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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범죄자본주의’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 - 004
PART 1 차이 없는 반복 외적 식민지에서 내적 식민지로 1. 백년 호텔을 가진 나라 - 018 2. 한국 자본주의에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 - 027 3. 일제에 의한 자본주의 이식 - 032 PART 2 한국형 엔클로우저, 적산 1. 광복과 함께 일어난 최초의 뱅크런 - 040 2. 미군정의 적산 처리 - 044 3. 대한민국 정부의 적산 처리 - 050 4. 화약은 진실하고 정직하다? - 055 PART 3 그라운드 제로 한국전쟁 1. 폭력적 사회 재편과 비자발적인 전면적 리셋 - 068 2. ‘그라운드 제로’의 예외 - 075 3. 노동운동의 불모화 - 090 PART 4 친일에서 친미로 1. 기업가정신 vs. 정경유착 - 106 2. 일본이 남긴 적산과 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 - 111 3. ‘만가’(晩可) : 정경유착과 한국 재벌의 기원 - 120 4. 재벌의 본격적 등장과 자본축적 - 130 PART 5 외생축적, 정경유착과 배제의 구조화, 고착화 1. 재벌, 부정축재자에서 ‘개혁적인 민족기업가’로 변신하다 - 146 2. 경제개발의 재원을 찾다 - 154 3. 독재·자본 연합의 탄생 - 161 4. 국민을 팔아서 경제를 일으키고, 그 국부를 재벌에 넘기다 - 168 5. 전두환·노태우 정권 : 외생 축적의 정점 - 178 PART 6 자본과 민족 1. 민족자본주의 - 188 2. 민족경제론 vs. 재건론·자립경제론 - 193 3. 주변부자본주의 vs. 국가독점자본주의 - 197 PART 7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재벌은 비대화하고 안정되었다 1. 산업의 구조조정 - 206 2. 경제력 집중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 216 3. 금융 등의 자유화 - 219 PART 8 탈(脫) 한국 자본의 한국 지배 1. 알깨기를 시도하는 한국 자본 - 226 2. 외환위기 - 232 3. 외환위기 이후 : 여전한 재벌 중심의 한국경제 - 237 4. 위기를 극복하고 권력을 접수한 시장 - 242 PART 9 자본 민주주의 국가의 시장과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 권력 1. 시장경제에서 시장사회로 - 248 2. 시장경제를 시장사회로 이행시키는 요소 -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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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재벌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1970년 신격호와 박정희의 만남이다. 신격호는 1970년 11월 13일 주일대사 이후락과 함께 도쿄를 떠나 한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청와대로 직행하여 대통령 박정희를 만났다.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반도호텔을 불하해줄 테니 국제적인 호텔을 만들어서 성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노구치의 반도호텔은 해방과 함께 국가 소유로 넘겨져 당시 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날이 오늘날 롯데그룹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재벌의 거의 대부분이 정경유착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롯데 같은 전격적이고 화끈한 출발의 일화를 찾기는 힘들다.
1974년 6월, 롯데는 반도호텔 매각 입찰에 단독 응찰하여 낙찰을 받았고, 박정희의 지시로 반도호텔 옆의 국립도서관도 손쉽게 사들였다. 중국음식점 아서원을 비롯한 인근 사유지 매입에도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신격호는 호텔을 짓는 김에 유통업(백화점)에도 진출했다. 호텔 옆에 짓기로 한 9층짜리 부속건물을 당초 신고와 달리 25층으로 높였고, 용도 또한 준공을 앞두고 투숙객을 위한 쇼핑센터(1~2층)에서 ‘백화점(1~7층)과 임대사무실’로 변경했다. 당시는 ‘도심 인구집중 억제 정책’이 시행 중이어서 대규모 백화점이 시내 한복판에 들어설 수 없었지만 ‘백화점’이 아닌 ‘쇼핑센터’로 명칭을 바꾸는 편법이 동원돼 일을 성사시켰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에 ‘롯데쇼핑센터’ 건을 재가했다. 다음날 박정희의 피격 사망 보도를 접한 신격호가 ‘하마터면’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광경은, 직접 보지 않았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백년 호텔을 가진 나라」중에서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애초에는 4·19혁명 직후 시작된 ‘부정축재자 처벌’을 완성지어,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했다.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국민들이 법 위에 군림하던 자본가들의 탈세와 부정축재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월 28일 부정축재처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재호·이정림 등 대자본가 10여 명을 체포·구금했다. 삼성 회장 이병철은 마침 일본에 머물고 있어서 체포를 모면했고 대신 동업자인 부사장 조홍제가 체포되었다. 여러 증언에 의하면 이병철은 쿠데타 주도세력과 사전 협의를 마치고 “전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한 뒤, 6월 26일 귀국했다. 서울에 도착한 이병철을 연행한 지프차는 다른 부정축재자들이 구금돼 있던 서대문형무소·마포형무소가 아니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로 달려갔다. 이병철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병철은 부정축재자 전원 석방을 요구한다.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이 그 대가였다. 이튿날 구금돼 있던 재벌 경제인 12명은 모두 석방되었다. 석방된 부정축재자 12명은 그해 8월 16일 군사정권과 연결 창구 노릇을 맡을 ‘한국경제인협회’를 꾸린다. 초대 회장은 이병철이었다. 부정축재혐의자 12명이 석방을 대가로 조직한 ‘한국경제인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0월 부정축재처리법을 개정한다. 추징금의 수위를 낮추고, 대규모 공장 건립을 위해 정부가 금융지원에 나서며, 공장이 설립된 뒤에는 정부에 헌납한 지분을 되사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정축재자들은 강력한 처벌 대신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지원을 받으며 국가기간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독점적 기회를 제공받았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밀월관계가 형성된 결정적 순간이다. ---「‘만가’(晩可) : 정경유착과 한국 재벌의 기원」중에서 1955년 자본금을 기준으로 한 당시 국내 최대기업은 1위 삼양사, 2위 대한석탄공사, 3위 한국산업은행, 4위 락희화학공업사, 5위 금성방직 순이었으며, 대체로 섬유업체가 강세였다. 이 무렵부터 일반 국민들 사이에 ‘재벌’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삼성, 삼호, 개풍 등이 산하에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명실상부한 재벌로 부상한다. 이밖에 럭키, 대한산업, 동양, 현대, 쌍용, 코오롱, 한일합섬, 벽산, 태광, 전방, 한국생사, 방림방적 등이 1950년대를 거치면서 재벌로 비상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마친다. 이 무렵 형성된 재벌들은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부문에 집중적으로 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여 한국 특유의 ‘백화점식 경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백화점식 경영’ 즉 문어발 경영을 위해서는 단기간에 유망기업을 다수 인수해야 했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정치권과 거래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이권과 정치자금을 맞교환하는 불법적인 거래에 능할수록 빨리 성장하였고, 그에 따라 기업 내부에 추악한 비밀이 쌓였고, 비밀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폐쇄적인 가족경영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폭리, 밀수, 탈세, 부동산 투기 등 한탕주의를 기업가정신으로 체화하고 문어발 경영을 경영전략의 특징으로 하는 재벌 말고는 정상적이고 건전한 기업이 자리 잡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재벌화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뒷면은 정치적인 독재체제의 지속일 것이다. 1961년의 10대 재벌 목록을 보면, 재벌 형성의 비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단 주력사업이 수입무역인 곳이 10곳 중 8곳이다. 앞서 언급한 상인자본적 성격이 극명하다. 귀속자산, 즉 적산을 취득한 곳은 10곳 중 7곳이다. 원조자금을 받은 곳은 10곳 전부이다. 계열사가 많은 상위권 3개 재벌의 주력사업에는 은행이 포함되었다. 이 모두는 정경유착 없이는 불가능했다. ---「재벌의 등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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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질긴 재벌의 뿌리
CHAEBOL. 속칭 ‘재벌’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은 이미 옥스퍼드를 비롯한 전 세계 유명 사전에 ‘고유명사’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 오래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아니라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봉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마저 가뿐히 뛰어넘는 재벌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로부터 본다. 오늘날의 ‘삼성그룹’과 비견될 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노구치콘체른’의 정경유착과 차입경영, 무차별적 사업 다각화가 바로 대한민국 재벌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일제강정기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친일’에서 ‘친미’로 옷을 갈아입은 식민지 부역자들은 이른바 적산불하 과정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오히려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이어서 5.16 세력과 손을 잡고 ‘반공’의 기치 아래 군사정권의 든든한 뒷배가 됨으로써 드디어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권력이 바뀌어 갔지만 재벌은 차근차근 자신들만의 성채를 구축했고 이제는 오히려 정권을 좌지우지할 만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 ‘범죄자본주의’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이렇듯 불법과 탈법과 정경유착으로 부와 권력을 쌓아올린 자본권력을 마피아보다 더 사악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사법적 심판을 벗어나 있고 나아가 사법을 포함한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총체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본주의’는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며, 이는 대한민국이란 근대국가 형성과 맞물려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친일세력과 두 개의 외세에 편승한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민족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장악하여 대한민국을 그들의 나라로 만들어왔는지는 현대사를 통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기초하고 설계하여 완성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정치권력은 태생 자체가 범죄적이다. 이 독재자들은 민족과 공동체의 국가를 찬탈하여 소수 기득권 집단의 국가로 만든 범죄자다.” - 저자 서문 중에서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오늘날 ‘범죄자’의 반열에까지 오른 자본권력의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파헤치고 화려한 자본의 그늘 뒤에 숨은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하여 자본 권력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자본주의’를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더디고 힘든 길이겠지만,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대한민국이 건강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