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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닭들의 떼죽음. 퀴즈의 정답. 건의서를 보내다
29. 경포에는 몇 개의 달이 뜨는가 30. 자살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 31. 도대체 저들 중에 누가 내 시들을 읽어줄 것인가 32. 내 생애 가장 길고도 지루했던 겨울은 끝났지만 33. 짜장면과 보름달 34. 평강공주 개방병동에 입실하다 35. 우습지 않습니까 36. 당신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려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37. 식물들 가시를 만들다 38. 한 번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동대문에 문지방이 있다고 우길 때 서울 사람들은 동대문에 문지방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39. 길섶에 조팝나무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
Lee Oi soo,李外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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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관련된 생산업체 공급업체 판매업체들이 차례로 도산하고 있었다. 정부는 두 주일이 경과될 때까지도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업주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고 식구들과 닭갈비를 먹는 광경을 공개해 보기도 했다. 괜찮아요. 우리는 매일 이렇게 닭갈비를 먹었는데도 안 죽었어요. 들어오세요. 그래도 손님들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제영이는 초연했다. 조류독감을 아스피린 몇 알만 먹으면 퇴치되는 질병 정도로 생각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팔자 좋게 명품타령만 연발하고 있었다. “외출해서도 닭순이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기는 싫어.” “명품 핸드백 있잖아.” “세팅이 되어 있어야지, 겨우 핸드백 하나 달랑 명품으로 들고 다니면 얼마나 쪽팔리는지 모르는구만. 적어도 구두 정도는 같은 브랜드로 세팅이 되어 있어야지.” “지금이 명품타령할 때야?” “달력에 명품타령하는 날 빨간 숫자로 국경일처럼 표시해 놓았나?” “그런 데 돈 쓰려고 초딩놈한테까지 굽실거리면서 닭갈비 팔지 않았어.” ―<28장 닭들의 떼죽음. 퀴즈의 정답. 건의서를 보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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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이십억만 생기면.”
손님들은 자기한테 20억만 생기면 모든 일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기한테 20억만 생기면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도 이루어지고 가정파탄으로 집을 나가버린 마누라도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간의 육신은 70퍼센트가 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인간의 의식은 100퍼센트가 탐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저들 중에 누가 내 시들을 읽어줄 것인가. 생각할수록 암울했다. 세상에 종말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가까스로 시 하나가 희망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마저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는 했지만 나는 장사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31장 도대체 저들 중에 누가 내 시들을 읽어줄 것인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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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사라졌다.
달빛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소요가 꽃을 든 강도가 되어 홀연히 가게로 스며 들어온 지 1년, 그녀 역시 종적을 감춘 이후 벌어지는 믿지 못할 변화들, 자연과 생물의 공격.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내리는 자연의 형벌이란 말인가? 달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인 나 이헌수는 이 시대에 불필요한 정신분열자일 뿐. 내가 기억하는 달은 백과사전에도 인터넷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달력조차 월요일을 표시하지 않고, 추석(한가위)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통장에서 예금을 인출한 나는 동생 찬수에게 공동재산권에 대한 항의를 듣는다. 부모님을 위해 차렸을 뿐인데, 추석을 알지 못하는 찬수는 내 말이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는 것 같다. 찬수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찬수가 정신병자로 인식되고, 그들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된다. 찬수와 그의 애인 제영의 무절제한 성관계, 상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영의 행동. 어느 날 그들 앞에 돈과 권력으로 어른 행세를 하는 부잣집 초등학생 도련님이 나타나 가게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