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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와서 정치적 이미지에 미술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년)를 공식 화가로 임명하고 여러 점의 초상화나 황실의 행사를 그리게 하였다. 그중 하나가 「생-베르나르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 한때 우리나라에서 모든 대선 후보들이 어린애를 안고 찍은 사진을 선거 포스터에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통치자의 이미지는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시대가 요구했던 이상적인 통치자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 pp.109~111,「통치자의 이미지」 나이브 아트(Naive Art)란 세라핀 루이처럼 미술가로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을 말한다. 이들 그림의 공통점은 미숙함과 소박함에 있다. (…) 루소가 53세에 그린 「잠자는 집시」는 어느 아카데믹한 화가도 그릴 수 없었던 꿈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원근법과 신체 묘사는 서투르지만 이상하게 모두 앞으로 향하는 사자의 갈기나 집시의 옷 등은 아주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이 환상적인 그림은 진정으로 타고난 재능과 상상력을 가진 작가만이 가능한 것으로, 예술은 교육과 훈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 pp.191~193, 「나이브 아트의 화가들」 식탁 그림들에서 정물은 그냥 묘사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남아서 상해가는 음식들, 옆에 놓여 있는 시계 등은 ‘바니타스(vanitas), 즉 무상(無常)함을 또는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일시성과 죽음을 상징한다. 세속적인 물질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그린 이 매혹적인 그림을 즐기면서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늘 상기했던 것이다. --- pp.242~243, 「네덜란드 정물화, 생활 속의 바니타스」 요헨 게르츠(Jochen Gerz, 1940- )와 에스터 게르츠(Esther Shalev Gerz, 1948- )가 1986년 함부르크 시내에 세운 「반(反)파시즘 기념비」는 약 12미터 높이의 강철에 납을 씌운 네모난 기둥으로 세워졌다. 이 조각은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기둥 표면에 이름이나 의견을 쓰라는 안내문이 7개 국어로 적혀 있고 철필이 달려 있었다. 납으로 처리된 표면에 관람자들이 글을 쓰고 공간이 채워지면 이 기념비는 조금씩 땅 아래로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이 또 그 윗부분에 글을 쓸 수 있게 고안되었다. (…) 이 기념비는 그동안 나치의 행위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독일인들을 공개적인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작가들은 기념비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의에 대응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 pp.342~343, 「카운터 모뉴먼트」 블레리오의 영불해협 비행을 에펠탑처럼 새로운 과학 문명의 상징으로 보았던 들로네는 1914년 이제까지의 실험을 종합한 「블레리오에게 경의를 표하며」라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마치 관람자들이 공중에 떠 있는 체험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비행기 프로펠러의 빠른 움직임, 바퀴, 프리즘과 같은 순수한 색채로 나타난 눈부신 태양 광선은 크고 작은 동심원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화면 오른 아래에는 창공에서 내려다본 에펠탑이 보인다. 이 작품은 빛, 색채, 그리고 근대적 삶에 대한 찬가다. 들로네는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에 매혹되어 좀 더 나은 미래와 진보를 기대했던 미술가 중의 하나였다. , 「에펠탑과 들로네」 --- pp.404~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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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서양미술사
이 책이 숱한 서양미술사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한국인 학자로서 서양 작가들이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동·서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이들을 설명하며 한국이 서양미술에 어떤 시각으로 비쳐진 국가였는지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있는 아프리카 여인 앞에, 마치 가면을 쓴 듯이 서 있는 선교사의 표현에는 그가 민족학박물관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조선시대 장승의 모티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놀데는 독일제국의 식민지 관리국의 제의로 1913년 가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모스크바, 몽골, 한국, 일본, 베이징, 상하이, 홍콩, 필리핀을 거쳐 뉴기니로 향하는 여정으로 조선에 왔다. 그의 임무는 원주민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이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조선 방문에서 받은 호감은 그의 자서전에 짧게 언급되어 있고 몇 점의 인물 드로잉도 남아 있다. -본문 290쪽, 「놀데의 조선 방문」 중에서 저자는 책에서 조선시대에 한국을 방문한 독일 출신의 화가 에밀 놀데의 회화를 발굴하는 한편, 파병국가였던 미국에게는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어떻게 비쳐졌는지 워싱턴D.C.의 내셔널 몰에 설치된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아주 뛰어난 사실성을 보여주는 이 조각상들의 기술적인 훌륭함은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의 긴장과 피곤을 매우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이 조형물은 전쟁을 더 이상 승리와 패배로 이해하고 있지 않고 또 기념물이 영웅적인 전투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개념에서도 벗어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 아래 헌신한 다수의 평범한 군인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기념물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조형물로 인정된다. -본문 153쪽, 「미국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 중에서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와 미술을 보는 다양한 관점 소개 서양미술사에 얽힌 100가지 해설에는 피카소나 반 고흐처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화가의 에피소드가 있는가 하면,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린 작품인 ‘나이브 아트’의 매력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피카소가 디자인한 입체주의 의상을 입은 러시아의 유명 발레단 발레 뤼스에 관한 일화와 무용수들의 사진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피카소는 파란 기차 외에도 다섯 번이나 발레 뤼스의 무대 디자인에 참여하였다. 에릭 사티가 작곡하고 장 콕토가 대본을 쓴 '행진(Parade)' 공연에서 그는 의상을 담당했다. 두꺼운 종이로 된 입체주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당연히 혹평을 받았으며, 결국 2회 공연에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으로 피카소는 러시아의 발레리나인 올가 호흘로바를 만나 결혼하기도 했다. -본문 418~419쪽, 「피카소와 발레 뤼스」 중에서 저자는 회화, 조각, 도자, 사진, 건축 등 여러 분야를 배경으로 고대의 여신상에서부터 현대의 행위미술, 대지미술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자연물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삼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落水莊)이나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작품관이 엿보인다. 그러나 반드시 번개 치는 장면을 보아야만 작품의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작가가 중요시한 것은 번개를 구경하는 것보다는 빛의 효과였기 때문이다. 400개의 스테인리스 기둥은 빛에 예민해 새벽에는 아침 햇살에 기둥이 반짝이고, 정오의 눈부신 태양 광선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새벽이나 황혼이 깃들 때에는 전체가 다 보이며, 밤에는 별을 바라볼 수 있다. 거대한 규모의 이런 작품을 지각하는, 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인 경험은 미술관에서는 어려운 생생한 체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월터 드 마리아는 아무리 최고의 작품이라도 자연 그대로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능가할 수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본문 438쪽, 「자연현상이 곧 작품」 중에서 하나의 작품에는 작가의 창의적·심미적 재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며, 미술가가 겪은 인문학적 경험들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는 저자. 방대한 미술의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어느새 서양미술사에 관한 배경지식을 든든히 쌓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