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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곳곳에 빈곤과 궁핍이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이것이야말로 운명의 스핑크스가 우리들의 문명에 던지는 수수께끼이며, 이것에 답하지 못하면 문명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진보가 만들어내는 모든 부의 증가가 오직 소수에게만 거대한 부를 제공하고 사치를 조장하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만드는 한 진보는 진정한 것이 아니며, 결코 영원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진보라는 탑은 그 기초부터 기울어져 있으며,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세울 때마다 최후의 재앙을 재촉할 뿐이다.
- 생산력의 거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생산자에게 생산물의 최소한의 몫만이 돌아가는 이유는 자본의 부족이나 노동에 대응하는 자연력의 한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유를 부의 생산을 제약하는 법칙들에서 찾아서는 안 되며, 부의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들 속에서 찾아야만 한다. - 우리가 모든 일의 근원과 그 자연적인 연관관계를 고려해 본다면, 이런 순서는 거꾸로 된 것이다. 즉 자본은 첫 번째가 아니라 마지막이며, 노동의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 고용된 것이다. 노동이 투입되려면 그 전에 반드시 토지가 있어야만 하고, 자본이 생산되려면 그 전에 반드시 노동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의 결과이며, 노동이 더 많은 생산을 하기 위해 노동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다. 노동이야말로 능동적인 최초의 힘이기 때문에 노동이 자본의 고용주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은 오직 토지 위에만 실행될 수 있고, 노동이 부로 바꾸는 모든 물질들은 토지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토지는 노동의 선행 조건이며 대상이며 원료다. 그러므로 생산의 자연스러운 순서는 토지ㆍ노동ㆍ자본의 순서이며, 우리들의 탐구도 자본이 아니라 토지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 만일 어떤 사회에서 사용이 가능한 모든 토지를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면, 그는 그 토지의 사용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과 가격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한, 그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그가 요구하는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수밖에 없다. - 노동과 자본의 일부가 농업에 투입되고 일부는 공업에 투입되는 어떤 사회가 있다고 해보자. 이 사회의 가장 열등한 토지를 경작해서 얻을 수 있는 평균적인 생산량을 20이라고 하며, 그 20은 농업이건 공업이건 관계없이 이 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에 대한 평균적인 대가가 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유 때문에 공업 생산에 대한 대가가 15로 줄어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되면 공업에 투입되던 노동과 자본은 분명히 농업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동과 자본의 이동은, 노동과 자본이 농업과 공업에서 얻을 수 있는 대가가 일치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임금과 이자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지대를 제외하고 난 후의 생산물, 즉 지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 노동과 자본이 얻을 수 있는 생산물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력이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만약 생산력과 함께 지대가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결코 상승할 수 없다. - 토지의 가치는 그 토지를 소유함으로 인해 생기는 노동에 의해 창출된 부를 전유할 수 있는 힘에 전적으로 달려 있으며, 토지의 가치는 언제나 노동의 가치를 희생함으로써만 증가한다. 따라서 생산력이 증가해도 임금이 증가하지 않는 이유는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대가 모든 이득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빈곤이 진보와 함께하는 것이다. - 우리는 가난이라는 개념에 너무나 빨리 익숙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당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악의 존재가 그저 그것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점점 더 불명확해진다. - 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적용할 토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노동에 반드시 필요한 토지를 장악한다는 것은 바로 노동의 열매 중에서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장악한다는 것과 같다. - 부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또 생산력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억제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부의 근원이자 노동의 터전인 토지가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을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인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몫 전부가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 소유로 대체해야만 한다. 다른 어떤 방법도 악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할 것이고, 다른 어떤 방법에도 희망이 없다. -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미 사유되어 있는 토지의 매수도 아니도 몰수도 아니다. 사유된 토지를 매수한다는 것은 정의로운 방법이 아니며, 몰수는 불필요한 일이다. 만약 현재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들이 원한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토지라고 부르는 것을 그대로 갖고 있도록 해주자. 또한 개인들이 토지를 사고 팔고 상속하는 것도 허용하자. 알맹이를 얻을 수만 있다면 껍데기는 그들에게 주어도 좋다. 한마디로,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몰수하며 된다. 핵심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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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는 진보 속에서의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문제인 토지 사유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토지 사유제의 철폐보다는 토지로 인해 얻어지는 모든 불로소득(지대)을 조세의 형태로 환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렇게 토지에서 얻어지는 모든 소득을 환수하면, 임금이나 자본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도 정부의 재정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세금을 철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혁신적이고 현실성을 갖고 있는 헨리 조지의 이런 분석과 주장들은 안타깝게도 자본과 노동만을 중요한 생산 요소로 보는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의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경제학 강의실에서 헨리 조지라는 이름을 듣기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 《부활》에서 헨리 조지가 말한 내용들을 가장 이상적인 토지 제도로 묘사했고, 조지 버나드 쇼,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쑨원(孫文), 마르틴 루터 킹 등 수없이 많은 사상가와 사회운동가들이 헨리 조지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얻고, 자연이 모든 인간에게 선물한 토지의 정의롭고 평등한 사용 방법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