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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모든 풍경들이 낯설어 보이는 새벽
2. 한 마리 시조새가 되어 달빛 속을 선회하던 여자가 있었다 3. 시인이 사물에 대한 간음의 욕구를 느끼지 못하면 시가 발기부전증에 걸린다 4. 세상 전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5. 이태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십니까 6. 해파리떼 7. 내가 보기에는 세상 전체가 미쳐가고 있다 8. 강도가 칼 대신 꽃을 들고 닭갈비집에 침입하다 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북하게 하옵시며 10. 사라진 것들은 모두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의 깊이와 동일한 상처를 가슴에 남긴다 11. 메뚜기떼 12. 시인은 비가 내리면 제일 먼저 어디부터 젖나요 13. 소요약전(逍遙略傳)―하늘이 흐린 날은 하늘이 흐리기 때문에 14. 진정한 환쟁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모델은 먹지 않는다 15.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어찌 알 수가 있으랴 16. 흑색겨울독나방 17. 마음 안에서 사라진 것들은 마음 밖에서도 사라진다 18. 예술가의 인생이 연속극 스토리처럼 통속해 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19. 날이 갈수록 백자심경선주병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다 20. 선생님은 등대가 사라져 버린 밤바다를 일엽편주로 떠도는 표류자(漂流者)의 심경을 아시나요 21. 고래들의 떼죽음 22. 알콜중독에 걸린 초딩 닭갈비집 금불알을 점거하다 23. 아버지 저는 오늘도 불알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24.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난다 25. 독작(獨酌) 26. 달은 있다 27. 어른을 함부로 대하는 놈들은 귀싸대기에서 먼지가 풀썩풀썩 나도록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
Lee Oi soo,李外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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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젓가락으로 물을 찍어 탁자에 백자심경선주병(白磁心境仙酒甁)이라는 한자를 써 보였다. 그리고 음미하듯 천천히 술을 들이켠 다음 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노인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인자한 성품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았다.
나는 석 잔을 받을 때까지도 특별한 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의 맹물에 가까운 맛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넉 잔을 받았을 때 비로소 노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갑자기 혈관이 투명해지면서 미묘한 향기가 맡아졌는데 놀랍게도 그 미묘한 향기는 여린 연두색이었다. 처음에는 혀가 연두색으로 물들었고 다음에는 목구멍이 연두색으로 물들었으며 급기야는 온몸이 연두색으로 물들었다. 신기했다. 시각과 후각이 공감각적 현상(共感覺的現像)을 일으키고 있었다. 향기에도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찬수녀석이 카운터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서, 둘이서 잘들 놀아보쇼, 하는 투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17장 마음 안에서 사라진 것들은 마음 밖에서도 사라진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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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놈이 술을 마시고 있잖아. 미성년자한테 술 팔면 영업정지처분이라는 거 몰라?”
“그래서 내부수리중이라고 써붙였잖아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데 누가 영업정지를 먹여요. 저 사람들 돈 쓰는 폼이 장난 아니예요. 저한테 담배 심부름 한번 시키고도 팁으로 십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찔러주더라니까요.” “바둑판에만 정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사판에도 정석이 있는 거야. 내가 가게를 물려받은 이래로 아직 한 번도 영업정지를 먹어 본 적이 없어. 줄곧 정석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뜻이야. 일확천금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장사를 할 때는 절대로 정석을 벗어나지 말라고 생전에 아버님이 수시로 말씀하셨어.” “선배님은 현대를 조선시대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 같아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순리는 변하지 않는 법이야.” “돈이 피보다 진한 시대에 순리를 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제영이와 대화를 나누면 그녀의 확고부동한 논리와 신념 때문에 언제나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녀는 돈이 피보다 진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있는 여자 같았다. 나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녀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22장 알콜중독에 걸린 초딩 닭갈비집 금불알을 점거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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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사라졌다.
달빛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소요가 꽃을 든 강도가 되어 홀연히 가게로 스며 들어온 지 1년, 그녀 역시 종적을 감춘 이후 벌어지는 믿지 못할 변화들, 자연과 생물의 공격.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내리는 자연의 형벌이란 말인가? 달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인 나 이헌수는 이 시대에 불필요한 정신분열자일 뿐. 내가 기억하는 달은 백과사전에도 인터넷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달력조차 월요일을 표시하지 않고, 추석(한가위)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통장에서 예금을 인출한 나는 동생 찬수에게 공동재산권에 대한 항의를 듣는다. 부모님을 위해 차렸을 뿐인데, 추석을 알지 못하는 찬수는 내 말이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는 것 같다. 찬수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찬수가 정신병자로 인식되고, 그들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찬수와 그의 애인 제영의 무절제한 성관계, 상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영의 행동. 어느 날 그들 앞에 돈과 권력으로 어른 행세를 하는 부잣집 초등학생 도련님이 나타나 가게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