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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엘리어트와 빅토리아조 페미니즘
양장
이순구 저
동인(종로) 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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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머리말
2. 여성의 심리발달에 대한 이론들
3. <플로스 강가의 물방앗간> : 여성성의 찬미
4. <로몰라> : 전복과 생존
5. <급진주의자 필릭스 홀트> : 개인의 행복에의 추구
6. <미들마치> : 적극적인 여성성의 모색
7. 사상가 죠지 엘리어트
8.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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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9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3쪽 | 566g | 160*232*20mm
ISBN13
9788955061925

출판사 리뷰

죠지 엘리어트와 빅토리아조 페미니즘

19세기 영국은 여성의 사회적 소외가 심화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르며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믿었다. 바깥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응당 남성의 몫이라면, 결혼하여 남편과 자식에 봉사하는 것을 여성의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간주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전례 없이 높아진 시대이기도 했다. 브론테 자매, 개스켈 여사, 마티노 등의 소설가들과 브라우닝, 로제티 등의 시인들, 나이팅게일과 버틀러 등의 박애주의자와 사회개혁가들, 서머빌같은 과학자 등 다방면에 걸쳐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특히 여류소설가들의 활동은 대단했고 따라서 1855년 올리펀트는 자신의 시대를 “여류소설가들의 시대”라고 불렀다. 이러한 사실들은 19세기에 여성이 당대의 성차별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동조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시대에 여성의 공적 활동이 제한적이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억압에 맞서 여성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세력을 확장하고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시대에, 당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계몽주의적-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해 죠지 엘리어트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물론 페미니즘의 기본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엘리어트는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에게 독립된 삶이나 자아성취를 장려하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자기희생과 포기의 덕목을 권장한다 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과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당시의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엘리어트를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

그동안 죠지 엘리어트에 대한 비평은 실증주의, 결정론, 종교적 인문주의, 사실주의, 다아윈론, 낭만주의, 공동체, 비극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책은 1960-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페미니즘 비평 경향에 편승해 문화적 페미니즘 혹은 복음주의적 페미니즘이란 관점에서 엘리어트를 바라보고자 한다. 매어리 앤 에반스로서의 개인적인 삶이 엘리어트의 작픔 속에 융해되어 있다고 보고 그 에반스의 목소리를 드러내 주고자 한다.

즉, 이 책은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인물들에 대한 옹호를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죠지 엘리어트(George Eliot, 1819-1890)는 한편에서는 여성억압이 심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불의를 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빅토리아조 시대를 산 작가였다. 공인으로서의 작가 엘리어트는 남성 못지 않은 작가적 성공을 거두었다. 스캇(Walter Scott) 이래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나나 개인적 인물로서의 에반스(Mary Ann Evans)는 많은 고통과 좌절, 상실을 경험해야 했다. 그녀는 가부장제 사회의 딸로 태어나 늘 아버지와 오빠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녀는 런던으로 가 전문가로서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가 죽음으로써 끝났고 오빠와의 갈등은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엘리어트는 부유한 집안 출신도, 얼굴이 예쁘지도 않았다. 너무 지적이었고 감수성은 너무 예민했다. 그녀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복음주의, 범신론, 실증주의, 결정론, 진화론 등?을 혼자 읽었다. 그녀가 습득한 지적 연마는 브론테 자매나 동시대의 남성들의 수준을 능가했다. 그러나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론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거부하기도 했다. 그녀는 20대에 그동안 다니던 교회의 출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일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시대에 돈을 벌었다. 번역가로서, 잡지 편집장으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그녀는 돈을 벌었다.

그녀는 또한 수많은 지식인들-스펜서(Herbert Spencer), 스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헉슬리(T. H. Huxley), 브라우닝(Robert Browning), 제임스(Henry James) 등-과 친교를 나누었다. 허버트와의 교제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35세에 뒤늦게 삶에 정착했을 때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이미 처자식이 딸린 루이스(George Henry Lewes)였다. 그녀는 이혼을 불허하던 당시의 법에 따라 그와 정상적인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동거했다. 자식은 낳지 않았고 루이스의 전처 자식들을 데려다 친자식처럼 길렀다. 이처럼 에반스는 예외적일 정도로 관습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삶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행복과 만족감도 뒤따랐지만 고립과 소외, 절망과 환멸, 상실과 배반도 깊숙이 체험해야 했다.

37세에 죠지 엘리어트라는 남성의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이러한 체험들을 육화하고자 했다. 그녀가 남자 이름으로 필명을 바꾼 이유는 자신의 작품이 여성의 작품으로서 편견을 갖고 해석되기보다 여느 남성작가의 것처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자 함에서였다. 그녀가 첫 소설에서부터 마지막 소설에 이르기까지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관습적인 삶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녀는 가부장제 사회가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핍된 잘못된 사회로 제시하고자 했다.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작가 엘리어트의 판단의 근거가 되는데, 그녀는 관습적인 도덕과는 다른 자신만의 도덕적 목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녀는 여성 고유의 여성적인 특질들을 삶에 있어서의 중요한 도덕적 가치로 제시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여성성의 가치가 남성중심 사회가 배태하는 이기주의와 잔인함, 폭력성을 치유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도덕적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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