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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언니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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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음란한 책
이 책은 아름답고 음란한 책이다. 아름다움이 음란함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힘든 건, 설명이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함께 그 자신이 분리되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음란함은 서로 나뉘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려드는 순간, 그 설명이 결국에는 아름다움과 음란함을 서로 분리시키고 만다. 더 이상 아름답지도 음란하지도 않은 단어의 조각들에서, 우리는 설명만으로 결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음을 알아보고 이해하게 된다. 설명의 미덕은 단지 그것뿐이다. 아름다움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음란함 역시 그것이 음란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자들과 문장들이 그 자체의 빛을 가지고 있듯이. ……나는 그 빛을 어둡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빛과 어둠 또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어들은 반대말을 가지지 않는다. 언제나 스스로 어두운 빛을 뿜어낸다. 스스로 아름다운 시가 있는 반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분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면에서 시는 소설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소설 역시 시와 다르게 아름답다. 그 이유는 아름다움을 소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악마적인 속성과의 싸움이 바로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설이 더 이상 소설 자신을 문제 삼지 않을 때 아름다움은 소설에서 분리되고 만다. 음란함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아름답고 관능적인 책은 많지만, 아름답고 음란한 책은 흔치 않다. 왜 그럴까? 관능이 건드리지 않는 것을 음란이 건드리기 때문이다. 바로 윤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은 아름답고 음란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책이다. 이 책이 어떻게 소설이 될 수 있는지 끝없이 회의하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낸다면, 어느새 당신의 가슴 한 구석에 한 권의 검은 책이 웅크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리라. 어떤 경우든 회의하는 자만이 윤리적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자는 회의하지 않는다. 당신은 윤리적이고 나는 회의하지 않는다. 이 책을 거리낌 없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만지작거리던 시간이 더 길다. 나는 계속 바라봤다. 나는 계속 바라본다. 2011년 7월 ---저자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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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잃고 거품이 되어도 알지 못할 이야기”
아름답고 음란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책! 김종호의 글과 허남준의 그림으로 만나는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어공주 이야기 소설가 김종호가 쓰고 화가 허남준이 그림을 그린, 『인어공주 이야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은 『인어공주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이 책에 없다. 기존의 동화를 비틀어보는 식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역시 아니다. 이 책을 쓴 소설가 김종호는 그의 첫번째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에서 글쓰기 자체가 저자를 쓰는, 죽음이 존재를 쓰는, 욕망과 무의식이 주체를 쓰는, 상상이 현실을 쓰는 그런 불가능한 텍스트를 ‘검은 소설’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런 ‘검은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를 한없이 낯선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못하다. “이야기는 소설의 한 요소일 뿐, 이야기가 없는 소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문예중앙』 2010년 가을호)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작품을 읽는 데 어느 정도 괴로움을 감수해야 했던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문학 작품에서 흔히 기대하는 ‘소통’과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작가가 ‘이야기’라고 이름붙인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지, 그의 첫 장편소설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 있다면 ‘시점’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 가운데 어느 순간,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그러나 김종호가 가장 철저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프롤로그」에서 다섯 명의 언니들 둔 막내 인어공주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지만, 「언니들」에서는 각각의 언니들이 막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는 인어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또다시 다른 누군가이다. 아니,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어느 시간에서 흐르는 이야기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롭게 시작된다. 그것은 노래였다가 시였다가, 대화였다가 혼잣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듣는 자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설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 자체가 이 소설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이야기’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 자체가 ‘이야기’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힘든 건, 설명이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과 함께 그 자신이 분리되려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분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밝힌 김종호는 지금, “스스로 아름다운 시”처럼, 설명을 통해 소설에서 아름다움을 분리하려고 하는 그 본질과 싸우고 있는 중인 듯 보인다. 한편 김종호는 두번째 소설집 『산해경草』에서 “차라리 문학의 윤리는 불순하고 음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세계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와 결별할 때만 발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조를 벗어나야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말은 『인어공주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허남준의 그림이다. 화가이자 사진가로 아카이브 프로젝트 전시를 하는 허남준의 그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김종호와 함께 4년여 동안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해오면서, 그 역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낯선 인어공주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울림이 있는 그의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은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구체적인 캐릭터와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거기서 전해지는 느낌 자체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은,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 159 페이지 이후, 167 페이지 전까지(160~166) 일곱 장의 백지는 작가의 의도로, 파본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