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프롤로그 ; 당신은 누구십니까
1 _ 회사인간의 정체 공적 영역에 귀속된 남성 조직에 최적화된 노동자 관리자, 상급자, 리더 그리고 퇴직 2 _ 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 출근이 사라진 시간 일할 수 없는 공간 의사 결정 권한이 없는 권위주의자 이벤트로서의 대화 3 _ 회사인간, 생존의 법칙 삼겹살과 소주 동창 모임에 나가는 이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4 _ 회사인간, 시대적 존재 경제적 도구 꼰대와 멘토 사이 회사인간 세대 에필로그 ; 아버지의 마이 웨이 주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꼰대의 속사정 |
회사인간이란 전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헌신이 조직의 성장,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고를 내면화한 조직 구성원을 의미한다. 국가의 경제가 기업의 성장에 의존하는 구조 하에서, 기업은 연공서열제와 종신(정년) 고용, 각종 복리 후생 제도를 제공하면서 구성원들이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했다. 동시에 기업이 구성원에게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임금을 제공함으로써,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구성했다.--- p.11
내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국가의 1인당 국민 소득 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책임감을 가지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한 만큼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부문에 진출하여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구가한 이들에게 회사란 그저 직장 이상의 의미다. 회사는 회사인간에게 성취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의사소통을 했던 생활 세계였다.--- p.12 기업의 관리자들은 직원들을 평가하고 승진시키는 과정에서 군대의 방식을 모방했고, 회사인간은 군인이 국가에 충성하듯 회사에 충성해야 하는 당위성을 내면화했다. 이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집단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회사인간은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회사의 성장이 곧 자신의 성장이라는 믿음, 즉 승진 같은 조직 내 성취만을 중시하는 일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졌다.--- p.24 퇴직자는 탈조직화하여 새로운 생활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퇴직은 여전히 공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퇴직자가 낯선 환경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들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같이 출근하던 공간이 사라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일과를 이제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혼란을 겪는다. --- p.42 “이… 공통분모가 없어져 버리니까 이게 안… 공통분모가. 그러니까 대화 거리가 줄어들죠. 차라리 누군가가 하나 아파 가지고 병간호해야 된다면은, 그 나쁜 걸로 인해서 대화 거리가 생기겠지마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게 그 무의, 무미건조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이벤트를 계속해서 뭔가를 해야 되겠죠. 어떻게 보면은. ”--- p.72 퇴직자들은 자신의 가치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리가 만든 사람으로 30년 동안을 살아왔다. 이들은 이 30년 동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자신이 속한 조직에 충성했다. 가족과 조직을 둘러싼 몇몇 뉴스거리가 세상의 전부였지만, 바로 그 전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전부에서 벗어나 버렸다. 이들은 이 엄청난 변화로 인한 혼란과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p.89~90 가정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일종의 정언 명령이던 이들에게,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보라는 것은 낯선 요구다. 결국, 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찾지 못한 채, 사회적인 가치와 의미에 매달리면서 다시 공적 영역에서의 목표를 좇는다.--- p.98~99 “우리 애 뭐해. 그 말 한마디. 우리 애는 임페리얼 칼리지 의대 다녀. 찾아봐.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올 거야. 하바드급이야. 요 말 한마디, 요 폼 잡는 거 때문에 내 거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야” --- p.113 A는 지점장 시절의 관리자 정체성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가족들을 직원들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지만, 여전히 관리자인 그의 태도는 소통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A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주로 “가족들의 나태함”이었다. 그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자신과는 달리 가족들이 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지적했다.--- p.121 꼰대라는 표현과 같이 퇴직자를 풍자하는 이야기들은 이들이 권위를 확인하는 방식이 실패하고 있으며, 권위가 없어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회사인간의 소통 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퇴직자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퇴직자들은 가정적일수록 가정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 p. 122 |
선생님, 부장님, 혹은 아버지.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다른 이름이다. 가까이에서 늘 만나는데도 어쩐지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들이 198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화한 조직 문화가 이른바 ‘꼰대 근성’의 배경이자 원인이라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퇴직이라는 계기다. 회사의 문화와 논리에 젖어있던 사람들, ‘회사인간’이 회사를 떠나 회사 밖의 세계에 진입한 뒤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들의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극히 당연했던 자신의 모습이 회사 밖에서는 도저히 통용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다. 조직의 관리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을 생존과 성공의 길이라고 믿어왔던 이들은 회사를 떠나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저자는 50대 화이트칼라 남성 퇴직자 10인을 심층 인터뷰해 회사인간과 사회의 충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퇴직한 회사인간에게 가장 큰 변화는 시공간의 변화다. 일하는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회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 ‘나인 투 식스(Nine to Six)’의 업무 시간이 사라진 느슨한 하루는 모두 낯설다. 두 번째 변화는 권위의 상실이다. 퇴직 전까지 의사 결정 권한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을 ‘거느릴’ 수 있었던 회사인간은 퇴직 후 지위의 추락을 감지한다. 존경받는 상사에서, 졸지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세 번째는 의사소통 구조의 변화다. 회사에서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었던 부하 직원들은 이제 주변에 없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의사소통에 익숙한 회사인간들은 가족과의 ‘스몰 토크’를 이끌어 갈 자신이 없다. 결국 주제를 가지고 해법을 논하는 회의 시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족들에게도 적용하고 만다. 저자는 이러한 회사인간의 특성이 시대적 맥락과 사회의 요구에 의해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래 이상한 사람이어서, 나이가 들어서, 꼰대가 된 것이 아니라, 군부 독재 하의 군대문화, 고도 성장기의 집단주의와 국가 주도 경제 발전 시스템 등으로 만들어진 문화가 당시의 직장인들에게 주입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정체성은 1980년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는 독특한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꼰대의 이야기를 어른들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남성, 한국 사회에서 흔히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태도와 가치관, 감정은 개인적인 특성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적 맥락에 따라 만들어진 집단적 정체성에 가깝다. 젊은 우리도 현 시대의 요구와 맥락 속에서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다.”(에필로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