옥인 사람이 죽어서라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 이외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 뿐이겠지. --- pp.26~27

“반품이 안 되는 건 아시죠? 설령 저 녀석이 사고를 치거나 감당하기 힘든 불량배로 자란다 해도 저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장은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를 껴안았다. 원장의 머리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산 아저씨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르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언젠가 찾아가서 혼을 내줄 거니까.”
원장은 껄껄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배워두기로 했다. 언젠가 돌려줄 기회가 있을 테니까. 하산 아저씨가 원장은 무시한 채 내게 말했다.
“아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백 년 뒤에도 이곳에서 숨 쉴 자는 단 한 명도 없단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 말이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거나 나를 감동시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이 아니었다면 순순히 하산 아저씨를 따라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 p.96

하산 아저씨는 내 흉터에 눈을 줬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손으로 내 흉터를 더듬었다. 손끝에 피고름이 만져질 것 같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기원을 알지 못하는 나의 흉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내 몸은 기억하는 걸까. 내 몸의 흉터들은 내 슬픈 과거의 기록이었다. 내 영혼이 고통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내 영혼이 잊어버린 고통을 내 육체가 대신 기억해주는 거였다. 위대한 육체다.

나는 하산 아저씨에게도 흉터가 있냐고 물었다. 하산 아저씨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말 돌리지 말고 있는지 없는지만 말씀해주세요.”
“왜 없겠니. 나도 많이 있다. 희미한 것도 있고 선명한 것도 있지. 하지만……흉터에 집착하지 말거라. 네 흉터는 그걸 바라고 있는 거야. 네가 집착해야 오래 남을 테니.”
“이 흉터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신가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도 의문이었다. 왜 나는 이토록 흉터에 집착하는지. 흉터를 떠올릴 때면 배신감이 들었다. 사춘기 소년이 아무리 가꿔도 빛나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출 때마다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배신감이었다. --- pp.110~111

“대머리 아저씨 말야. 기억을 못한대. 전쟁이 일어났던 날부터 휴전이 성립되었던 날까지, 삼 년간의 기억이 지워졌대. 기록에는 참호에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걸로 나와 있대. 그런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들을 매번 되풀이해서 겪는 거지. 감당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면 우리의 뇌는 아예 모든 걸 지워버리거든. 그러니까 대머리 아저씨에게는 모든 세월이 전쟁이 일어났던 그때로 귀속되어버린 거야. 다른 기억들은 쓸모가 없어. 중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게 된 거지.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에 쉽게 유혹당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때부터 대머리 아저씨는 공부를 시작했어.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을 찾고 싶었던 거지. 어느 전투에서 사용된 총탄이 몇 발인지까지 외웠대. 하지만 대머리 아저씨는 자신도 있었다고 여겨지는 전투에 대해 아무리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봐도 기억이 살아나지는 않더래. ……그저께 내가 여기서 널 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거 기억나? 사실은 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어. 물론 나중에는 기억해냈지. 사람 이름을 잠깐만 까먹어도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 그런데 자신의 청년시절을 삼 년씩이나 잃어버린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는 중이었어. 나는 전쟁이란 영화에서 보듯 끔찍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그 무엇이라고 믿었어. 어떻게 나는 그런 더러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걸까. 대체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은 누가 가르쳐준 걸까. 원래 사람은 이런 존재인 걸까?” --- pp.142~143

“……전쟁 때였다. 보급은 끊어지고 우리 중대는 고립되었다. 적군은 강했고 우리는 지쳤지. 배고픔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배 속이 텅 비어서 허깨비가 된 기분이었어. 포탄을 피할 곳도 없는 민둥산이었지. 그저 신의 가호로 포탄과 총탄이 나를 비켜가길 바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옆에서 포탄이 터졌지. 내 몸이 붕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내팽개쳐졌지. 포연이 걷히고 적들의 사격이 뜸해졌을 때 나는 내 입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씹었다. 달콤했어. 그게 포탄에 맞아 찢겨진 사람의 살점이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전쟁이란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억지로 사람의 입속에 사람의 살점을 쑤셔넣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 꼭 이 고기가 그때의 사람 살점과 같은 맛이구나.” --- pp.213~214

기도하기 위해 일어난 하산 아저씨는 내가 만든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다워요.”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네 그림 속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구나.”
“그래서 그림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같은 거죠.” --- p.220

그는 왜 이 낯선 땅을 떠나지 못하고 수십 년을 머물러야 했을까.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늙어 이처럼 쓸쓸히 병든 몸을 견뎌야 하는 걸까. 하산 아저씨의 흉터를 보고 싶었다. 내 것과 닮았다는 그 흉터. 흉터가 닮았다는 말이 운명이 닮았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거기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잠든 하산 아저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가 나의 마지막 고아원이길 바란다고. 하지만 하산 아저씨마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비난해야 하는 건 그를 덮친 운명이지 하산 아저씨, 그가 아니니까. --- p.228

그리스와 터키에 가본 적이 없으나 매일처럼 그곳을 방문했다. 내게 그리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이며 터키는 아지즈 네신의 나라이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모국어로 씌어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번역되기 이전 날것의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감탄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숨을 쉬고 웃음을 터뜨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알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곳을 방문했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처럼 웃고 떠들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다녀갔음을.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들도 이곳에서 아파했음을.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은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아니, 그 이름들이 나를 선택했다. 그들의 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이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2010년 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손홍규

--- '작가의 말' 중에서

줄거리

나는 보육원에 있다가 하산 아저씨에게 입양되어 모스크(서울 한남동 소재) 근처 허름한 동네에서 산다. 틀에 박힌 제도 교육을 거부하여 학교에는 다니지 않는다. 보육원 시절에 학교에 잠깐 다닌 적이 있지만, 운동장 주변에 있는 동상들의 팔을 부러뜨리고 매일 오전 열한시에 뛰쳐나가 화단에 오줌을 눔으로써 문제아로 낙인찍힌 바 있다. 나의 몸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상처가 있다. 나중에 하산 아저씨가 일러준 바에 따르면 그건 총상임에 분명하고, 그 때문에 부모님과 헤어져 고아가 되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아무려나 그와 비슷한 상처가 하산 아저씨의 몸에도 있는데, 그 상처들은 둘 사이가 혈연 이상의 관계로 엮여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하산 아저씨가 운영하는 정육점이나 안나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충남식당에 있으면서 잡지나 신문에서 사람 얼굴을 오려 스크랩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스크랩된 사진들은 나중에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여져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큰 지도로 만들어지는데, 그 지도는 결국 인종이나 국가, 종교 등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역설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하산 아저씨가 기력을 잃고 쓰러져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나는 그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
나는 내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꼈다. 뜨거웠다. 인간의 모든 기억들이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게 이어진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병실 구석에 섰던 이맘이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236쪽)

하산 아저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인인데, 전쟁이 끝난 후에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귀화한 인물이다. 모스크 근처의 허름한 건물에서 정육점을 열고 있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고, 결국 건물주가 세를 올려달라고 했을 때는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산 아저씨는 독실한 이슬람 교인으로 『꾸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책을 전부 외우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슬람에서 금지한 돼지고기를 팔고 있는 모순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모두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 때문인데, 전쟁 중에 살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공포와 광기의 순간에 사람의 살점을 먹었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하산 아저씨는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한 후 기력을 되찾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야모스 아저씨는 하산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리스인인데, 전쟁 후 한국에 눌러앉은 인물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전, 그리스 내전 당시 전투기를 몰다가 적병으로 오인해 사촌 일가를 죽인 죄책감 때문에 귀국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그는 안나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충남식당 위층 다락방에 기거하며 밥을 빌어먹고 산다. 매우 소심하고 나약한 영혼의 전형이지만, 작품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으며, 또한 유머와 낭만을 아는 인물로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대머리 아저씨는 한국인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전쟁의 상처로 당시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인물이다. 때문에 나중에 책이나 전쟁백서 등을 통해 자신이 참전하지 않은 전투까지 상세하게 공부해서 모든 전투를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다. 군복을 자주 입고, 소리소리 지르며 군가를 부르며 우는, 역시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영혼이다.

안나 아주머니는 동네의 사랑방과도 같은 충남식당을 운영하면서 하산, 야모스, 대머리 아저씨를 특유의 여성스러움으로 포용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안나 아주머니 역시 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치듯 나와 살고 있는 인물이다. 나중에 시아버지가 찾아와 남편의 죽음을 알리자 그제야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고, 이후 트럭을 한 대 빌려 교외로 나가는 소풍을 기획한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와도 같은 소풍을 통해 사람들은 조금씩이나마 상처를 치유받는다.

이 외에도 나의 친구로 ‘유정’과 ‘맹랑한 녀석’ 등이 등장한다. 연탄장수의 아들인 유정은 말더듬이이지만, 소설가를 꿈꾸며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동네의 시시콜콜한 뒷얘기들을 동물들에게서 들은 뒤 나에게 전한다. 학교에서는 늘 꼴찌이고 말을 더듬기는 하지만, 그는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스펙트럼이 풍부한 언어를 구사한다. 나중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는데, 그 후로는 모스크로 오르는 계단에 앉아 자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다.

맹랑한 녀석은 가난한 집안에 버림받듯 태어나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늘 “죽을 건데 뭐”란 말을 달? 사는 그의 염세주의는 쌀집 둘째 딸에게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자 더욱 강화되었다. 유일한 친구는 노란줄무늬 고양이. 대머리 아저씨와 6?25 참전용사들의 집회에 다녀온 후 그는 대머리 아저씨의 상처와 잃어버린 명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머리 아저씨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 그의 군복 등속을 태운다.

평상 옆에 앉아 간단하게 묵념을 한 뒤 신문지를 불쏘시개 삼아 대머리 아저씨의 물건들을 태웠다. 그것들은 마치 유품 같았고 우리는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가 된 것 같았다. 한 시대가 태워졌다. 한 사람의 과거가 타올랐다. 검고 악취 나는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210쪽)

출판사 리뷰

이슬람 사원 주변, 허름한 골목에 모인 지질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한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 손홍규가 전혀 색다른 장편 성장소설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문지 푸른 문학’ 열번째 권으로 출간된 『이슬람 정육점』. 이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의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를 손홍규 특유의 진중하고 유려한 문체 속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상처와 욕망, 폭력과 광기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서울의 이슬람 사원 주변, 허름한 골목에 모인 지질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한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 『이슬람 정육점』을 통해 우리는 한국 문학에서 성장소설이 가 다다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학적 성과를 목도하게 되었대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이슬람 정육점』은 손홍규 작가가 쓴 첫 성장소설이다.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 이후 2년 만이고, 장편소설로는 『귀신의 시대』 이후 4년 만에 출간하는 책이다. “도시화된 폭력적 환경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인간성 소멸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소설을 발표해왔다”는 그간의 평은 이번 소설에서도 여실하다. 더불어, 전쟁의 깊고 오랜 상처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한 독특한 공간을 창조해냄으로써 그 주제의식은 한껏 웅숭깊어졌다. 이슬람 사원 주변의 허름한 골목과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막다른 인생들을 겪어내는 한 소년의 성장기는 누군가의 상처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것임을 묵묵히 증언한다.

“이 작가는 사람을 말하고 있”(『사람의 신화』; 신형철)다든가, “돌발과 순수, 짠함과 능청이 장바닥처럼 풍성”(『귀신의 시대』; 한창훈)하다든가, “요령부득의 현실과 맞장 뜨길 주저하지 않는 인간 군상들에게 바치는 조문(弔文)”(『사람의 신화』; 김종광)과도 같다든가, “그의 소설엔 진중한 유머가 넘쳐나면서도 역사와 개인 속에 내재된 불합리한 세계가 유장하게 펼쳐져 있어 어느새 등을 세우고 읽게 된다”(『봉섭이 가라사대』; 신경숙) 등의 상찬은 『이슬람 정육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러 명의 캐릭터를 동원하면서도(그리고 각각의 캐릭터를 돌올하게 살려내면서도) 작품의 주제의식과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은 손홍규 작가 특유의 재능일 터다.

하산 아저씨는 터키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나 휴전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가슴에 깊숙한 흉터를 남긴 총상과 전투 중에 누군가의 살점을 무의식 중에 먹었다는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돼지고기를 파는 모순된 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 전쟁의 상처 때문이다. 그런 하산 아저씨의 눈에 깊고 큰 상처를 지닌 한 고아(‘나’)가 눈에 띄었고, 나는 그에게 입양되어 비로소 세상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온갖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스크랩해두었다가 그 사진들로 이어붙인 지도를 만들게 되는데, 그를 통해 국가, 종교, 인종 따위를 초월하는 혈연과도 같은 끈을 찾게 된 것. 때문에 작품 말미에 ‘나’가 하산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르고, “내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끼며,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일련의 성장통은 애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하산 아저씨뿐 아니다. 『이슬람 정육점』에는 내전 당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 사살한 죄책감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를 비롯해,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자신과는 관련도 없는 역사를 주입시키고 있는 한국인 ‘대머리 아저씨,’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쳐 나와 살고 있는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가난과 가정불화로 상처를 입은 친구 ‘유정’과 ‘맹랑한 녀석’ 등이 등장한다. 이들의 상처는 그 상처를 개인의 것으로 숨기고 드러내지 않을 때 상처가 곪거나 또 다른 누군가의 상처로 전이되고, 종국에는 서로서로 인과관계로 엮이거나 대물림되는 상처의 속성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올해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해이니만큼, 전쟁의 상처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놓은 『이슬람 정육점』이 주목에 값할 듯싶다. 실제로 손홍규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들도 이곳에서 아파했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고,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은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아니, 그 이름들이 나를 선택했다”(「작가의 말」)고 고백한다. 오랜 기간 한국전쟁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취재를 이어왔던 작가인 만큼 이 작품은 긴 응시와 성찰의 결과물인 셈. 남북 간의 대결 국면이거나 주변 4강에 한정했던 그간의 역사 인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럽으로까지 상상력을 확장시킨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아무려나 전쟁의 상처는 당사국을 넘어 전 지구적인 상처로 전이되고 되물림되는 것이므로.

손홍규 작가는 첫 성장소설을 쓰고 난 소회를 통해 우리 삶에서 “통과의례란 없다”고 단언한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작가의 말」)라고. 통과의례처럼 특별한 국면들이 삶의 순간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지금’ ‘바로 여기’들이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삶 자체라는 것. 작가의 인생관이 그러하기 때문인지, 『이슬람 정육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문장들로 빼곡하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이 꼭 먼저 읽어야 할 성장소설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출발한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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